[칼럼]일본의 역사왜곡과 윤석열의 '그랜드 바겐'

CBS노컷뉴스 윤석제 기자 입력 2022. 4. 6.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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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일본 교과서에서 '강제 연행' '일본군 위안부' 표현 삭제
당선인 측, 입장 유보 비난에 단호 대처로 변경
尹, 대선 출사표 "한일문제는 '그랜드 바겐'으로 해결"
'그랜드 바겐'은 과거 1965년 '한일 협정' 떠올리게 해
성과 욕심에 졸속 '위안부 합의' 우(愚) 범하지 않길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한 일본 고교 교과서. 연합뉴스
내년부터 일본 고등학교 2학년 이상 학생이 사용할 교과서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강제 연행'과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이 삭제됐다.

또 역사를 제외한 사회과목 교과서 12종 모두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기술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29일 이런 내용을 담은 교과서 239종의 검정 심사를 통과시켰다. 

'강제 연행'과 '일본군 위안부' 표현 삭제는 과거에 대한 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뻔뻔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고 독도를 분쟁지역화 하기위한 독도 영토 주장은 파렴치한 행위다.

우리 외교부는 즉각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초치해 역사 왜곡 기술에 강력히 항의했으나 일본 정부 대변인은 '항의를 수용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건전한 역사관을 갖은 국민이라면 보수든 진보든 정치 성향에 상관없이 일본 정부의 행위에 분개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은 문제가 불거진 직후 '아직 당선인이라 개별적 외교사안에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민주당은 물론 관련 시민단체의 비난이 쏟아지자 하루 만에 '그 어떤 역사 왜곡에도 단호히 대처 하겠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윤 당선인측은 '후보 시절부터 한일 양국의 발전적 관계를 희망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올바른 역사인식과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전제되어야 함을 수차례 밝혀 왔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일본 관련 문제에 대해 대선 과정에서도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선거관리위원회 주최 대선 후보 2차 TV 토론회에서 '유사시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가능성'을 언급해 논란을 빚은 게 대표적이다. 

일본 관련 문제를 보는 윤 당선인의 기본 시각은 문재인 정부 들어 꽉 막혀버린 양국 관계를 어떻게든 복원하겠다는 해결사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한일 관계 정상화의 기본 조건은 당선인측이 밝혔듯이 올바른 역사인식과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기본 전제다. 

아베 전 총리. 연합뉴스

양국 관계가 냉각된 가장 큰 원인은 아베 전 총리 시절부터 노골적으로 진행돼 오고 있는 일본 정부의 보수화, 우경화를 넘어 군국주의로의 회귀 시도에 있다.

일본의 극우 세력은 자위대의 해외 진출은 물론 선제공격까지 가능하도록 어떻게든 현재의 평화헌법을 고치려는데 사력을 다하고 있다.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 피해 당사자들은 물론 국민 여론도 제대로 묻지 않은 채 위안부 합의를 덜컹 맺은 탓에 우리는 대일 협상에 발목이 잡혀 있다.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합의는 잘못된 것이라며 사실상 파기 선언을 했으나 일본은 걸핏하면 국가 간의 약속을 무시했다며 위안부 합의 복원을 들먹이고 있다.

특히, 지금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외교장관이었던 인물로 절대로 자기가 서명한 사안에 후퇴할 리가 없다. 

실제로 일본은 윤 당선인 이후 한일 관계 회복을 기대한다면서 그 출발은 '2015년 위안부 합의 복원'이라는 점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전 정부와의 차별화와 성과 달성을 앞세워 서둘러 한일 관계 복원을 추진하다 보면 일본의 전략에 휘둘려 또다시 잘못된 빌미를 제공할까 우려스럽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 어떤 형식으로든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의 발전적 관계 개선은 분명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필요하다고 해서 원인을 제공한 일본의 행위를 덮어둔 채 양보를 해서는 안 된다. 

윤석열 당선인은 지난해 6월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사표를 밝히면서 한일관계에 대해 실용주의 · 실사구시· 현실주의에 입각해 풀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정부 들어와서 망가진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이런 것들과 한일 간의 안보협력이라든가 경제·무역 문제 이런 현안들을 전부 다 같이 하나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랜드 바겐을 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역사 문제와 경제 문제를 넘어 안보분야까지 일괄 타결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얽히고설킨 과거사 문제를 비롯해 양국 간 모든 현안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그랜드 바겐' 형식으로 통 크게 해결하겠다는 입장은 아주 깔끔하고 명쾌해 보이는 해법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두 나라간 쌓이고 쌓인 문제는 아무리 미래 지향적으로 해결방안을 찾는다고 해도 과거사 문제를 없었던 일처럼 '싹 뚝' 무 자르듯이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윤 당선인이 밝힌 '그랜드 바겐' 방식의 접근은 표현만 다를 뿐 지난 1965년 당시 박정희 정부가 맺은 한일협정을 생각나게 한다.

알다시피 한일협정의 핵심은 국교 정상화의 대가로 일본으로부터 3억 달러를 받은 것이다. 

당시 피해자와 국민들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과거사 문제도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내용을 협정문에 포함시켜 굴욕적인 협정이라는 반대 시위 등 상당한 반발과 비난을 야기했다.

백 번 양보해 당시에는 경제 발전을 위해 거액의 자본이 시급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해도 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다르다.

물론 아직도 경제력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일본에 뒤쳐져 있는 것은 사실이나 성급히 나서 굴욕적인 협상을 진행할 만큼 우리의 형편이 급하거나 딱하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6일 점심일정을 위해 서울 통의동 집무실을 나서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정부가 공식 출범하지 않은 상황에서 앞으로 한일관계 복원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지를 단언하거나 구체적으로 예측할 수는 없다.

단지 당선인의 발언이나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보수 정치세력을 비롯한 주변의 성향으로 미뤄 볼 때 우려스럽다. 

당선인측이 일본 문제 해결의 전제로 제시한 '올바른 역사 인식'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가장 궁금하다. 

윤석열 정부가 과거 박정희 정권이 맺은 굴욕적인 한일협정이나 박근혜 정부의 졸속적인 위안부 합의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고 한일관계를 복원하고 발전시켜 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일본의 문화적 속성을 가장 잘 빗댄 대표적인 표현이 '국화와 칼'이다. 

겉으로는 한 없이 친절하고 겸손해 보이지만 속마음은 때를 기다리며 칼을 간다는 얘기다. 
일본은 지진을 비롯한 각종 자연재해를 숙명처럼 안고 사는 섬나라로 유사시 대륙진출이라는 야망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첫 통로는 한반도 일 수밖에 없다. 

갈수록 군국주의 행보를 재촉하는 일본의 집권세력은 호시탐탐 우리를 건드리고 자극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대한제국 시절 동학혁명 진압을 핑계로 군대를 한반도에 진출시킨 일본의 속내를 지나간 역사로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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