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잘싸' 취한 민주당, 성찰·쇄신 없이 패배 공식 되풀이

최하얀 입력 2022. 4. 7. 05:06 수정 2022. 4. 7.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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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 이후 민주당][6.1 지방선거]대선 당시 '투톱' 송영길·윤호중
여전히 전면에..책임정치 실종
'6·1선거 대안 있냐' 명분 내세워
혁신 회피..'계파 이기주의' 비판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참석자들 뒤로 \"부족했습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공동취재사진

더불어민주당이 3·9 대선 패배로 5년 만에 정권을 내어주게 됐지만, 패배에 따른 책임론은 사라졌고 성찰하는 분위기도 희미해지고 있다. ‘0.73%포인트 차이 졌잘싸’라는 늪에 빠져 변화와 쇄신 동력을 잃고 패배 공식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영길 서울시장 출사표…실종된 책임정치

대선 이후 민주당의 행보를 우려하는 이들이 한목소리로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책임 정치의 실종이다. 선거 직후 송영길 전 대표가 사퇴했지만, 송 전 대표와 ‘투톱’을 구성했던 윤호중 전 원내대표는 공동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남아 당을 이끌고 있다. ‘586 용퇴론’을 띄웠던 송 전 대표는 6·1 지방선거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하겠다고 나서 내홍을 키우고 있고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상임고문은 ‘지지자와 소통’을 명분으로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패장은 책임 지고 일선에서 후퇴한다’는 지금까지의 공식과는 동떨어진 이런 모습에 “흡사 이긴 정당의 모습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박홍근 신임 원내대표 선출 등 이재명 전 후보와 가까운 사람들이 신주류가 되는 당내 세력구도 재편도 마찬가지”라며 “민주당이 0.73%포인트 차 패배란 것에만 묶여서 심판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잊는다면, 민심과 멀어지기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대선 뒤 안정적으로 지방선거 준비 체제로 전환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현재 민주당의 모습을 ‘무증상 확진자’에 빗대며, 더 큰 내홍을 우려했다. “속을 들여다보면 분명히 병이 들어 있는데 겉보기에 멀쩡하다고 해서 진단을 미루면 적절한 치료의 시기도 잃게 된다”는 것이다.

계파주의 가리는 ‘대안부재론’으로 쇄신 발목잡기

대선 패배 뒤 쇄신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때마다 ‘대안 부재론’이 민주당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이 있는 윤호중 전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는 문제를 놓고도 터져나온 반발도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비대위원장을 할 만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현실론 앞에서 제압됐다. 송 전 대표 서울시장 출마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오세훈 서울시장에 맞설 경쟁력 있는 대안이 있느냐’는 반문이 이어진다. 민주당의 혁신 의지와 방향을 국민들에게 보일 젊고 새로운 인물을 후보로 세우는 ‘혁신 공천’ 방안은 좀체 힘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바로 그런 상황 논리에 번번이 떠밀린 끝에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재작년 총선 때 위성정당을 만들고, 권력형 성범죄 사건으로 생긴 지난해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 후보를 냈던 것들도 지금처럼 상황 논리를 앞세운 결과였다”며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깨면서 소탐대실한 역사가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내로남불 정당을 만든 것 아닌가”라고 했다. 민주당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패배 공식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혁신을 방해하는 ‘대안 부재론’의 이면에는 ‘계파 이기주의’가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최근 민주당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을 보면, 정말로 당의 미래를 생각하기 보다 주요 인사들이 차기 당권이나 대권을 바라보며 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민주당의 중장기 전망은 더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언론·검찰개혁 빼면 국민의힘과 쌍둥이

‘172석 거대야당’으로서 정책 추진 과정에서도 민주당의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조언도 적지 않다. 대선 과정에선 표를 좇아 국민의힘과 차별성 없는 공약을 내세웠고 대선 이후에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박지현 공동 비대위원장과 권지웅 비대위원이 주문한 차별금지법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고,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등 정치개혁안은 국민의힘 반대에 부딪쳐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유가·금리·물가 급등과 이로 인한 가계부채 급증 우려 등 당면한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대응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과의 차별점은 당 안팎 강경파가 목소리를 높이는 검찰·언론개혁뿐이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핵심 지지층을 중심으로 국민 40여퍼센트의 지지만 받아도 승산이 생기는 양당 정치의 한계에 민주당이 그대로 빠져들고 있다”며 “양당 정치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진 의원은 “지난 1개월 민주당의 모습은 문재인 정부 5년간 민주당이 걸어온 길의 압축판”이라며 “중간고사를 망쳤다면 어느 과목을 망쳤는지 살펴보고 오답노트를 만들어야 기말고사를 잘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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