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당선인의 한일관계 개선, 어떤 한일관계 개선인가

2022. 4. 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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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진단] 한·일관계 개선, 내용에 달려있다

[평화재단 (staff@peacefoundation.or.kr)]
한·일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최악이었다고 평가되는 한·일관계였기에 개선된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한·일 간에 관계가 개선되었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떤 개선인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국제정세의 전개에 따라서는 한·일관계 정상화가 화가 될 수도 있다.

한·일관계는 문재인 정부의 성적표 가운데 가장 낮은 점수를 각오해야 할 분야다. 박근혜 정부 때부터이긴 하지만 양국 단독 정상회담을 한 번도 열지 못했던 것이 이를 상징한다. 악화된 한·일관계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 그 성과를 잠식했다.

한·일관계는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등 과거사 문제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GSOMIA) 종료 결정으로 대응하면서, 역사-경제-안보가 얽히는 복합 갈등으로 발전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대일외교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출마 기자회견에서부터 문재인 정부가 이념 편향적인 죽창가를 부르다 한·일관계를 망쳤다며,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과거사에 매몰되지 않는 대일외교를 펼치겠다고 강조했다.

윤 후보 캠프 인사도 비슷한 생각을 피력했다. 문재인 정부가 '반일 기조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결과, '비정상이 일상화된 상태'에서,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 등이 모두 삐뚤어져 있다'는 비난이 그렇다. 그 해법으로는 '그랜드 바겐', 즉 '모든 어젠다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두고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한·일관계 악화의 책임을 문재인 정부의 대일 '정책'에만 돌리는 듯한 이러한 인식은 한·일관계의 '구조'와 '상호작용'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달 11일 전화 통화를 하고 한일관계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일본 NHK와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통화는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약 15분간 진행됐다. 사진은 지난달 10일 국회에서 당선 인사하는 윤석열 당선인과 4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하는 기시다 일본 총리. ⓒ연합뉴스

한·일관계의 구조와 상호작용

먼저 '역사의 구조' 문제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일 외교의 큰 부담으로 작용한 '2015년 합의' 문제는, 그 기원이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헌법재판소가 이 문제를 대일 외교로 풀지 않는 우리 정부의 부작위를 위헌으로 판단한 데 있으며, 그 원인은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접근에 있었다.

또한 강제동원 문제는, 이 역시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에 기원하는 문제이며, 박근혜 정부의 사법농단으로 그 해결이 미뤄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열린 대법원에서 확정됨으로써 오랜 숙제 처리를 문재인 정부가 감당하게 된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문제를 풀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서 용기를 내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럼에도 문제의 기원과 원인이 이전 두 정부에서 비롯하고 있다는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경우 엉뚱한 문제 해결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

다음으로 '지정학의 구조' 문제가 있다. 글로벌한 수준에서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한반도 정전체제를 전제로 성립한 동아시아 세력균형 체제를 유지 강화하려는 일본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통해 한반도 정전체제를 극복하고 평화를 제도화하려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보냈던 의구심이 과거사 갈등보다 더 깊숙한 곳에서 한·일관계를 어긋나게 했던 것이다.

일본에게 과거사 문제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견제하는 지렛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역사와 현안 협력을 하나의 트랙으로 묶은 것은 일본이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의 '장기 저강도 복합 갈등'은 역사와 지정학적 구조의 산물이다. 2010년대 이래,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심화되던 미·중 전략경쟁과, 같은 시기에 감지되던 1965년 체제의 불완전성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 결정적으로 확인되었고, 이것이 대일 외교의 한계를 설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헌법정신에 기초한 국가적 정체성, 사법부 판단 중시의 3권 분리 원칙, 피해자 중심 접근이라는 국제적 규범의 존재가 대일 외교에서 운신의 폭을 크게 제약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주어진 현실과 조건 속에서 때때로 지지자들을 실망시키고 혼란스럽게 할 정도로 대일 현실 외교를 채택했다. '2015년 합의'가 정부 간 합의라는 점을 확인하고, 사법부 판결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강제동원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행동을 제안하는 등의 모습에서 문재인 정부의 지지자들은 혼란을 느끼곤 했다.

역사 문제는 당장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에 그 해결을 미래에 맡기고, 현안에서 협력하겠다는 투트랙 접근은 지지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논리였다. 그랬기에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는 어느 정도 실용외교의 범주에 들어가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시도한 투트랙 접근이 일본이 설정한 원트랙 대응에 부딪쳐 기능부전에 빠진 것이 문재인 정부 시기 한·일관계의 실상이다. 일본은 역사를 끌고 와 현안문제에서 우리의 행동반경을 묶어 둠으로써 이러한 결과에 도달하기를 원했다고 하는 분석도 해볼 수 있다.

그래서, 한·일 갈등은 문재인 정부의 일방적인 대일 외교의 결과가 아니라 '상호작용'의 산물이었다는 점을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한·일 갈등의 모든 책임을 문재인 정부의 일방적 '이념 편향' 외교에 돌리고 구조의 문제를 가볍게 여길 경우, 윤석열 새 정부가 시도하겠다는 실용적 접근의 여지가 매우 협소해지면서 오히려 이념 외교의 함정에 빠져 되돌리기 어려운 지점에 불시착할 가능성이 있다.

유동하는 국제정세와 한·일관계 개선의 함수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국제질서가 불가예측의 영역에 들어서고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시험발사에 동북아시아에서 다시 긴장이 고조되면서 그 함정으로의 입구가 보이는 듯하다. 한·일관계에서 발단하는 신냉전 가능성이다.

우크라이나 이후의 국제질서에 대한 다양한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를 완충지대로 나토의 서방과 중국에 의존하는 러시아가 대립하는 신냉전의 가능성이 매우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등장하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도 단층선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우크라이나 사태로 알게 되었지만,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단층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서 더 오래 구조화되어 존재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동중국해와 대만해협, 그리고 남중국해로 이어지는 단층선이다. 그럼에도 이 지역에서 신냉전의 발발이 유예되고 있었던 것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덕분이었다.

2021년 4월과 5월 미·일 공동성명에 이어 한·미 공동성명이 발표되어 한·미·일 3국 협력관계가 복원되었다. 대만 문제는 3자를 잇는 공통항이었다. 자칫하면 중국 포위망이 될 뻔한 한·미·일 공조의 수위가 위험수위에 다다르지 않았던 것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지속을 미국이 수용하고, 비록 마지못해서였기는 하지만 일본이 이를 양해했기 때문이었다. 한반도의 남북을 잇는 통로가 가까스로 열린 상태에서 미국과 중국은 직접 충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대만 관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와 역사적 맥락이나 지정학적 위상이 전혀 다른 문제임에도, 일본에서는 두 사안을 직결시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언급하며 중국에 대한 견제에 나서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3월 2일 국회에서의 답변을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가 대만 문제에 미치는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일본이 우크라이나 사태 속에서 예의주시하는 나라가 하나 더 있다. 전범국의 오명을 벗고 우크라이나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는 독일이다. 이제 일본도 그럴 때가 되었다는 말들이 스멀스멀 나오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원전 시설을 공격하자, 일본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군수물품 지원에 나섰고, 러시아가 핵무기 보유국임을 들먹이며 서방을 위협하자 미·일동맹에 근거한 핵공유 논의가 일었다.

북한이 잇따른 미사일 시험 발사 끝에 ICBM을 발사하기에 이르러서는 적기지 공격능력 보유 논쟁에 가속도가 붙었다. 모두가 평화헌법 하에서 금기시되던 것들이다. 전후 일본이 전범국으로서 두 번 다시 전쟁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세웠던 무기 수출금지 3원칙, 비핵 3원칙, 전수방위 원칙들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동화 하는 정세 속에서 하나씩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기시다 내각이 윤석열 당선자에 보내는 메시지가 미묘하다. 기시다 총리나 아이보시 대사의 발언에는 그동안 일본 정부가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줄곧 빠짐없이 내놨던 구절이 빠져 있다. "국제법 위반 상태를 만든 한국 정부가 이를 시정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는 말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실패한 정책으로 규정하고,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한·일 협력과 한·미·일 공조를 중시하는 윤석열 당선자의 입장이 분명해지자, 일본은 한국의 선제적 해법 제시를 요구해온 과거사 문제에서 난이도를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대일 외교에서 요구되는 성실함과 신중함

그런 일본을 상대로 개선되는 한·일관계는 어떠한 한·일관계가 될 것인가. 역사와 지정학의 구조에 매몰되어 이를 돌파하는 상상력과 전략과 용기가 부족했던 문재인 정부의 한계는 분명히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구조의 존재를 무시하여 구조의 함정에 빠져서도 안 될 것이다.

한·일관계 개선이 냉전형 한·미·일 안보협력으로 회귀하여 한국 외교에 더 큰 리스크로 돌아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우리의 국격과 국가이익에 맞는 미래지향적 관계가 아닌, 관계 개선 자체를 절대 목표로 삼는 관계는 경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대일외교를 가두었던 구조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를 회피하지 않고 마주 대하는 성실함과 신중함이 새 정부에 요청된다.

[평화재단 (staff@peacefoundati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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