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의경 떠난 빈자리 퇴직 경찰 온다

이의재,백재연,김승연 2022. 4. 9.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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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2기 전역 내년 5월 역사속으로
서울 종로경찰서 청사방호공무직 기간제 근로자 이동건씨가 지난 4일 경찰서 입구 초소에서 출입자를 관리하고 있다(오른쪽). 이씨는 30년 넘게 경찰관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정년퇴직했다. 청사방호 업무 등을 담당했던 의무경찰이 폐지 수순에 들어가면서 각 경찰서들은 방호관이라고 불리는 청사방호공무직을 선발하고 있다. 이의재 기자


제주경찰청은 지난 2월 11일 제주해안경비단 129의무경찰대의 해단식을 열었다. 남은 대원 51명은 각자 본인이 원하는 지역의 부대로 배치되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2000년 창설된 제주해안경비단은 한때 의무경찰 1300여명이 근무했으나 129의무경찰대 해단을 끝으로 제주도에는 더 이상 한 명의 의경도 남지 않게 됐다.

의경이 사라지는 것은 제주 지역만의 현상은 아니다. 문재인정부가 2017년 ‘의경 단계적 감축과 경찰 인력 증원’을 국정과제로 정하고 매년 의경 선발 인력을 줄여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입대한 1142기를 마지막으로 의경 신규 모집도 종료됐다. 충원은 되지 않고 전역자들만 배출하면서 자연스럽게 규모를 줄여나가는 상황이다. 2017년 2만5000여명 수준이었던 전국의 의경 규모는 현재 3000명 정도만 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 기수가 전역하는 내년 5월에는 경찰에서 의경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의경은 방범 순찰, 집회시위 관리, 교통질서 유지, 시설 방호 등 다양한 치안 분야에서 경찰 업무 전반을 보조해 왔다. 하지만 단계적 감축 돌입과 함께 의경의 역할도 대폭 축소됐다. 현재 남아 있는 의경들은 집회시위 현장에서의 질서 유지 등 제한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친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시위 현장에서는 경찰관으로 구성된 기동대가 주된 역할을 맡고 의경들은 질서 유지 정도의 보조 역할만 맡는다”고 말했다.

경찰서 방호 업무는 의경이 줄면서 새로 인력을 충원해야 하는 대표적인 분야다. 경찰은 지난해 5월부터 청사방호공무직 기간제 근로자를 선발하기 시작했다. 일선에서 ‘방호관’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자리다. 이들은 의경들을 대신해 경찰서 입구를 지킨다. 은퇴한 경찰의 경우 경찰서 업무와 환경이 익숙해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 의경들이 떠난 자리를 역설적으로 퇴직 경찰이 채우는 셈이다.

1985년 순경으로 시작해 36년간 경찰로 복무하고 지난해 말 퇴직한 이동건(61)씨는 민간인이 된 지 사흘 만에 다시 경찰서로 출근하게 됐다. 퇴직 전 우연히 서울 종로경찰서 방호관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해 선발됐기 때문이다. 전국 대부분 경찰서는 보통 1명의 방호관만 선발하는데, 이씨는 면접에서 7대 1의 경쟁을 뚫었다.

이씨는 최근 국민일보와 만나 자신을 “제일 낮은 자리에서 일하는 최고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사실 종로서 직원 가운데는 내가 제일 고참이다. 하지만 제일 낮은 자리라고 할 수 있는 경찰서 입구에서 일하고 있다”고 웃으며 설명했다. 이어 “창피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민원인을 응대하고 관련 부서에 연결해주는 일은 36년 경찰 이력의 이씨에게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이씨는 “일반인이면 업무에 적응하는 데 한 달 정도는 걸릴 테지만, 경찰 출신은 하루 이틀이면 업무 파악이 다 된다”고 했다.

그는 퇴직을 앞두고 제주도 한달살이 등 나름의 계획도 세워봤지만, 소속감이 사라진다는 생각에 방호관 자리를 지원했다고 한다. “퇴직하면 우선 푹 쉴 생각이었지만, 퇴직일이 다가올수록 생각이 변했어요. 쉬고 나면 또 취업 생각이 날 텐데 몇 달 쉬어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바로 일하게 됐지요.”

남상철(61)씨도 지난해 7월부터 서울 성북경찰서에서 방호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퇴직 경찰이다. 남씨는 방호관 업무에 대해 “다 내려놓으니 후련하다”고 했다. 현직 경찰일 때는 피의자들을 조사해 혐의를 확인하고, 시민들의 행동을 감독해 단속하는 일을 하면서 종종 마음 한편이 무거웠는데, 현재는 ‘친절 봉사’로 안내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는 “경찰로 일할 때는 책임감과 의무가 있었지만 지금은 오로지 친절하게 내가 아는 지식으로 설명만 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경찰 후배들이 불편할까 봐 일부러 별다른 인연이 없는 성북서로 자원했다고 한다. 그는 “근무했던 경찰서에서 방호 업무를 하면 후배 경찰들이 나한테 제대로 일을 시키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지 않겠나”라며 “성북서에는 아는 직원들이 없어서 서로 일하기가 편하다”고 했다.


방호관은 반드시 경찰만 지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경찰서별로 모집 공고를 내면 전직 경찰과 함께 퇴역 군인들의 지원도 많다고 한다.

서울 서부경찰서 방호관으로 근무 중인 민병달(61)씨는 33년간 몸 담았던 군을 지난해 떠났다. 코로나19 탓에 계획했던 여행을 가는 것도 어렵게 되자 ‘이럴 바에야 일을 하자’라고 생각해 지원했다. 민씨는 “일반 시민들과 경찰이 접촉하는 첫 번째 공간이 경찰서 정문”이라며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지만 동시에 보안이 중요한 곳이기도 해서 유연하게 판단해야 할 때가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끔 현관에서 대화가 통하지 않는 주폭자가 난동을 부릴 때도 있지만 그런 상황일수록 ‘나는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차분히 절차대로 안내한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의경이 단계적으로 폐지되면서 청사 방호 업무를 맡기기 위해 청사방호공무직을 선발하고 있다. 익숙한 환경과 경찰 업무에 대한 높은 이해 때문에 퇴직 경찰들 사이에서 지원율이 높은 편”이라며 “현재 인력만으로는 야간 방호 등에 한계가 있어 청사방호공무직 기간제 근로자의 정원 확대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의재 백재연 김승연 기자 sentin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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