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다음에 위안화가 기축통화?.. 비웃는 변방의 화폐들

이동훈 2022. 4. 9.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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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보유비율 72%→61% 감소
위안화, 25%만 메우는데 그쳐
캐나다·호주·한국 등 75% 대체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지난 2월 21일 1차 대선 TV토론에서 우리나라 원화가 기축통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해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다.

그런데 기축통화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원화가 미국 영국 중국 유로 일본 등 5개국 통화를 위협할 만한 수준으로 위상이 격상됐음을 엿볼 수 있는 보고서가 나와 관심을 끈다. 한국은행의 자문을 맡고 있는 미 UC버클리대의 배리 아이켄그린 경제학과 교수 등 3명의 학자가 지난달 24일 국제통화기금(IMF)에 제출한 ‘The Stealth Erosion of Dollar Dominance’라는 조사보고서가 그것으로 대선 전에만 나왔더라면 다른 경쟁후보들과 발전적 토론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보고서는 미국 달러화의 글로벌 보유비율이 1999년 72%에서 2020년 61%로 줄어드는 등 지배력이 점차 쇠퇴하는 데 따른 공백을 어떤 통화가 메울 수 있는지를 짚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미 달러화와 함께 ‘빅4’로 통하는 영국의 파운드, 유로, 일본 엔화 등 IMF의 SDR(특별인출권) 바스켓 통화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통화도 미 달러처럼 보유비중이 줄어들고 있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해 해당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크게 인하한 영향이 컸다. 이들 빅4 통화는 통화가치가 안정돼 금과 함께 대외지급을 위한 준비로 각국이 보유하고 있는 ‘준비자산’의 일종인 준비통화로 불려왔지만 그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이다.

중국 위안화 역시 기축통화인 미 달러화의 빈자리를 대부분 차지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공백을 25% 메우는 데 그치고, 75%의 공백을 변방의 통화들이 메우고 있다는 점이다. 각국이 보유한 이들 통화는 1999년까지만 해도 300억 달러로 무시할 만한 비중에 그쳤으나 지난해 말 1조2000억 달러 상당으로 뛰어오르며 보유비중도 10%까지 늘었다.


미 달러화의 빈자리를 메우는 통화들의 면면을 보면 캐나다 달러(23%), 호주 달러(20%), 스위스 프랑(2%), 스웨덴 크로나(6%), 노르웨이 크로네(5%), 덴마크 크로네(4%) 등 선진국 통화뿐 아니라 한국 원화(8%), 싱가포르 달러(5%), 뉴질랜드 달러(1%), 홍콩 달러(1%) 등 아시아·태평양지역 4개국 통화가 가세하고 있다. 우리나라 원화는 이들 10개국 가운데 당당히 4위에 올라 있다. 이들 통화가 전면에 등장한 배경을 따라가 보면 원화가 수출경쟁력 등 높아진 글로벌 경제 위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보고서는 우선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 관리자들의 포트폴리오 전략 변화를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했다. 즉 통화 관리자들은 금융시장 변동성에 크게 휘둘리지 않고 높은 투자 수익률을 가져다주는 통화를 선호하게 되면서 이들 통화가 유동성이 더 풍부해지고 매력적으로 됐다는 뜻이다. 통화 관리자들은 특히 빅4 국가가 발행하는 국채 수익률이 제로 수준으로 떨어짐에 따라 더 수익률이 높은 통화로 눈을 돌리고 있다.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엔화와 함께 안전자산이자 ‘캐리 트레이드’ 투자통화로 인기를 끌어온 스위스 프랑 보유비율이 2%에 그친 것은 -0.75%의 낮은 기준금리 때문으로 분석돼 트렌드 변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무역에서 유리한 결제수단 활용이 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에스토니아는 호주 달러화와 캐나다 달러화 보유비중이 높은데 높은 에너지가격과 상품가격에 대한 헤지 수단으로 이들 통화를 보유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최근 5년간 한국 수출액이 세계 5위를 차지했다며 경제강국의 위상을 반영해 원화의 SDR 바스켓 6번째 편입을 주장하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다양한 금융기술의 발전도 변방 통화 위상 강화에 한몫하고 있다. 전자거래 플랫폼의 발달로 달러를 매개로 한 제3국 통화 구입이 불필요해지는 사례가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멕시코 페소화로 캐나다 달러를 가장 싸게 사는 방법은 우선 미국 달러화를 구매한 뒤 캐나다 달러를 구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멕시코 페소로 캐나다 달러를 직접 구매해도 환전수수료 부담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의 네트워크 확장도 변방 통화 간 직접거래를 용이하게 만들었다.

보고서는 미 달러화가 20세기 초 영국의 파운드를 누르고 기축통화의 왕좌에 앉게 됐듯이 중국 위안화가 그다음 왕관을 달러로부터 물려받을 수 있다는 희망은 버리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취지로 조심스레 결론을 내렸다. 1999년 출범한 유로도 새천년 초기에는 달러를 위협하기도 했으나 2011년 유럽 재정위기를 겪으며 위상이 추락했다.

위안화 국제화나 유로의 전략적 자치화 등의 문구는 정책 이니셔티브를 강조하고 있으나 시장의 힘과 인센티브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예견이 아닌 시나리오임을 전제로 “미 달러화의 지배가 끝난다면 전통적인 일부 라이벌 통화보다는 광범위한 그룹의 대체 통화들이 미 달러화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훈 논설위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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