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러시아도 실패했다", 우크라이나가 '강대국 무덤' 된 이유 [박수찬의 軍]

박수찬 2022. 4. 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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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수도 키이우 외곽에서 순찰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가 강대국들의 ‘전략적 실패’ 장소로 변하고 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군 현대화 작업을 진행하며 국방개혁을 단행했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단시간 내 점령하는데 실패한 채 전쟁의 수렁에 빠져드는 모양새다. 

‘러시아가 이틀 안에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예상했던 미국 정보기관은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를 오판했다”는 지적과 함께 정보 판단 실패 논란에 직면했다. 러시아의 전면 침공을 예측하지 못한 프랑스 군사정보국은 수장이 교체되는 홍역을 치러야 했다. 첨단 무기의 위력과 데이터에 기반한 예측 시스템을 과신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첨단 무기 신화·인적 요소 간과

러시아군이 고전한 원인에 대해서는 보급 능력 부족과 공군·합동작전 미비 등 전술적 차원의 문제가 주로 지적됐다.

하지만 전략적 차원에서는 러시아군이 현대전의 개념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 우크라이나에서 어려움을 겪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 고위 장성들은 미래전 관련 글을 통해 “침략할 국가에 정보전을 벌이면서 친러시아 동조자를 만들어 내부 혼란을 유도한 뒤 정밀유도무기로 공격하면 해당 국가는 무너지고, 러시아군은 그 나라를 접수하기만 하면 된다”는 주장을 폈다.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러시아군의 전략과 유사하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침공 전 러시아 내에서는 세계 2위를 자랑하는 공군력을 앞세우면 단기간 내 우크라이나군을 제압할 수 있다는 주장이 많았다. 일부 우려가 있었지만, 첨단 정밀유도무기의 위력을 강조하는 반박 논리에 묻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 고위 장성들의 예측을 빗나가게 했다. 러시아가 공격을 감행하자 우크라이나인들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강력히 지지하며 전쟁에 참가했다. 

한 우크라이나 군인이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수도 키이우 외곽의 한 아파트 앞에 서 있다. AP연합뉴스
청년들은 군에 입대했고,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 시민들은 후방 지원 활동을 펼쳤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군은 “가짜뉴스를 믿지 말고 공식발표를 신뢰하라”고 호소하며 내부 혼란 방지에 총력을 기울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위험을 감수하며 키이우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보내면서 국민을 결속시켰다. 이는 국민들의 항전 의지를 더욱 굳혔다.

우크라이나인들의 거센 항전 의지는 미국 정보기관도 예측하지 못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준비하는 동안 미 정보기관들은 이틀 안에 전쟁이 끝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예측은 빗나갔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뛰어난 전쟁 지도력도 예상치 못했다. 아프간에서 탈레반의 카불 점령 시기를 예측하지 못했던 실수를 반복한 셈이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장갑차에 탑승한 채 동부 돈바스 지역의 세베로도네츠크 시내를 순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워 게임으로 전쟁을 예상한다면, 미 정보기관의 판단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군사력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 게임은 조국을 위해 싸우려는 국민과 장병의 의지를 설명하지 않으며, 설명할 수도 없다. 장병들의 사기와 항전 의지, 지도자의 리더십은 주관적 요소가 많아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를 워 게임에 반영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전쟁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압도적인 국력 차이에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견뎌내는 것도 인적 요소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면 워 게임을 통한 전쟁 예측과 전략 수립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국민 정서를 정확히 파악하는 정보활동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정밀유도무기에 대한 과신도 문제다. 러시아는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과 칼리브르 순항미사일 등을 전쟁 초기에 사용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지도부를 제대로 타격하지 못했다. 나중에는 극초음속미사일까지 발사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의 항전 의지를 꺾지 못했다. 

한국 육군 장병들이 과학화훈련에 참여해 주변을 경계하면서 이동하고 있다. 육군 제공
◆한국군도 참고해야할 교훈 있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강대국들이 겪은 실수는 한국군에도 상당한 교훈을 던지고 있다.

우선 군수물자 보급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수송능력을 확충해야 한다. 전쟁은 전선에 물자를 제대로 공급하는지 여부에 승패가 갈린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은 연료와 식량 부족으로 전차를 비롯한 중장비를 버리고, 현지 상점에서 먹을 것을 훔치기도 했다.

한국군은 유사시 육군과 해병대가 신속하게 북한 내륙으로 진출하는 입체기동작전을 펼쳐야 한다. 수많은 전차와 장갑차, 자주포, 전술차량 등을 투입하는 입체기동작전이 성공하려면 연료와 식량, 탄약을 원활하게 공급해야 한다.

열악한 북한 도로를 주행하면서 장비들이 고장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부품과 정비 병력도 준비해야 한다. 러시아군은 이같은 준비가 부족해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했다.

한국군이 러시아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탄약과 중장비 부속 등 핵심물자를 평소에 충분히 비축하고, 이를 전선으로 신속하게 옮길 수 있는 수송능력을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

저렴하거나 오래된 무기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크라이나군은 1967년 옛소련이 개발한 BMP-1 장갑차를 여전히 쓰고 있다. 러시아군도 1960년대 개발된 BM-21 다연장로켓을 투입했다. 

이들 장비는 구식이지만 이번 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북한군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처럼 옛소련 시절 구식 장비를 많이 운용하고 있다. 한·미 연합군의 결정적 우위인 첨단 장비 효과를 높이려면, 한반도 전장에서 구식 장비가 위력을 발휘하는 상황을 먼저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과 군의 항전의지 및 사기도 중요한 부분이다. 우크라이나군은 규모는 작지만,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웠다. 시민들도 화염병을 만들어 항전했다. 이는 러시아군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정부와 군이 장병과 민간인들의 사기를 높이고, 가짜뉴스가 퍼지는 것을 막을 방법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급장교들의 지휘력과 전술 운용능력 강화도 필수다. 우크라이나군의 초급장교와 부사관 중 상당수는 미국, 영국 등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들은 적절한 전술능력을 발휘해 러시아군을 저지했다는 평가다. 

한국 육군 K1E1 전차들이 경계를 하면서 도로를 이동하고 있다. 육군 제공
북한의 도발 징후가 명확해졌을 때, 군과 정보 당국이 수집한 기밀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일부 고위 관리만이 접할 수 있는 기밀 정보를 공개하는 등급 하향 및 공유(downgrade and share) 작전을 실시했다. 

이를 통해 러시아군의 최신 동향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군 지도부 간의 긴장 등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밝혔다. 

이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침공을 대비할 시간을 주고, 동맹국들이 러시아에 강경한 태도를 신속하게 취하면서 미국과 공동대응에 나설 수 있도록 했다. ‘우리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는 기밀 정보를 공개한 결과였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군은 한반도 유사시 유엔군사령부에 속한 영국, 프랑스 등의 전력제공국들로부터 지원 병력과 물자를 공급받게 된다.

원활한 지원이 이뤄지려면 전력제공국들이 신속하게 병력과 장비를 파견하고 외교적 지지를 선언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북한 도발 징후가 명백해졌을 시점에 기밀 정보를 공개해 국제여론을 유리하게 조성하면서 대북 제재를 준비할 시간적 여유를 우방국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이같은 정보 공개는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효과적으로 저지하면서 대만과 영국 등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저항 방식과 러시아의 실패 원인을 배우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자신들의 영토를 강대국의 ‘무덤’으로 만든 우크라이나의 사례는 전쟁 위험을 안고 있는 한국에도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군과 정보당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다 철저히 살피고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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