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의 헌법소원 청구 "정부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기본권 침해"

2022. 4. 12.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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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기 기후소송' 준비하는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김영희 대표

[이상현 기자(shyun@pressian.com)]
기후위기 대응에서 정부의 역할은 크다.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배출 부문 이해당사자와의 조율을 통해 감축 이행 로드맵을 마련한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25일 시행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 제3조 1항을 통해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국제 사회에 제출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도 같은 내용이 담겨있다.

현재 정부의 이 같은 감축 목표는 시급한 위기로 다가온 기후위기 대응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정부가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기후위기를 막기에는 소극적인 방안이라는 주장이다.

과학계 역시 한국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 목표를 더 높게 잡아야 한다고 본다. 지난 4일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3실무그룹보고서는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평균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2019년 지구 온실가스 배출량의 43%를 감축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국가들이 기존에 제출한 NDC로는 달성이 어렵다는 사실도 언급됐다.

각국 시민이 '기후소송'에 나선 배경이다. 기후위기라는 시급한 문제에서 생존권과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더는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 시민들이 나서 '사법'의 작용을 요청하기 시작한 것이다.

런던정치경제대학교 산하 그랜덤 기후변화연구소(The Grantham Research Institute at LSE)가 발간한 자료를 보면 1986년부터 2020년 5월까지 1587건이 넘는 기후소송이 확인됐다. 이 중 80% 이상의 소송이 정부의 불충분한 기후변화 대응을 대상으로 시민이 제기한 소송이었다. 특히 최근에 진행된 기후 소송에서는 '인권'이 주된 이슈였다.

한국에서는 2020년 3월 청소년기후행동의 헌법소원을 시작으로 작년 10월 기후위기비상행동을 비롯한 환경단체들이 같은 내용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다루는 법이 정부의 적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을 강조하지 않아 건강권, 환경권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새로운 소송이 또 준비 중이다. 이번에는 만 5세 이하의 '아기'들이 헌법소원의 청구인이 되었다. 아기들이 청구인이고 부모는 법정 대리인이 되어 정부의 책임을 촉구하는 '아기 기후소송'이 진행된다. 소송 대상은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 제3조 1항이다. 앞서 새만금, 4대강 등 환경과 미래세대 권리에 관한 문제의 소송을 진행해 온 김영희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소속 변호사들과 민변이 헌법소원의 위임을 맡았다. 지금도 청구인을 모집 중이다. 

김 변호사는 "현재 한국 정부의 탄소중립기본법이 기후재난으로부터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에 불충분"하고 국민, 특히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직접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기 기후소송'을 제안한 김 변호사와 지난 8일~11일 사이 진행한 서면 인터뷰를 정리했다.

▲ 2020년 3월13일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청소년 19명은 정부와 국회가 기후변화를 방치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한국에서의 첫 청소년 기후소송이었다. 2022년에는 만 5세 이하 아기들의 기후소송이 준비 중이다. ⓒ청소년기후행동

"피해 당사자인 아기들이 법적으로 직접 다툴 기회...미래세대 권리 침해 구체적으로 고민 필요"

프레시안 : 이번 '아기 기후소송'의 헌법소원 청구 이유가 궁금하다.

김영희 :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이 정한 감축 목표가 파리협정 등 국제 사회에서 합의된 기준에 따라 기후재난으로부터 청구인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에 불충분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과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안전을 보장할 헌법상 의무를 진다. 헌법 전문의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이라는 규정과 헌법 제10조의 개인의 불가침의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국가의 의무규정으로부터 도출되는 국가의 기본권보장 의무, 그리고 헌법 제34조 제6항의 재해 예방 및 그 위험으로부터의 국민의 보호 등이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 부분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에 감축 목표를 정한 이후로 한 번도 목표대로 이행한 적이 없다. 오히려 배출 목표와 실제 배출량 사이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져 왔다. 이번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의 감축 목표 또한 청구인들의 생명권, 행복추구권 및 일반적 행동자유권,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 자유권 및 평등권을 보호하기에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조치에 해당하지 않아서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직접 침해한다.

그래서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 제3조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구한다는 내용을 청구취지로 삼았다. 해당 시행령은 탄소중립법 제8조1항에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35% 이상의 범위에서 정하도록 규정한 내용을 40%로 확정한 내용이다. 결국 시행령 제3조 1항에 의해 국가 정책수립과 집행이 규범력과 구속력을 가지기 때문에 위헌을 다툴 수 있게 된다.

프레시안 : 청구인이 만 5세 미만의 아기인 이유가 있나? '부모' 기후소송이 아닌 '아기' 기후소송을 청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영희 : 기후 보호를 위한 탄소예산(지구 평균온도 상승이 산업화 이전보다 평균 1.5도를 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앞으로 인류가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 양)이 한정되어 있는데, 중장기 감축목표가 너무 낮다는 것은 결국 극심한 온실가스 감축부담을 미래세대에 떠넘기는 짓이다. 이대로 가면 가장 큰 부담과 피해를 겪는 것은 현재의 아기들이다. 아기들의 기본권과 자유를 가장 크게 침해하는 입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피해 당사자인 아기들에게 법적으로 직접 다툴 기회를 주려고 하는 것이다. 

엄마,아빠가 아기들을 위해 소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기들이 직접 소송 당사자가 됨으로써 헌법재판소가 기후위기와 관련하여 아기들의 권리침해와 피해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심리하고 고민하게 해보는 의미도 있다. 아기들의 소송 참여나 청소년들의 소송 참여나 모두 부모들의 법정대리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고, 법적인 문제는 없다.

▲'아기 기후소송'을 위임받아 진행하는 김영희 변호사는 "이대로 가면 가장 큰 부담과 피해를 겪는 것은 현재의 아기들"이라며   "피해 당사자인 아기들에게 법적으로 직접 다툴 기회를 주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wikimedia

프레시안 : 해외에도 아기들이 참여한 기후소송의 사례가 있나?

김영희 :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의 집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1000건 이상의 기후위기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그중에서 아기들만 원고 또는 청구인으로 구성된 기후소송이 진행되는 사례는 알지 못한다.

프레시안 : 이번 헌법소원을 통해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한 어떤 사법적인 판단을 기대하는가?

김영희 :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그 목표에 맞춰 국가정책과 행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단순한 정치의 영역으로 볼 수 없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산업과 우리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규제와 기준의 상한선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직접적인 권리 침해를 당하는 아기들이 중장기 감축 목표를 정한 규정에 대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4대강 국민소송에서 대법원은 소수의견이지만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인정하였다.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해서도 미래세대 기본권에 관한 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작년 3월 기후변화 위험으로부터의 국민 생명과 건강, 미래세대 자유 보호에 대한 국가 의무를 인정했고, 당시 연방기후보호법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미래세대에게 탄소예산을 소비할 권리를 불평등하게 분배하고 그 결과 미래세대의 자유권을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헌법위반"이 있다며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다.

당시 독일 연방기후보호법에 규정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이상 감축이었다. 독일 헌재는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부재하고 탄소예산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헌법소원 심판청구인들인 미성년자들이 2031년 이후 현재보다 더 큰 감축 의무를 감당하게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김태호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강사는 작년 발표한 '기후변화 헌법소송의 논리'에서 독일 헌재의 이 같은 결정은 "헌법상 환경보호 국가목표조항을 고려할 때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청구인들의 자유가 현재와 미래의 각 시점에서 균형 잡힌 형태로 보장될 수 없다고 본 것"이라며 "온실가스의 법적 감축목표 설정과 이행, 감축경로의 제시에 소극적이었던 우리나라의 입법 및 집행 현실에서도 이는 헌법적 지침으로서의 의미가 크다"라고 언급했다.

프레시안 : 향후 '아기 기후소송'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김영희 : 5월 31일까지 청구인 모집을 하고 이후 헌법소원을 제기할 예정이다. 청구인은 어디까지나 아기들이고 부모들은 법정대리인으로서 헌법소원에 참여해주면 된다. 청구에 참여하고 싶은 부모는 소송위임장과 주민등록초본, 가족관계등록부를 첨부해서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에 보내면 된다.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와 민변이 수행하는 헌법소원 소송 위임장.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 김영희 변호사는 "접적인 권리 침해를 당하는 아기들이 중장기 감축목표를 정한 규정에 대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김영희 변호사 제공

[이상현 기자(shyun@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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