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중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 주도..미국은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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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년 전인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습니다.
장제스가 이끌던 중국 국민당 정부는 1942년 4월 6일 국방최고위원회 상무회의를 열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하기로 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미국, 임시정부 내부 분열 · 대표성 문제 이유로 승인 반대 중국의 이런 계획은 미국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중국으로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을 요청받은 미국은 1942년 5월 1일 중국에 답변서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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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년 전인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습니다. 3·1운동 이후 일제 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대한광복군 정부가 있던 러시아 연해주가 아닌 중국 상하이를 택한 것은 상하이에 각국의 공사관이 있는 데다 조계지가 많아, 일제로부터 안전하고 외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였습니다.
중국, 임시정부 승인하기로 결의…"친중 국가 세우려"
중국이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섰을까요. 먼저, 소련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중국 국방최고위원회 상무회의 문서를 보면, 당시 중국은 소련을 가장 크게 의식했습니다. '소련은 대한민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중국이 먼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한다면 소련이 반감을 갖지 않을까'라는 문제가 주로 논의됐습니다. 회의는 "소련이 오랫동안 대한민국에 공을 들여 상당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바, 오히려 대한민국의 혁명 역량이 어느 한 쪽에 완전히 조종되는 것을 막고, 대한민국 내부의 통일을 기하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소련보다 먼저 임시정부를 승인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려 한 것입니다.
미국, 임시정부 내부 분열 · 대표성 문제 이유로 승인 반대
먼저, "대한민국의 독립을 실현하려는 단체들 간에 단결이 부족하다"고 적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부의 분열을 지적한 것입니다. 당시 임시정부는 백범 김구 계열과 약산 김원봉 계열이 갈등을 빚고 있었습니다. 이런 내부 갈등은 '안중근 의사의 조카 안원생이 미국대사관 서기관과 나눈 대화 내용'(▷관련 내용 보러가기), '약산 김원봉이 중국 국민당 정부 실력자 오철성과 나눈 대화 기록'(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711088 ]▷관련 내용 보러가기)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712053 ]
미국은 두 번째 이유로 임시정부의 대표성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해외에서 활동 중인 임시정부와 대한민국에 있는 국민 간의 연계가 불투명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임시정부를 승인할 경우 대한민국이 독립된 이후 대한민국 국민들이 자신들의 정부를 선택할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내세운 이런 이유는 표면적인 것에 불과해 보입니다. 베이징대 한반도연구소는 "미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않은 우선적인 원인은 임시정부 내부 요인이 아니라 국제적 요인에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는 대한민국뿐 아니라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독립 문제도 확정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 당시 인도의 인구는 5억여 명으로 중국보다 많은 최대 인구 보유국이었습니다. 무기만 주면 일본과 싸울 테니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시켜달라고 요구하던 상태였습니다. 미국은 대한민국보다 인도의 독립 문제를 아시아 식민지 문제의 중심 의제로 간주하고 있었습니다. 인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할 경우 발생할 다른 아시아 식민지 국가들의 반발을 우려했습니다. 그렇다고 동맹국인 영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도의 독립을 용인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미국은 또, 대한민국의 또 다른 인접국인 소련의 이권도 고려했습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을 벌인 독일·일본에 맞서 중국뿐 아니라 소련과도 연합국을 형성한 상황이었습니다. 중국과 소련의 이권을 모두 반영해야 한다는 인식이 미국 내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임시정부 분열 안 됐어도 국제적 승인 어려웠을 것"
그럼 임시정부의 내부 분열이 없었다면 국제적 승인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베이징대 한반도연구소 박다정 연구원은 "임시정부가 통합됐어도 연합국의 승인을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임시정부 승인을 둘러싼 미국과 소련, 중국 등 연합국 내 입장이 통일되기가 힘들었을 것이란 분석입니다. 다만, 이렇게 구조적으로 승인이 어려웠던 상황에서, 국제적 승인을 얻기 위해 내부 통합이 가장 절실한 시점에서 임시정부가 통합이 아닌 분열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국제적 승인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 됐다고 박 연구원은 설명했습니다.
김지성 기자jis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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