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망신 주기' 인사청문회, 언제까지 봐줘야 하나요

배준용 기자 2022. 4. 1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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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22년 된 인사청문회 제도
이대로 두면 안 되는 이유
2015년 2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장면./조선일보DB

윤석열 정부 1기 내각의 인선이 이루어지면서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필두로 각 부처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가 줄줄이 열릴 예정이다. 특히 윤석열 당선인의 40년 지기로 알려진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을 주도했던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는 여야 간 치열한 검증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론과 전문가들 사이에선 “인사청문회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인사청문회가 대통령의 인사권 남용을 막고 청렴하고 능력 있는 고위공직자를 선출한다는 원래 취지와 달리 지금은 양극화된 정치의 투견장, 일명 ‘망신주기 쇼’로 전락했다는 게 이들의 문제의식이다. “지금 같은 인사청문회라면 하지 않는 게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

◇가족이 뜯어말리는 ‘장관 후보자’

물론 인사청문회의 순기능은 존재한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하고 고위공직자 사회의 윤리의식과 청렴도를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측면이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례처럼 인사청문회와 후보 검증 과정이 고위공직 후보자 본인이나 가까운 가족의 중대한 위법 여부를 밝혀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인사청문회가 장관 후보자로서의 능력과 자질보다는 도덕적 흠결을 찾아내 망신 주는 식으로 변질돼 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서울의 한 대학교수는 “교수 사회에서는 ‘장관 후보자를 수락하는 사람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라는 얘기가 돈 지 오래됐다”며 “장관 후보자 자리는 이미 기피직이고, 본인이 의지가 있어도 가족들이 ‘집안 망하게 할 생각이냐’며 뜯어말리는 일이 다반사”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청와대는 장관 후보자를 찾는 게 늘 ‘하늘의 별 따기’다.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한 대통령직인수위 관계자는 “1기 장관으로 미리 점찍은 인사 중 인사청문회에 대한 부담과 가족들의 거센 반대에 입각을 사양한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식 인사와 ‘청문회 패싱’이 인사청문회 취지를 더 퇴색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 위장 전입, 병역 기피, 불법적 재산증식, 세금 탈루, 연구부정행위, 음주 운전, 성범죄 이력을 부적격 기준으로 정한 7대 기준에 따라 장관 및 고위급 인사를 하겠다고 했지만, 후보자 대부분이 7대 기준을 넘지 못하는 촌극이 연이어 벌어졌다. 결국 임기 1년이 지난 이후부터는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더라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는 일이 빈발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청문회 결과를 무시하고 장관 임명을 강행한 사례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포함해 총 34번으로, 이는 2005년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 대상자로 포함된 이후 가장 많다. MB정부가 17번으로 두 번째고, 박근혜 정부가 10번, 노무현 정부가 3번이었다. “국회와 야당이 반대해도 어차피 임명할 거면 청문회를 왜 하느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정치 퇴행 부르는 인사청문회

전문가들은 “현 인사청문회 제도는 장관 임명을 어렵게 하는 걸 넘어 민주정치의 퇴행적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이 내각이 아닌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폐쇄적인 국정 운영에 매몰된다는 것이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공유하면서도 정책적 능력과 고위공직자의 기본 요건을 갖춘 사람들이 장관으로서 책임 있게 국정을 해나가는 게 바람직하다”며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로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해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만한 사람들을 장관에 앉히고, 측근들은 청와대 수석으로 불러 모아 국정을 운영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청와대와 행정부의 간격이 벌어져 국정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현재의 인사청문회가 의도치 않게 장관이나 정치인의 역할을 과도하게 부풀리는 것도 문제다. 박 교수는 “한 정권의 장관은 사실 길어야 1~2년 부처를 통솔하며 대통령의 철학을 일부 구현하는 소모품에 불과한데, 현재의 인사청문회는 마치 장관 한 명의 능력과 흠결이 그 부처의 역량과 위상을 송두리째 바꿀 것처럼 따지고 든다”고 했다. 박 교수는 “이런 식의 인사청문회가 반복되면 법치나 ‘제도에 따른 정치’보다 장관 한 명, 정치인 한 명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암암리에 퍼지고, 결국 인기영합적 정치인이나 장관들이 그런 시류에 편승해 권력을 남용하거나 악용할 여지도 더 커진다”고 지적했다.

◇ ‘국민 정서’ 넘어선 공통기준 필요

이에 오래전부터 여야에서도 인사 청문회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실질적으로 개선된 건 거의 없다. 전문가들은 “여야 할 것 없는 내로남불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거대 정당들이 모두 정략적으로 여당일 때는 인사청문회 개선을 주장하고 야당일 때는 검증 기준을 더 강화하자는 자기 모순적 행태를 반복한 탓이다.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여야가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공통된 검증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국민 정서’ 같은 모호한 기준을 배제하고 정치권과 국민들이 대체로 공감할 수 있는 공통의 구체적인 기준을 적용해야 발목잡기식 인사 검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가 사전 검증을 독점하기보다 미국처럼 국세청, 경찰 등 검증기관을 여러 곳으로 늘리고, 서욱 국방부 장관 사례처럼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하는 방식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현행 20일 내로 규정된 청문회 기간도 늘리고 영국처럼 청문회 위원장이 과도하게 개인적이거나 정파적인 검증을 위한 질문은 제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인사청문회를 운영한 지 20년이 넘은 만큼 지난 사례들을 분석하면 우리 현실에 맞는 유의미한 기준과 개선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여야 합의가 어렵다면 전문가 위원회를 마련해 위임하는 방법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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