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일본 굳건"..엔화 추락에도 긍정론 강한 이유는 [뉴스 쉽게보기]

임형준, 박재영 2022. 4. 16. 09: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매일경제 '디그(dig)'팀이 연재하는 '뉴스 쉽게 보기'는 술술 읽히는 뉴스를 지향합니다. 복잡한 이슈는 정리하고, 어려운 정보는 풀어서 쉽게 전달하겠습니다.
1만엔 권 화폐 [사진 = 연합뉴스]

일본 화폐인 엔화 가치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보신 적 있나요? 최근에 이런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거든요. 보통 '1000원=100엔'이라고 많이들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970원=100엔' 정도래요. 엔화 가치가 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하는데, 막상 숫자를 보니 생각보다 별로 놀랍지는 않죠. 그런데 왜 이렇게 언론은 '엔저 현상(엔화 가치가 낮아지는 현상)'을 뉴스 소재로 많이 다룰까요. 그저 멀고도 가까운 나라인 일본 이야기라서 더 호들갑인 걸까요?

고개 드는 일본 경제 '위기론'

일단 엔저 현상이 최근 주목받는 건 달러 외에 가장 안전한 화폐이자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던 엔화가 점점 지위를 잃어가는 게 아니냐는 일부 전문가의 분석 때문이에요.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자리 잡은 근거는 그만큼 일본 경제가 탄탄하다는 믿음이었겠죠. 하지만 최근 들어 이 믿음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어요. 일본 경제가 위기라고 부를 만한 상황을 맞았다는 거예요.

사실 일본의 경제 상황과 엔저 현상에 대해선 전문가들 전망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요. 워낙 큰 나라의 경제이다 보니 쉽게 어느 쪽이 옳다고 단언하기도 어렵죠. 수많은 경제주체의 선택과 셀 수 없는 변수가 계속해서 작용하는 게 국가 차원의 경제니까요.

그래도 언론과 전문가 집단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근거들은 있어요. 오늘은 엔저 현상을 두고 엇갈리는 해석의 주요 근거들을 정리해 보려고 해요.

일본은 빚쟁이?

[자료 출처 = 국제통화기금(IMF)]
일본은 경제 규모 대비 빚이 가장 많은 국가예요. 보통 '부채 비율'이 높다고 표현하는데, 일본 경제를 두고 위기론이 등장할 때마다 항상 따라붙는 근거가 이 부채 비율이에요. 일본 부채 비율은 지난해 10월 기준 257%로 세계 1위였어요. 영국·프랑스·미국이 109~133%, 독일과 중국이 70% 수준이었던 걸 고려하면 압도적으로 높아요.

이렇게 많은 빚을 지게 된 건 일본의 '확장적 재정정책' 때문이에요. 혹시 뉴스에서 '돈 풀기'라는 표현을 들어보셨나요? 한 나라가 돈을 푼다는 건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투자와 소비를 촉진한다는 의미인데요. 이럴 때 쓰는 게 확장적 재정정책이에요. 정부가 빚을 내서(국채를 발행해서) 직접 여러 분야에 투자하고, 지원금을 나눠 주며 소비를 촉진하는 걸 말하죠.

일본의 부채 비율이 높은 것도 이런 정책을 오래 펼쳤기 때문이에요. 1980년대 후반 투자 광풍으로 생겨났던 일본의 '경제 버블'이 1990년대 초반에 꺼지자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기 시작했고, 이 정책이 오래 이어져 왔어요.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라는 사회구조도 부채를 줄이지 못한 요인이었어요. 복지 예산을 계속 늘려야 하는데 젊은이들은 감소하니 세금으로 벌어들일 돈이 줄어들었으니까요.

"일본 경제·엔저 문제없다"는 주장의 근거들

①다른 나라에 빚진 건 별로 없다

[자료 출처 = 일본은행, 2020년 기준]
이렇게 빚을 많이 진 나라인데도 일본 경제가 탄탄하다는 믿음은 비교적 잘 유지돼 왔어요. 빚은 많지만 다른 나라가 아닌 일본 내 기관들에 진 빚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에요. 다시 말해 일본 정부가 빌린 돈은 대부분 일본 국민에게 빌렸고, 엔화로 갚으면 된다는 뜻이에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정말 최악의 상황이 닥칠 땐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에서 돈을 찍어내 갚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죠. 다른 국가에 큰 빚을 진 나라들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거예요.

②'엔저' 때마다 수출로 더 벌었다

엔화 가치가 떨어졌을 때마다 수출이 늘어나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많아졌다는 점도 일본 경제를 안정적으로 지탱하는 힘이었어요.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상대적으로 달러 가치는 높아져요. 예를 들면 '1달러=100엔'이었던 환율이 '1달러=120엔'이 되는 거예요. 이러면 외국에 수출하고 달러로 대금을 받았을 때 더 많은 돈을 벌겠죠. 똑같이 100달러를 받아도 1만엔이 아니라 1만2000엔을 벌게 되니까요.

그래서 일본의 수출 기업들은 과거 엔저 현상이 일어났을 때 무역에서 큰 폭의 흑자를 냈고, 기업가치가 오르면서 주식 시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어요. 이러면 곧 엔화 가치가 하락을 멈추고 적정 수준에서 유지되곤 했죠.

이런 이유 때문에 일본 정부는 오히려 엔저 현상을 유도하는 정책을 펼쳤어요. 2013년 아베 신조 정권이 시작한 '아베노믹스' 정책이 대표적이에요. 아베노믹스는 기준금리를 '0%(제로)' 수준으로 낮춰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기업 수출을 늘려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어요.

중앙은행이 정하는 기준금리를 낮추면 시중에서 예금이나 대출 이자율도 함께 낮아지는데요. 이러면 대출을 받아 투자하는 사람은 늘어나고, 예금을 하는 사람은 줄어들어서 '돈 풀기 효과'가 나타나요. 앞서 설명한 '확장적 재정정책'처럼 돈을 푼다는 뜻에서 이런 저금리 정책을 '확장적 통화정책'이라고 부르죠. 일본은 여러 측면에서 돈을 푸는 정책을 펼쳐온 거예요.

③해외에 가진 자산도 넘친다

일본이 해외에 보유하고 있는 자산 규모가 30년째 전 세계 1위를 지킬 만큼 막대하다는 점도 중요해요. 가진 게 워낙 많다는 점은 일본 경제가 아직 안정적이고, 엔화도 여전히 안전자산이라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으니까요.

2020년 기준 일본 정부와 기업, 개인이 해외에 보유한 순자산(자산-부채)은 356조9700억엔(약 3515조원)에 달했어요. 일본인이 외국 회사나 부동산, 주식, 채권 등을 엄청나게 사서 갖고 있다는 거죠. 이를 '대외 순자산'이라고 부르는데, 워낙 이 금액이 크다 보니 이들 자산에서 꾸준히 발생하는 수익도 커요.

일본의 대외 순자산 규모가 큰 건 투자 광풍이 불었던 1980년대 후반 '경제 버블' 시기에 투자자들이 해외 자산까지 적극적으로 사들였기 때문이에요. 그 덕에 거품이 꺼진 후에도 30년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죠.

막대한 해외 자산은 일본 기업들의 수출이 주춤할 때 버팀목 역할을 했어요. 앞서 언급했던 '엔저 현상→기업 수출 증가' 흐름은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다가 둔화하기 시작했는데요. 그 후에는 해외 자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이 빈자리를 메꿨어요. 수출로 돈을 좀 못 벌어도 각종 자산에서 올린 수익까지 따지면 결국 일본에서 빠져나가는 돈보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이 많았어요.

"일본, 예전 같지 않다" 위기론의 근거들

쭉 살펴본 근거들을 보면 일본 경제는 꽤 탄탄해 보이는데요. 일본 화폐인 엔화도 안전한 자산으로 취급받는 게 맞는 것 같고요. 그런데도 엔저 현상을 두고 위기론이 들려오는 건 '예전과 달라진 점들' 때문이에요.

①안전자산이라더니 위기에 떨어지는 엔화 가치

[단위 = 달러 당 엔]
기본적으로 안전자산은 국제적 혼란이나 위기 상황에선 찾는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는 경향을 보여요. 그래서 '안전자산'으로 불리는 거죠. 일본 엔화는 국제적 위기 상황이 닥칠 때마다 가치가 높아지곤 했어요. 실제로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1달러=110엔' 정도였던 엔화 가치는 약 4개월 만에 '1달러=80엔' 수준까지 급등했어요.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적 혼란이 발생한 최근에는 달랐어요. 전쟁 발발 후 엔화 가치는 주요 25개국 화폐 중 러시아 루블화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하락 폭을 보였거든요. 사실상 가치가 가장 많이 떨어진 거죠.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패턴이니 '엔화의 안전자산 지위가 흔들린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②주요국들과 점점 벌어지는 기준금리

최근 미국은 '돈을 그만 풀겠다'고 선언하고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어요. 코로나19 시대에 경기 침체를 막고자 기준금리를 내려 돈을 풀었는데, 물가 상승이라는 부작용이 일어났기 때문이죠. 그런데 일본 기준금리는 여전히 -0.1%이고 '제로금리'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이에요.

일본을 제외한 주요국도 미국을 따라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는데요. 이렇게 주요국 간에 기준금리 차이가 많이 나면 상대적으로 엔화 가치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일본에선 엔화를 자꾸 푸는데, 미국에선 달러화 풀기를 그만하면 당연히 상대적으로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지겠죠.

③산업구조 변화에 줄어든 엔저 수출 효과

일본 기업들이 '엔저 현상'을 바탕으로 예전처럼 큰 수출 증가 효과를 볼 수 없게 됐다는 점도 중요해요. '엔저→무역 흑자 확대'라는 예전 공식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게 된 거죠. 일본 기업들은 세계화 추세에 따라 생산기지를 해외로 많이 이전했는데요. 이러면 현지에서 제품을 만들어 팔면 되니 일본에서 수출할 물량은 적어져요. 예전만큼 환율 효과를 보기는 힘들어진 거예요.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은 현지에 재투자하는 경우가 많아서 '수출 증가→일본 내 소득 증가→소비 증가'로 이어지는 내수 경제 활성화 효과도 줄어들었고요.

④고유가 탓 42년 만에 경상수지 적자 위기

지난 1월 일본은 역대 2위 규모(1조1887억엔)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다는 소식으로 떠들썩했어요. 지난해 12월에 이어 2개월 연속 적자였어요. '경상수지'란 앞서 언급했던 '해외로 빠져나간 돈과 벌어들인 돈'을 따져보는 지표예요. 해외로 빠져나간 돈이 더 많으면 적자, 벌어들인 돈이 많으면 흑자죠. 일본은 연 단위로는 42년 동안 흑자를 기록했어요.

그런데 올해는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와요. 최근 벌어진 전쟁 때문에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자, 에너지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일본에선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어요. 이런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고, 엔저로 인한 수출 증대 효과도 줄어든 상황이라 경상수지 적자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어요.

'엔저'는 어떤 영향 미칠까? 엇갈리는 전망

앞서 살펴본 근거들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엔저 현상이 일본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일본 내에서도 전문가들 간에 전망이 엇갈려요. 여전히 긍정적 영향이 부정적 영향보단 더 크다는 주장과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어요.

일본은행은 지난 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엔화 가치가 10% 하락하면 일본 국내총생산(GDP)이 1%포인트 증가한다'고 분석했어요. 산업구조가 바뀌긴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엔저 현상이 일본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에요.

반면 엔화 가치가 하락해 수입 물가가 높아지고 무역 적자가 계속되는 부정적 효과가 클 것이라는 전망도 있어요. 일본 최대 경제 신문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국제유가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오히려 무역 적자가 불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어요.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05달러이고 엔화 가치가 달러당 110엔일 때' 올해 일본 무역적자는 22조7000억엔으로 예상됐어요. 같은 조건에서 엔화 가치가 달러당 130엔으로 떨어지면 무역적자는 25조4000억엔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고요. 엔화 가치가 떨어졌을 때 기업들이 수출에서 누리는 이익보다 원자재를 수입할 때 늘어나는 비용이 더 크다는 분석이에요.

과연 어떤 쪽이 정답을 말하고 있을까요? 일단 일본 정부는 엔저 현상의 긍정적 측면을 더 믿는 것 같은데 말이죠.

[뉴미디어팀 디그(dig)]
[임형준 기자 / 박재영 기자]

[뉴스 쉽게 보기]는 매일경제 뉴미디어팀 '디그(dig)'의 주말 연재물입니다. 디그가 만든 무료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술술 읽히는 다른 이야기들을 매일 아침 이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매일경제 뉴스레터'를 검색하고, 정성껏 쓴 디그의 편지들을 만나보세요. 아래 두 기자 페이지의 '채널' 링크를 누르셔도 구독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