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돌아온 円低 시대

선우정 논설위원 2022. 4. 18.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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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가치가 가파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사진은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 보관된 엔화 지폐.

일본 우파 언론이 때가 되면 반복해 보도하는 기사가 ‘쓰시마(對馬·대마도) 위기론’이다. 한국 자본과 관광객이 밀려들어와 쓰시마가 팔려나갈 위기라고 한다. 과장이 분명하지만 엔저(円低·엔화 약세) 시대에 쓰시마 거리를 걸으면 실제로 한국 관광객이 너무 많아 여기가 일본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요즘처럼 엔화가 약세를 보인 2018년 한 해 동안 쓰시마를 방문한 한국인 수가 쓰시마 주민의 14배에 달했다.

▶대일 무역수지처럼 적자가 만성이 돼 가는 분야가 대일 여행수지다. 2005년 이후 2020년까지 16년 중 11년이 대일 여행수지 적자였다. 2018년엔 적자 규모가 37억달러까지 올라갔다. 한국 관광객이 홋카이도 최북단까지 올라가 엔화를 썼다. 그런데 이럴 때 기다렸다는 듯이 정반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엔화를 쓰는 대신 사들여 차곡차곡 저축하는 사람들이다.

▶2009년 3월 도쿄 신주쿠 한인타운 환전소에 긴 줄이 생겼다. 글로벌 경제 위기 때문에 원엔 환율이 크게 올랐다. 2007년 800원대에서 단숨에 1600원대로 뛰었다. 그동안 통장에 모아둔 엔화를 원화로 바꿔 본국으로 송금하려는 일본 주재 한국인들이 몰린 것이다. 환차익이 엄청났다.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때가 오면 ‘엔 테크’를 한다. 엔저 때 엔화를 사고 엔고(円高) 때 내다팔아 차익을 챙긴다. 기다리면 안정적인 차익을 거뒀다. 환율 안정에 도움도 준다.

▶통화를 뒷받침하는 일본 경제의 기초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엔화에 대한 국제적 신뢰는 간단치 않다. 엔저는 영원하지 않다는 믿음이다. 실제로 일본 엔화는 현존하는 국제 통화 가운데 장기적으로 미국 달러를 싸구려로 만든 대표적인 통화다. 1970년 달러당 360엔이었던 엔화가 지금 120엔대다. 장기적으로 가치가 이렇게 오른 통화가 없다. 같은 기간 달러당 310원에서 1200원이 된 한국 원화와 비교하면 외환 투자자들이 왜 엔화를 선호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은 그동안 물가도 크게 오르지 않았다. 상품과 서비스 질이 떨어졌다는 얘기도 없다. 일본 언론은 ‘싸구려 일본’이라고 개탄하지만 ‘바겐세일 일본’ ‘가성비 일본’이 객관적인 평가일 것이다. 코로나로 닫혔던 문이 열릴 때 일본 쇼핑에 나설 한국의 대기 수요가 상당하다고 한다. 한 일본 외교관은 “요즘 한국 경제인을 만나면 한일 관계보다 저렴한 일본 골프장 얘기를 더 자주 한다”고 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엔저 시대는 ‘바가지 한국’을 되돌아보는 기회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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