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손상, 탈모에 발톱까지 빠져.. 코로나 감염 뒤 넉달, 마음이 무너집니다"

류호 2022. 4. 20.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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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일상, 남겨진 상흔] <2> 끝나지 않는 롱코비드
편집자주
코로나19가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일상이 2년여 만에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상처마저 회복된 건 아니다. 제대로 돌보지 않은 상처는 덧나고 곪아 사회적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다. 또 다른 팬데믹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남은 문제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백신 피해자, 후유증, 의료 인력, 교육 문제 등에 대해 4회에 걸쳐 알아본다.
18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병원에서 롱코비드로 장기치료 중인 김지훈(가명)씨가 폐 기능 검사를 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지난해 12월 처음 코로나19에 걸렸습니다. 완치 뒤 회복하는 데 온 힘을 다 쏟아부었습니다. 그나마 나아졌다는데, 폐 기능은 50% 정도만 회복됐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지난 3월, 목이 아프길래 혹시나 싶어 자가검사키트를 해 봤어요. 두 줄이 뜨더군요. 델타 변이에 이어 오미크론 변이에도 걸린 겁니다. '지금 이 상황이 뭐지' 머릿속이 하얘지더군요. 채 회복도 안 됐는데 또 걸리면 큰일 나는 건 아닌지, 가족들 앞에선 차마 말 못 했지만, 정말 무서웠습니다.

안녕하세요. 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는 김지훈(39·가명)이라고 합니다. 10년 넘게 복지위에서 일했습니다. 보건의료 분야에 대해서는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19 앞에선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감염에 재감염을 겪으면서 가장 답답했던 건 '무력감'이었습니다. 완치 뒤에 뭐가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설명해주질 않으니, 홀로 견뎌내면서 방법을 찾아내야 했습니다.


롱코비드, 대처법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지금도 온몸에 안 쑤시는 곳이 없습니다. 운동은 꿈도 못 꿉니다. 체력이 아직도 바닥입니다. 요즘 말하는 '롱코비드' 환자죠. 지난해 12월 이후 넉 달 내내 고구마를 한입 가득 문 듯한 답답함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롱코비드가 뭔지, 명쾌한 설명은 없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서울의 상급종합병원 세 군데를 돌아다녔지만 비슷했습니다. 어떤 곳은 '회복될 때까지 안정을 취하라'고 하고, 또 다른 곳은 오히려 '숨이 가빠질 정도로 활동해야 몸이 회복된다'고 합니다. 결국 대형병원 이곳저곳을 다니며 더블 체크하고, 그렇게 들은 내용의 중간쯤 어드메쯤에 답이 있을 거라고, 그렇게 짐작만 할 뿐입니다.


"지금은 대증치료만 해줄 뿐" 의사의 솔직한 고백

18일 오후 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일산병원에서 롱코비드로 장기치료 중인 환자가 진료를 받고 있다. 최주연 기자

18일 경기 고양시의 일산병원에 간 것도 그 과정 중 하나입니다. 한 달 만에 폐 기능 검사를 했는데, 이전보다 불기는 수월해졌습니다. 하지만 가슴팍의 통증은 여전했습니다. 회복의 길은 아직도 멀구나 싶어 답답했습니다.

그래도 희망은 보였습니다. 이날 검사가 끝나니 '폐 기능은 70% 이상 회복됐다' '다음엔 조영제를 투여한 CT 촬영은 안 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그동안 고생하셨겠어요"라고 말해주는데, 괜히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하지만 피로감은 왜 이렇게 오래 가는지, 몸 곳곳에 나타나는 이런저런 이상 반응은 왜 일어나는지 물었더니 "롱코비드는 모든 병원이 이제 알아가는 단계라 대증진료를 하며 찾는 수밖에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오히려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퇴원 두 달 뒤 폐 기능 50%만 회복

재감염된 롱코비드 환자 김지훈(가명)씨 진료 일지. 그래픽=김대훈 기자

해외 뉴스에서나 보던 롱코비드를 겪게 된 건 지난해 12월부터입니다. 델타 변이에 감염돼 고열에 시달리다 서울의 A종합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39도 고열이 사흘 내내 이어지면서 에크모를 달 수도 있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다행히 다음 날 열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12월 17일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했습니다.

하지만 퇴원 이후 일상생활은 불가능했습니다. 1분이라도 걸으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습니다. 평소 10분이면 걸어갈 거리는 30~40분이나 걸렸고요. 거실에서 화장실까지 가는 것도 힘들어 며칠간 종일 누워있기만 했습니다. 밤에는 진통제가 없으면 잠들 수 없었죠.

1월 중순 들어서는 증상이 한층 더 본격화됐습니다. 아침에 샤워하는데 머리 한 움큼이 쑥 빠지더군요. 그땐 머리 감는 게 큰 스트레스였죠. 피부과에 갔더니 오랜 기간 고열로 두피에 열이 올라 빠지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일주일 뒤에는 갑자기 몸에 부종과 고름이 생겼습니다. 병원에 가서 수술받았습니다. 멀쩡했던 이가 깨지고 가만히 있던 발톱도 빠졌습니다. 2월 초에는 B종합병원에서 폐 기능 검사를 받았더니 정상인의 52% 수준이라고 하더라고요.


계속된 이상 증상에 주눅… 대인기피증 생겨

18일 오후 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한 종합병원에 폐 기능 검사 관련 안내문이 붙어있다. 최주연 기자

망가진 건 몸뿐이 아닙니다. 몸이 이상하니 마음도 이상해졌습니다. 지금이야 1,600만 명 넘게 감염돼 인식이 바뀌었지, 제가 처음 감염됐을 때만 해도 죄인 같은 심정이었어요. '왜 내가 중환자가 돼야 하나'란 생각에 괴로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괜히 우울해지고 주눅 들더라고요. 한동안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워서 피해 다녔어요. 무조건 혼밥(혼자 밥 먹기)을 했죠. 또 감염될까봐 겁이 났거든요. 완치됐다고, 멀쩡해뵌다고 하니 누구한테 말도 못 하고 혼자서 끙끙 앓았죠. 마스크는 절대로 벗지 않았죠. 마스크를 벗는 것 자체가 두려웠습니다.

이런 생각을 떨쳐내고 몸이 천천히 회복되는 시점에 또 오미크론에 감염됐습니다. 다행히 치료를 잘 받아서 낫긴 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안 걸리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뭔가, 하는 생각에 정신적 충격이 아주 큽니다. 첫 감염 때 입원 병상 맞은편에 세 번 감염돼 입원한 40대 환자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내가 저렇게 될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어 무섭습니다.


"후유증 대책 미리 짰다면 헤매는 환자 줄었을 텐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인 권덕철(왼쪽) 보건복지부 장관과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청장)이 1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조정안 발표를 마친 뒤 국민들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몸은 차츰 회복되고 있습니다. 회복되는 도중에 재감염된 거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곤 하지만, 요즘은 그래도 2, 3층 정도는 올라갈 수 있고 운전도 1시간 가까이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가끔씩 '코로나19 이전으로 완벽하게 돌아갈 수 있을까' 불안하긴 합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게 이렇다 보니 주변에선 저를 '코로나 박사'라 부릅니다. 넉 달 동안 온갖 병원을 다 돌아다닌 사람이다 보니, 어디서도 답을 못 들은 분들이 제게 다 물어봅니다.

제가 제 신분과 병력을 여기다 밝히는 건 그 때문입니다. 국회의원 보좌관이니 이제까지 수차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에다 '재감염률을 다시 봐야 한다', '후유증 센터가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알겠습니다'란 대답이 전부였죠.

롱코비드 대책, 지금이라도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서 저처럼 헤매는 환자가 조금이라도 줄어들었으면 합니다. 코로나 박사, 더 이상 안 하고 싶습니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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