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수표도 주더라"..한덕수와 김앤장, 그리고 김동연

최경재 economy@mbc.co.kr 2022. 4. 2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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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한덕수였나? '회전문 인사' '고액 연봉' 논란

우리나라는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공존합니다. 대통령제이면서도 의원내각제의 요소가 가미된 독특한 체제라고들 하지요. 왕조시대의 표현을 빌리면, 총리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위치에서 대통령의 명을 받아 내각을 통할합니다. 명목상 2인자이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대통령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진짜 '넘버2'인지 좀 묘한 자리입니다. 가끔 대통령이 '책임총리'라며 굳이 힘을 실어주는 걸 보면, 누가 임명되느냐에 따라 총리의 위상도 그때그때 달라지는 게 현실입니다.

어찌됐든 총리는 행정부의 2인자입니다. 장관들에 대한 임명을 제청하거나 해임을 건의할 수도 있습니다. 주어진 권한과 책임만큼 능력과 자질에 대한 엄정한 검증이 따를 수밖에 없는데요. 그래서 장관 후보자들과 달리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정식 임명될 수 있습니다. 과거 DJP 공동정부의 첫 총리였던 김종필 씨(JP)도 반 년 가까이 '서리'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설움을 겪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첫 총리로 지명된 한덕수 후보자. 경제와 통상 등 분야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고, 총리는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화려한 '스펙'으로 내정과 동시에 주목을 받았지만, 바로 이 경력 탓에 궁지에도 몰려 있습니다. 공직에서 로펌, 로펌에서 다시 공직으로 돌고 도는 이른바 '회전문 관행'의 상징적인 인물이란 게 문제이죠. 로펌에서는 이른바 '고문료'도 많이 받았습니다. 김대중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뒤 8개월동안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의 고문으로 일했다가 다시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로 발탁됐습니다. 이후 2017년 12월부터 다시 김앤장 고문으로 4년 넘게 일하다 이번에 또다시 총리 후보자가 된 겁니다. 김앤장에서 받은 고문료만 5년간 19억 원이 넘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이렇게 큰 돈을 받은 걸까요?

■ 1분의 대화 "청문회에서 밝히겠다" 김앤장은 "영업 기밀" 반복

한 후보자가 처음 김앤장 고문으로 있었던 시기에 김앤장은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했다는 해외 사모펀드 론스타를 법적 대리했습니다. '론스타 사태'에 관여했다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한 후보 측에서는 "관여한 적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습니다.

본인에게 직접 몇 마디라도 더 들어보려면 어떻게든 한 후보자를 만나야 했습니다. 아침 일찍 그의 집 앞에서 무작정 기다렸습니다. 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에 출근하려고 현관문을 나서던 한 후보자에게 명함을 건네는둥마는둥 하며 다급히 물었습니다. 그가 차에 오르기까지 불과 10여 미터를 걷는 사이 답변을 이끌어내야 했습니다. 의외로 한 후보자는 침착한 반응이더군요.

제가 "론스타 사태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으셨다는 말씀에 의문이 여전하다"고 묻는 사이, 한 후보자는 자신의 명함을 자연스럽게 꺼내서 제게 건넸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러(?) 온 기자를 갑자기 만났는데도, 전혀 당황하거나 불쾌해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관료 경험에서 몸에 밴 태도로 느껴졌습니다.

한 후보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청문회에서 반드시 진정성 있게 말씀드리겠다"고요. 이 한 마디를 반복한 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올라타더군요. 그러더니 창문을 열고 "아침 일찍부터 너무 고생 많이 하세요"라고 한마디 더 남긴 채 자리를 떠났습니다. 1시간여를 기다렸지만 나눈 대화는 1분이었는데요. 제게 남은 건 손에 쥐고 있던 그의 명함 한 장뿐이었습니다. 한글 이름 석 자에 휴대전화 번호, 이메일 주소. 이 세 가지가 전부였습니다. 스펙은 화려한데, 명함은 간결했습니다.

그렇게 인터뷰가 별무소득이고보니 허무하더군요. 고문료를 받은 사람에게선 답을 구하지 못했으니, 이번에는 돈을 준 사람을 찾아봤습니다. '김앤장' 측에 한 후보자를 영입한 과정 등을 물었지만 "알려드릴 수 없다"는 답만 돌아오네요. 그들의 영업 기밀이기 때문입니다. 역대 인사청문회에서도 김앤장은 전관예우로 자주 도마 위에 올랐지만 '후보자가 고문 시절 무슨 일을 했는지', 또 '고문료룰 책정한 기준은 뭔지' 질문이 쏟아질 때마다 답변은 항상 애매모호했습니다.

[2013년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中] 이장우/국회의원: 약정서를 박한철 후보께서 지금 갖고 있지 않다, 이렇게 하시는데 김앤장에서 이것 공개할 수 있습니까 유국현/김앤장 대표 변호사: 그것은 저희들의 생명인데요. 영업 관련 비밀이고, 그다음에 각 구성원 전원의 모든 사항이 거기 다 들어가 있습니다.
[2008년 2월 21일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中] 민병두/국회의원: 노동 없이 임금 없지요? 이재후/김앤장 대표 변호사: 예 민병두/국회의원: 그러면 구체적인 자문 없이‥ 이재후/김앤장 대표 변호사: 저희들한테 도움을, 저희가 받고 있습니다. 그런 분을 모시는 것은 전체적으로 위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동연 "장관 봉급 20배‥ 백지수표도 제안받았지만 거절"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 '전관 영입'의 세계. 한덕수 후보자에 견줄 만큼 정파를 넘나들며 고위직을 지낸 다른 '고스펙' 전직 관료를 찾아봤습니다. 최근 대선에도 출마했던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떠올랐습니다. 노무현 정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이명박 정부의 기재부 차관, 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조정실장, 문재인 정부에선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지낸 뒤 국무총리 후보로도 낙점됐지만 고사했습니다. 그 뒤 김앤장 등 대형 로펌들의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는 겁니다.

그런 김 전 부총리를 여러 차례 설득 끝에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을 그만뒀을 때부터 김앤장 등 대형 로펌의 이른바 '러브콜'이 쇄도했고 더 높은 자리인 문재인 정부 경제부총리를 퇴임했을 당시엔 영입 의사를 묻는 연락이 더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영입을 제안한 사람을 지목하진 않았지만 김앤장을 움직이는 최고위층의 연락을 받았다고 귀띔했습니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인터뷰] "자리에 와달라는 연락이 너무 많이 와가지고 제가 그걸 피하려고 경기도 양평에 농가 방을 하나 얻어서 6개월 가서 칩거를 했어요. (경제부총리 퇴임했을 때는?) 더 많이 왔었죠. 실무 레벨에서 제게 연락오는 사람은 없었고요. 거의 최상위층 되시는 분들이 연락오거나 만나거나 그렇게 할 때 이야기가 나오죠 저 같은 경우는 이제 최고위층을 했잖아요. '어떤 조건을 해드리겠다' '어떤 일 맡아주십시오' 이런 이야기까지 할 수가 없어요 '그냥 같이 와서 했으면 좋겠습니다'라든지 큰 이야기를 하죠."

특히 고문료에 대해선 사실상 '백지수표'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인터뷰] "굉장히 많은 연봉과 대우를 제시받았습니다. 아마 제가 받던 장관급 보수보다 뭐 10배, 20배 정도 되는 보수 제의를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공무원 보수 규정에 따라 올해 기준 장관 연봉인 약 1억 4천 만원을 감안하면 로펌 등에서 제안한 연 고문료는 최대 28억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이런 거액의 고문료를 받으면 어떤 활동을 할까? 사실상 로비스트의 역할을 맡아 결국엔 로펌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인터뷰] "간판 역할을 해주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전략을 짜거나 비즈니스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점이 하나 있을 거고 두 번째는 로비스트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런 분위기에) 사회화가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논리에 빠져 들어서 확신범이 될 수가 있어요. 당연히 직간접적으로 정부 정책의 결정이나 집행에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죠. 스스로 자신에게 대는 잣대가 너무 관대하고 루스(느슨)한 겁니다."

김 전 총리는 지난 17일 MBC 〈스트레이트〉와의 인터뷰가 방송된 뒤 SNS 등을 통해 자신이 모든 영입 제안을 거절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한 전 총리의 김앤장과 공직을 넘나든 회전문 행보를 부적절한 행태'라고 거듭 비판했습니다.

■ 한덕수 고문 내역 있어도 비공개..이유는?

사실 한덕수 후보자의 김앤장 고문 시절 활동 내역을 알고 있는 곳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바로 법조윤리협의회인데요. 법조인은 사건 수임자료를, 비법조인은 고문 활동 내역을 법조윤리위원회에 서류로 제출해야 합니다. 그런데 국회가 법조윤리위원회에 법조인 출신의 수임 자료 제출을 강제할 수 있지만 비법조출신의 고문 활동 내역은 내놓으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른바 '비밀 유지 조항'도 있을 만큼 접근이 어렵습니다.

그나마 법조인 출신들에게 수임 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 법도 지난 2013년 변호사 출신 황교안 법무장관 후보자 청문회 이후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황 후보자가 17개월 동안 로펌 고문으로 일하며 15억여 원을 받은 수임 내역을 확인할 법적 근거가 없어 논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도 비법조인 출신은 제외됐습니다. 뒤늦게 19대 국회에서 비법조 출신 후보자의 법무법인 활동 내역을 제출하게 하는 법 개정이 추진됐지만 특별한 논의 없이 임기 만료로 폐기됐습니다. 일각에선 "국회의원들 역시 퇴직 공직자에 포함되기 때문에 나중에 자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제도 마련에 소극적인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자기들 손해 볼 일을 스스로 하겠냐는 거죠. 이제 나흘 뒤(25일) 시작될 한덕수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그 비밀의 문이 조금이라도 열릴까요?

최경재 기자 (economy@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2/society/article/6361401_356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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