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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방역수칙, 지금과 비슷해요"

서울앤 입력 2022. 04. 2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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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허준박물관 '전염병의 어제와 오늘' 전시

[서울&] [자치소식]

김쾌정 허준박물관장이 15일 허준박물관 개관 17주년 기념 ‘전염병의 어제와 오늘’ 전시회에서 짚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옛 전염병’ 조명 통해 코로나 극복 의지

백제 온조왕 때 처음 역병 기록된 이후

선조들, 두창·온역·콜레라 극복 노력

거리두기·상부상조, 다양한 방법 사용

‘환자를 상대해 앉거나 설 때 반드시 등지도록 한다’, ‘전염되지 않는 방법을 취하지 못한 채 온역 환자를 맞이했다면 독기를 빨리 밖으로 뱉어내야 한다’, ‘집 안에 시역(계절성 열병)이 유행하면 처음 병이 걸린 사람의 옷을 깨끗하게 세탁한 후 밥 시루에 넣어 찐다’.

조선시대 허준이 온역(열이 나는 전염병) 치료를 위해 편찬한 전문의서 <신찬벽온방>(1613년)에는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들이 나온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요즘으로 치면 ‘코로나19 방역수칙’인 셈이다. 또한 두통이나 진통이 있을 때는 강활(미나리과 식물), 감기 기운이 있으면 감초, 열을 낮추는 데는 세신(쥐방울덩굴과 식물인 족두리의 뿌리) 등을 사용했다고 기록돼 있다.

1920년대 콜레라가 크게 유행했다. <독립신문> 1926년 6월27일치에는 ‘백성의 위생과 질병 예방을 위한 10가지 규칙’을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좁은 곳에 서로 끼어 앉아 호흡을 서로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호흡기로 전염되는 코로나19를 예방하기 위한 ‘거리두기’와 비슷하다. 이 외 ‘10가지 규칙’에는 개천 깨끗하게 치우기, 길가에 대소변 못 보게 하기, 길가에서 밤에 잠자지 못하게 하기 등도 포함됐다.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고 생활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현대에도 다양한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는다. 과거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는 어땠을까. 두창(천연두), 온역, 당독역(홍역), 콜레라 등 전염병을 극복하기 위한 옛사람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강서구 허준박물관은 개관 17주년을 맞아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지난 3월22일부터 오는 10월2일까지 공동기획전 ‘전염병의 어제와 오늘’을 연다. 이 전시는 전염병과 관련된 의서와 기록, 전염병과 약초, 예방접종의 시작, 전염병 극복을 위한 노력 등으로 구성됐다.

김쾌정 허준박물관장은 15일 “‘전염병의 어제와 오늘’은 다양한 변종으로 진화하면서 인간 삶의 방식까지 바꾸는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전염병의 역사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선조들의 노력과 지혜를 살펴보고자 개최했다”며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방역의 중요성과 전염병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은 전시”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염병 기록은 <삼국사기>에 나온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온조왕 4년(기원전 15년)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어 사람들이 굶주리고 역병이 돌았다’고 기록돼 있다.

과거 두창, 당독역, 온역, 이질 등 다양한 전염병이 발생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조선시대 들어 허준이 <신찬벽온방> <벽역신방>(1613년) <동의보감>(1610년) 등을 저술했고 정약용이 홍역 치료의서 <마과회통>(1798년)을 지었다. 전문의서와 더불어 다양한 치료법과 치료약도 개발됐다. 김 관장은 “치료 전문의서 <벽역신방>은 오늘날 성홍열(홍역)에 해당하는 당독역을 막기 위해 쓰였는데, 본문에 기재된 증상과 진단, 치료법은 서양의학보다 훨씬 빠른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두창(천연두)은 오랜 기간 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고질적인 전염병이었다. 두창에 걸리면 얼굴에 딱지가 앉고 병을 앓은 흔적인 얼굴 상처 마마 자국을 남긴다. 전시회에서는 두창을 극복하려는 선조들의 노력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석영이 종두법(소에게 배양시킨 천연두 백신을 사람에게 접종하는 예방법)을 도입한 이후 두창이 점차 사라졌고 이때부터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예방접종이 시작됐다. 20세기 초에는 종두 시행을 알리는 ‘종두훈령’이 내려졌고, 종두고지서와 종두제증을 발행했다. 종두 시행 안내문에는 출생 90일부터 12살까지 미접종 아동에게 종두를 권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종두를 해 깨끗한 사람 얼굴과 종두를 하지 않아 두창을 심하게 앓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비교해 종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민간에서는 굿을 하고 짚으로 만든 짚말을 불태우면서 두창신(마마)을 막고자 했다. 두창신을 보내는 마마배송굿을 하면서 짚으로 만든 말 등에 음식을 담은 광주리를 실어놓고 두창신이 음식을 먹고 사라지기를 축원했다. 짚말은 멀리 있는 나무에 묶어 두고 굿을 모두 마치면 무구와 함께 불태웠다.

콜레라를 막는 ‘고양이 부적’도 눈에 띈다. 프랑스 탐험가 샤를 바라가 쓴 <조선기행>(1892)에는 조선 사람들이 콜레라를 막기 위해 고양이 부적을 사용했다는 내용이 고양이 그림과 함께 기록돼 있다. 당시 사람들은 쥐가 사람을 물거나 쥐신이 사람의 몸속에 들어와 콜레라에 걸린다고 믿었다. 그래서 콜레라를 옮기는 쥐를 물리치기 위해 고양이 그림을 부적으로 사용했다.

질병과 관련한 대표적인 탈이 통영오광대놀이 손님탈이다. 손님탈은 탈 표면 전체에 점처럼 보이는 것이 있는데, 두창 자국을 표현한 것으로 ‘손님’은 두창을 신격화해 부르는 말이다. 전시회에서는 질병을 없애주는 부적을 찍어내는 데 사용한 부적판, 무당이 굿할 때 손에 들고 흔들어 신을 부르는 방울도 볼 수 있다.

전시에서는 마을에 역병이 돌 때 서로 도왔다는 기록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중기 문신 황중윤의 시문집인 <동명선생문집>을 보면 경북 울진군 정명리에서 마을계의 운영규정 ‘정명리사입의'를 제정했다. 여기에는 이웃이 어려울 때 서로 상부상조하는 내용이 담겼는데, 역병이 발생했을 때 주민들이 서로 돕도록 했다. 질병이 있으면 약물을 살 수 있도록 각 쌀 1되씩 거두고, 여역(전염성 질병)이 있으면 각기 장정 1명을 내어 농사일을 도와준다고 기록돼 있다.

김 관장은 “코로나19 시대 허준박물관에서 전염병 관련 전시를 하게 돼 더욱 뜻깊다”며 “앞으로도 의미 있고 다양한 전시를 마련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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