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중국 돈 빌려썼더니 공항·항구가 넘어갔다

김원장 입력 2022. 4. 24. 11:56 수정 2022. 4. 2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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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초 스리랑카는 '디폴트'를 선언했다. 콜롬보 시내에서 뉴스 연결을 준비하는 우리팀에게 한 시민이 다가왔다. " 니하오, 고 홈!(go home!)". 우리가 중국사람처럼 보였나보다. 이 말을 이후에도 몇차례 더 들었야 했다. 스리랑카인들은 왜 중국인을 미워하게 됐을까.

1."니하오, 고 홈!"

'다른 저개발국가들이 다들 그러듯', 스리랑카도 중국 자본을 많이 빌려썼다. 고속도로와 항만 공항 등 기반시설에 50억 달러(6조원 정도)가 들어갔다. 하지만 생각만큼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수익은 대부분 이자로 들어갔고, 빚은 좀처럼 줄지않았다. 결국 2017년 애써 개발한 '함반토타항'의 운영권을 '중국항만공사'에 넘겼다.

(우리가 부실기업 처리할때 자주듣던 '출자전환' 방식이다. 돈을 빌려주면서 갖고 있는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이제 채권자가 주인이 된다). 중국항만공사가 앞으로 99년동안 함반토타항을 운영해 수익금을 가져간다. 그럼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이 항구를 개발한 것인가.

이 질문은 '중국은 도대체 왜 우리에게 돈을 빌려줬을까?' 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지난 1월 콜롬보를 방문한 중국 왕이외교부장과 마힌다 라자팍사 스리랑카 총리. 마힌다 총리는 일부 채무의 유예를 요청했지만 중국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4개월이 지나 결국 스시랑카 정부는 ‘디폴트’를 선언했다. 사진 AP


빚에 시달리던 스리랑카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렸다. 하지만 IMF는 중국에 진 빚을 갚기위해 돈을 빌리러 오는 가난한 나라에 냉정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은 "중국 채무를 갚기위해 빌릴 수 있는 IMF자금은 없다"며 잘라 말했다. 결국 2022년 4월 인도양의 아름다운 나라 스리랑카는 '디폴트'가 났다.

2. 덥석 중국돈 빌렸다가 사면초가에 빠진 나라들

(돈을 빌려간 채무자가 돈을 못갚자, 채권자를 탓하는 것은 사실 우리 일상에서도 흔한 일이다) 그런데 중국 정부의 돈을 빌려간 나라들 대부분이 빚을 못갚는다. 채무 상환이 늦어지고, 다들 채무 재조정을 원한다. 그러다 결국 사업을 접고 중국을 비난한다. 이 상황이 무슨 유행처럼 나라를 바꿔가며 되풀이된다.

-스리랑카 북쪽 파키스탄, 역시 항만과 도로 철도개발을 위해 중국돈 40억 달러(5조원 정도)를 빌렸다. 하지만 경제는 기대만큼 살아나지 않았다. 결국 2019년 국제통화기금(IMF)의 대출을 받았지만, 최근 다시 디폴트 위기에 빠졌다. '임란 칸' 총리는 의회에서 해임됐다. 그렇게 건설한 과다르항의 역시 중국 항만공사가 운영중이다.

-라오스는 지난해 말 '수도 비엔티안에서 중국 쿤밍'까지 1천35㎞를 연결하는 철도를 완공했다. 중국돈 50억 달러(6조원 정도)가 투입됐다(라오스는 1년 GDP가 190억 달러인 나라다). 몬테네그로 역시 연간 GDP의 80% 달하는 빚을 내서 고속도로를 짓고 있다. 사실상 디폴트 상태다. 갚지도 못할 돈을 중국 정부는 왜 빌려줬을까

-중국은 90억 달러(10조원 정도)를 들여 미얀마 짜욱퓨항을 개발중이다. 쿠데타 이후 중국이 미얀마 군부의 목줄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짜욱퓨항은 이미 중국 영토나 다름 없다. 중국 정부는 지금도 벵골만에서 나는 천연가스와 석유를 짜욱퓨항에서 쿤밍까지 파이프라인으로 직접 가져간다.

-2020년 5월 탄자니아는 중국 정부가 건설중인 항구의 운영권을 가져가겠다고 하자, 아예 중국에서 빌린 100억 달러(12조원 정도)를 갚지 않겠다고 선언했다.('존 마구풀리' 탄자니아 대통령은 "술주정뱅이나 받아들일 조건을 중국정부가 내밀었다"며 중국과의 관계를 파탄냈다).

-2018년 8월 재집권한 마하티르 모하마드말레이시아 총리는 중국을 찾아 더이상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3억 달러(3조원 정도) 규모의 철도 건설 프로젝트는 취소됐다. 당시 91세의 이 노정치인은 리커창 총리에게 "새로운 제국주의가 발현되는 것을 원치않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케냐는 발전소 계획을, 시에라리온은 공항 건설을 중단했다. 중국 돈을 빌린 채무자들은 왜 화가 난 것일까?

지난해 12월 개통한 중국-라오스간 철도 개통식에서 승무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국 윈난성 쿤밍에서 비엔티안까지 1,035㎞를 잇는 이 철도를 위해 라오스 정부는 중국정부로 부터 50억 달러가 넘는 대출을 받았다. 이는 라오스 연간 GDP의 50%가 넘는다. 사진 연합


3.빚의 덫(Debt Trap)

이 채권자와 채무자의 흔한(?) 갈등에는 몇가지 숨은 진실이 있다. 일단

1)사실상 정부와 정부간의 계약이 아니다. 공적개발원조(ODA)처럼 투명하지도 않다. 중국개발은행이나 중국수출입은행을 통해 민간 계약처럼 꾸며 거액이 오간다. 대부분 독재자인 저개발국가의 지도자들도 '비밀유지조항'으로 불리한 계약 조건을 감추고 싶어한다. 그렇게 의회 비준도 없이 수조 원을 덥석 빌려온다.

(그러다 정권이 바뀌면 곳간이 텅 비어있는 사실을 확인한다. 탄자니아 정부는 100억 달러를 원조받았는데 정권이 바뀐뒤 확인해 보니 15억 달러만 남아있었다.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KBS취재진을 찾아온 한 청년은 "160억 달러를 빌려왔는데 20억 달러밖에 남지 않았다며 140억 달러는 어디에 썼냐"고 호소했다. 이 인터뷰는 당일 KBS 9시 뉴스에 보도됐다 )

2)중국의 원조는 대부분 무상 지원이 아니라 대출이다. 높게는 3~4% 정도의 비싼 이자를 받는다(자료
Aid Data Project). 세계은행(WB)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의 1% 남짓 이자율보다 훨씬 높다.

여기에 저개발국가들이 기술력이 없다보니 공사도 대부분 중국 기업과 인력이 와서 진행한다. 중국이 돈을 빌려주고 중국 기업이 다시 공사비를 받아 가는 구조다.

3)계약서에는 (숨겨진) 불공정한 조항이 수두룩하다. 사채업자처럼 빚을 갚지 못하면 담보로 잡은 알짜배기 자산을 가져간다. 우간다의 '엔테베공항'이나 스리랑카의 '함반토타항' 모두 이런식으로 운영권이 중국에 넘어갔다. 그렇게 중국의 경제 고속도로는 계속 확장된다.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미얀마의 쨔욱퓨항과 파키스탄의 과다르항, 스리랑카의 함반토타항을 찾아보면 중국의 경제 고속도로가 얼마나 확장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등 서방세계는 이들 항구에 중국의 군함이 정박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픽 이윤민


4. 개발원조인가 고리대금업인가?

해마다 7~8%가 넘는 성장을 거듭해온 중국은 이미 투자 과잉국가다. 본토에 자본이 넘치자 해외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천문학적인 중국자본이 뿌려졌다. 중국이 가난한 나라를 지원한다며 지난 18년동안 160여개 나라에 빌려준 대출액은 무려 8,430달러(1,040조원 정도)에 달한다(자료 Aid Data 재단)

그 지원금 대부분은 '대출'이다. 돈을 빌린 가난한 나라들이 코로나와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하나둘씩 쓰러져간다. 굶주린 국민들이 중국을 탓한다. 뒤늦게 빚의 덫(Debt Trap)을 깨닫은 나라들이 계약을 깨고 등을 돌린다. 저개발국가를 향한 중국의 지원은 개발원조일까 고리대금일까?

돈을 못갚는 국가들의 반발이 커지자 중국은 거대 인프라 투자를 줄이고 있다. 대신 민간 프로젝트나 될성부른 기업에 대한 직접 투자가 늘어난다. 그래도 선택의 여지는 없다. 가난하고 자원도 없는 독재국가들에게 뭉칫돈을 빌려줄 나라는 여전히 중국뿐이다.

가난한 나라는 차고 넘치고, 여전히 중국의 지갑은 열려있다. '남의 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있다". 러시아 속담이다. 이들은 달콤한 차이나 머니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스리랑카 함반토타항(좌), 중국으로 부터 빌린 돈을 갚지 못하자 중국항만공사에 99년간 운영권을 넘겼다. 우간다 엔테베공항(우) 역시 돈을 빌릴 당시 계약서에 중국으로 부터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공항의 지분을 넘긴다는 조항이 있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사진 홈페이지

김원장 기자 (kim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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