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기가 마음에 들어"..임장하듯 관저 결정?

이제훈 2022. 4. 2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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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의 동서남북]정치BAR_이제훈의 동서남북
새 대통령 관저 변경 논란
개인 부동산 매입 전 둘러보듯 현장답사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아내 김건희씨가 지난해 12월 15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나와 자신의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가 밝힌 새 대통령 관저 논의·결정·발표 과정은 ‘밀실 논의’와 ‘오락가락 일방주의’로 얼룩졌다. 당선자 쪽이 새 대통령 관저를 애초 지목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외교장관 공관으로 갑작스레 바꾼 데에는 당선자 부인인 김건희씨의 외교장관 공관 방문이 ‘결정적 영향’을 끼친 듯한 정황이 여럿 발견된다. 새 관저 변경과 개보수 지연으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서초동 사저↔용산 집무실 출퇴근 기간도 그만큼 길어질 수밖에 없어 출퇴근 시민들의 불편 해소에도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26일 <한겨레>의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는 주말인 지난 16일(또는 17일)에 외교장관 공관을 둘러봤다. 19일엔 윤 당선자 쪽에서 “(윤석열) 당선자께서 지금 (외교장관 공관에) 가봐도 되냐”라고 정의용 외교장관 쪽에 문의를 했다.

‘외교장관 공관이 새 대통령 관저로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는 첫 보도가 나온 건 그날 늦은 저녁부터다. ‘당선인 쪽’ ‘인수위 관계자’의 말을 따 “육참총장 공관은 물이 샐 정도로 낡아 재건축을 해야 하는 수준”이라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이유가 따라 붙었다. 그러곤 외교장관 공관이 새 대통령 관저로 “가장 합리적인 대안”(20일 인수위 관계자 발언)이어서 “사실상 결정한 상황”(24일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 회견)이라는 말을 거쳐, 최종 확정했다는 발표(25일 청와대 이전 티에프 기자회견)가 며칠새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서울 한남동의 외교부 장관 공관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관저로 확정됐다. 관저 리모델링 기간동안 윤 당선자는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용산의 집무실로 출퇴근하게 된다. 사진은 26일 오후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새 대통령 예비 관저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김건희 ‘주말 답사’ 결정적 영향 줬나

주목할 대목은 김씨의 외교장관 공관 방문 이전까지만 해도 새 대통령 관저로 외교장관 공관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1970년 1월 완공 이후 반세기 남짓 대한민국 외교부의 핵심 외교 자산이던 장관 공관을 비워줘야 할 처지인 외교부조차 24일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의 “사실상 결정된 상황”이라는 발표를 보고서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 배 대변인의 발표 이전에 인수위 쪽은 외교부에 공문은 커녕 구두 통보도 하지 않았다.

주한 필리핀 대사가 19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외교장관 공관에서 열린 비공개 애프터눈 티 행사에 참석한 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함께 사진. 주한 필리핀 대사 인스타그램 갈무리

<한겨레> 취재에 따르면 김씨는 주말을 이용해 정의용 장관 부부의 “생활공간”을 포함해 외교장관 공관을 구석구석 둘러보고는 “여기가 맘에 들어”라고 말했다. 김씨는 공관 정원을 둘러보다 “저 나무는 (공관 건너편 남산 쪽) 경치를 가리니 베어야겠다”고 지적했다.

김씨가 외교장관 공관을 둘러본 뒤인 19일 대통령 당선자 쪽이 “당선자께서 지금 (외교장관 공관에) 가봐도 되나요”라고 정의용 장관 쪽에 문의했다. 그런데 당시 정 장관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대사들을 포함해 다수의 주한 외교사절을 초청해 편하게 공동 관심사를 논의하는 ‘외교’를 하고 있었다. 이 행사는 비공개로 진행돼 언론을 포함해 외부에 공표되지 않았다. 정 장관 쪽은 “지금은 외교행사 중이라 곤란합니다”라고 답했고, 당선자 쪽은 “그럼 다음에 가지요”라고 말했다. ‘김씨가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을 다녀간 뒤 며칠 지나서 윤석열 당선자도 공관을 찾아왔다’는 지난 23일 <한겨레> 보도와는 다른 내용이다. 하지만 이런 저간의 사정에 비춰 보면 “사실이 아니다”라는 청와대 이전 티에프의 ‘서면 입장문’은 사태의 전모를 담은 ‘진실’이라고 하기 어렵다.

밀실논의·오락가락 일방주의 ‘얼룩’

애초 청와대 이전 티에프는 윤석열 당선자가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고 직접 발표한 지난 3월20일 새 대통령 관저로 육참총장 관사를 지목했다. 당시 티에프가 당선자한테 외교장관 공관을 새 관저 후보지로 보고했는데 “거긴 외교장관이 쓰는 곳 아닙니까. 빈 집(육참총장 관저)으로 가겠습니다”라는 취지로 사양했다는 ‘미담’까지 언론에 소개됐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 여 만에 외교장관 공관을 개보수해 대통령 관저로 쓰겠다는 인수위 쪽의 공식 발표가 나온 것이다. 장관 공관을 새로 마련해야 할 외교부 쪽에 사전 통보는 없었다. 이와 관련해 인수위 관계자는 24일 익명 브리핑에서 ‘외교부 쪽에선 당혹스럽다는데 사전 협의가 없었나’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외교부와 합의를 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외교부 반응에 저희가 응답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대통령 관저는 윤석열 당선자 부부의 개인 주택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를 옮기는 상징성과 공적 가치가 높은 중대사인데다, 국가 운영의 지속성과 투명성을 담보해야 할 민주헌정체제의 근본 정신에 비춰 매우 부적절한 행태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한홍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 팀장(왼쪽)과 김용현 부팀장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청와대 개방 행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육참 공관 개보수비로 외교 공관 개보수하면…국가재정법 위반 소지?

앞서 인수위의 요청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지난 6일 김부겸 총리 주재로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집무실 이전 예비비 360억원을 의결했다. 여기엔 인수위 ‘청와대 이전 티에프’가 대통령 관저로 쓰겠다고 밝힌 육참총장 공관 개보수비 25억원도 포함·명시돼 있다. 사용처를 명시한 예비비는 다른 용도로 쓰면 위법한 행위가 된다. 국가재정법은 기획재정부 장관이 사전에 “예비비 사용 계획 명세서를 작성한 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의 승인”(51조 3항)을 얻어야 하며, 예비비 집행 뒤 ‘사용 총괄명세서’를 작성해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승인(52조2항)을 얻고 감사원에 제출(52조3항)해야 하며, 국회에 제출해 승인을 얻어야 한다(53조4항)는 사전사후 ‘감시 장치’를 촘촘하게 명시해놨다.

요컨대 국가재정법에 따라, 육참총장 공관 개보수비로 책정된 25억원의 예비비를 외교장관 공관 개보수에는 돌려 쓸 수 없다. 따라서 외교장관 개보수비는 5월10일 ‘윤석열 정부’ 출범 뒤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새로 예비비를 의결해야 마련할 수 있다. 윤한홍 청와대 이전 티에프 팀장의 “외교장관 공관은 지금 장관이 쓰고 있어서 (새 정부 출범일인) 5월10일 이후에나 손을 댈 수 있다”는 25일 회견 발언은, 현재 사용자인 정의용 외교부 장관을 배려했다기보다 국가재정법을 의식한 때문일 수 있다. 새 대통령 관저 변경 논란과 관련해 국가재정법 위반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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