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희생으로 초기 방역 오판 극복했지만.. 오만으로 막판 몰락

김경은 기자 2022. 4. 2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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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은의 뉴스 저격] 'K방역' 2년 성적표

문재인 정부 후반기 2년여를 덮었던 ‘K방역’. 지난 18일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제하면서 K방역은 이제 정리 단계로 들어가는 분위기다. 진정한 마무리인 ‘종식 선언’은 불투명하고 언제든 재유행이란 복병이 도사리고 있지만 적어도 중간성적표를 내야할 시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5일 방송 대담에서 “K방역은 해외에서 정확히 평가하고 있다”며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이제 충분히 알기 때문에 특별히 당황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다음 정부를 이루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코로나특위는 일단 K방역에 대해 ①정치 방역(전문가 의견 간과) ②자만 방역(백신 도입 지연) ③방심 방역(병상·인력 부족 대비 소홀)이란 딱지를 붙였다. 앞으로는 이와 차별화하는 ‘과학적 방역’을 예고했다.

전문가들도 낙제점까진 아니지만 아쉬운 대목이 많다고 지적한다. 그들 평가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초기 정부 판단 미스(중국발 입국자 차단 실기)가 악재(惡材)로 작용해 확산세가 거세졌어요. 하지만 이후 고강도 거리 두기에 국민들이 순순히 협조하고 희생하면서 효과적으로 확진자·사망자를 통제했죠. 그런데 막판 방심으로 성급히 방역 조치를 완화하더니 오미크론 확산세를 막지 못해 결국 그동안 겨우 쌓았던 방역 성과가 전혀 의미 없는 수준까지 몰락했습니다.”

지난 26일 기준 국내 코로나 확진자 수는 누적 1700만명을 넘어서면서 세계 8위에 위치했다. 일본 772만명의 2배가 넘고, 대만 6만8000명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지난해 말까지 63만명에 머물렀는데 4달여 만에 27배가량, 1600여 만명 증가했다. 3월 17일엔 하루 62만명 확진자가 나왔는데 이는 2021년 전체 57만명보다 많았다. 사망자도 걷잡을 수 없이 늘었다. 지난해 말까지 2년 5600명대이던 코로나 사망자는 이제 2만2000명을 넘겼다. 2020년 전체 코로나 사망자 900명은 지난 21~27일 1주간 946명보다 적다.

◇초기 작은 성공에 자만하면서 오판

K방역은 2021년 말까진 비교적 선전했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해외에서 하루 수만~수십만명 확진자가 쏟아질 때 1000~2000명대로 틀어막고 있었다. 2020년 3월 대구 신천지, 같은 해 8월 광복절 집회 등 4차례 큰 파고가 있었지만 유행 확산세는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다. 작년 12월 델타 변이 대유행으로 7000명 선을 넘으며 위기가 찾아왔지만 1월 다시 3000명대로 잠잠해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지난 2월 3일 ‘오미크론 대응 체계’로 방역을 전환한 게 변곡점이 됐다. 이전까지 백신이나 팍스로비드 같은 치료제 없이도 선방하던 방역 체계가 오미크론 유행과 함께 급격하게 무너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코로나 방역 관계자 격려 오찬 간담회를 열고, 코로나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인 이들을 격려하고 있다. /뉴스1

격리 병상이 모자라 119 구급대원들은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을 찾아 거리를 헤맸고, 환자들은 구급차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코로나에 걸린 아기가 집에서 60㎞ 떨어진 병원에 배정돼 구급차 이송 도중 숨지고, 코로나 확진 임신부가 출산 가능한 병원을 찾다 구급차에서 출산하는 일도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델타 위기 이후 최소 3개월 동안 오미크론 유행에 대비해 고위험군·중환자 보호 대책을 철저히 세웠어야 했는데 미적거리다 파장이 커졌다”고 말했다.

◇‘과학 방역’ 아닌 ‘정치 방역’에 치중

한 의대 교수는 2020년 4·15 총선을 주목한다. 이를 기점으로 코로나가 안정세에 접어들고 여당이 압승을 거두자 K방역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는 해석이다. “방역 성공이 정권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걸 깨달은 정부가 방역을 빌미로 뭐든 제안해도 국민은 받아들일 거라는 자만심이 결국 방역 정책을 좌우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치방역’이 더 심화된 거죠.”

불안한 균형은 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무너졌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정부가 500만명에 달하는 자영업자 표를 의식해 지난해 11월 1일 방역 빗장을 푸는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을 감행하자 때마침 찾아온 델타 변이가 기세를 떨쳤다. 전염력과 치명률이 더 강한 바이러스여서 타격이 컸다. 2021년 9월 국내 코로나 치명률은 0.41%였으나 위드 코로나 이후 11월 2일 1%, 12월 12일 1.62% 등 악화일로를 걸었다. 당시 일본(1.33%), 미국(1.24%)보다 높았다.

올 들어 오미크론이 유행해 확진자가 폭증하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잇따라 해제했다. 비판이 쏟아져도 식당·카페 영업시간 등 조치를 2주마다 완화했다. 그때마다 확진자·사망자도 큰 폭으로 늘었다. 유행이 정점을 향해 올라가는 단계에서 방역을 푼 나라는 한국밖에 없었다. 전문가들은 “천재지변이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초과사망은 기본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며 “(다른 나라도 다르지 않았지만) 예방 가능했던 사망을 막지 못했으니 정부가 (방역에)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백신 접종률을 과신한 것도 문제다. 시간이 지나면서 백신 면역력이 급감하고 ‘돌파 감염’이 급증하는데 이를 대비한 병상 확보는 충분치 않았다. 한 전문가는 “병상 1000개가 필요할 것 같으면 1500~2000개까지 마련해 상황이 예측보다 나빠지더라도 허둥대지 않도록 대비해야 했다”고 말했다. 재택치료 도중 호흡 곤란으로 구급차에 실려온 환자들이 병상이 부족해 구급차에서 심정지에 이르는 경우가 속출하기도 했다.

◇오락가락 컨트롤 타워가 사태 키워

전대미문 코로나 감염병에 처음부터 완벽히 대응하긴 어렵다. 하지만 주먹구구 대응과 오락가락 발언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확진자가 의료기관을 두 차례 방문했는데도 치료를 받지 못했고, 코로나 관련 문의 창구라는 1339 질병관리본부 콜센터는 20여 명이 하루 1만통을 처리하다보니 대부분 먹통이었다. 방역 컨트롤 타워는 질병관리청이며 그 수장은 정은경 청장이었지만 정 청장은 주도권을 계속 내주며 무기력하게 관망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위드 코로나 이후 병상 부족 사태가 불거졌던 11월 11일 정 청장은 “상황 악화 시 방역 조치를 강화할 수 있다”고 했지만 같은 날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아직 이르다”며 선을 그었다. 당시 응급실·중환자실 마비로 5주간 2100명이 숨지고 2100명이 초과사망하는 위기가 벌어지고 있는데 방역 당국은 호주를 방문 중이던 문 대통령 지침만 기다렸다고 한다. “이런 게 청와대가 정무적으로 감염병을 지휘하고 있었다는 증거”라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지난 2년여 K방역을 ‘한국 사회의 거울’이라고 요약했다. “우리 사회가 이때까지 성장해온 방식, 국가가 국민을 다뤄온 방식의 장점과 한계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이제 K방역 성과를 냉정히 복기하고 다음 유행을 막아낼 방도를 고민해야 한다는 권고다. 이들은 “올가을 위기는 또 온다”면서 “특히 치료제 확보에 전력투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낮아지는 치명률? 그건 착시일 뿐” 김동현 예방의학과 전문의

“치명률이 낮아지고 있다? 그건 ‘착시 현상’일 뿐입니다.” 예방의학과 전문의인 김동현 한림대 보건과학대학원장이 말을 꺼냈다. 그는 지난 2년여간 우리나라의 코로나 대응을 지켜보면서 정부가 치명률을 강조할 때마다 답답했다고 한다. “치명률로 코로나 피해 정도를 평가하는 건 잘못”이라는 취지다.

치명률은 특정 질환이 발생한 환자 중에서 몇 명이 사망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 방역 당국은 그동안 코로나 유행 추이를 설명할 때마다 ‘한국 코로나 치명률은 미국·영국보다 훨씬 낮다’며 우리 의료 대응 체계가 안정적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국제 통계 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를 보면 지난 26일 기준 우리나라 치명률은 0.13%로 브라질(2.18%), 미국(1.22%), 독일(0.55%)보다 낮다. 세계 평균(1.22%)보다도 아래다. 하지만 이는 “코로나에 걸리는 확진자가 10만~20만명으로 늘어 분모가 확 커지게 되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 등은 치명률은 특정 질병으로 인해 사망할 위험을 간접적으로 내비칠 뿐 사망 수준을 알아보는 척도로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김 원장은 “그럼에도 우리가 치명률로 계속 코로나 변이의 위험성을 파악한다면 잘못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방역 전문가들이 꼽는 객관적 지표는 ‘인구 대비 사망률’이다.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 우리나라 인구 100만명당 사망자는 438명으로 조사 대상 211국 중 134위였다. 비교적 선방은 했지만 오미크론 변이가 대유행한 올해 2월부터 최근까지 급속히 악화하면서 미국·독일·프랑스 등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기록한 나라가 됐다. 김 원장은 “치명률이 아니라 인구당 사망자 수를 톻해 심각성을 제대로 알리고 국민들이 경각심을 갖게 했다면 최근 사망자 급증 사태를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움말 주신 분: 김동현 한림대 보건과학대학원장,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 마상혁 경남도의사회 감염병대책위원장,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 이형민 한림대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정재훈 가천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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