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오마이뉴스

사람 죽이는 지하철역, 여기서 여럿 죽은 사실을 아는가 [소셜 코리아]

김도현 입력 2022. 05. 03. 17:03

기사 도구 모음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소셜 코리아] 21년 외쳤지만 끝나지 않은 싸움, 이동권 투쟁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김도현]

2001년 시흥시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리프트가 추락해 장애인 부부 중 한 명이 사망하고 다른 한 명은 중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 이후 이동권 투쟁이 시작됐다.

2003년 부천시 송내역에서는 한 시각장애인이 출구를 찾아 헤매다 선로로 추락했고 승강장으로 진입하던 열차에 치여 그대로 사망했다.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를 통해 방향을 찾을 수 있는 유도블록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스크린도어가 없어 선로로 추락할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상황이었다. 그 이후 스크린도어 설치를 위한 투쟁이 시작됐다.

그러나 장애인은 계속해서 같은 방식으로 죽어 갔다. 2002년 발산역에서, 2004년 부천역과 이수역에서, 2006년 인천신수역에서, 2008년 화서역에서, 2009년 제물포역에서, 2017년 신길역에서 그리고 지난 4월 7일 양천향교역에서.

확인된 사망 사고가 이 정도일 뿐, 중상을 입은 사고까지 헤아리면 그 참사의 목록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장애인은 단지 대중교통인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동권, 이제는 대중적으로 많이 익숙해진 용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2001년 처음 이동권 운동이 시작됐을 때는 "그게 뭔데?"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05년 1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이동권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이 발간하는 <표준국어대사전> '신어자료집'에 그 단어가 처음 등재된 게 2003년이니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4월 21일 오전 서울 중구 2호선 시청역사 내에서 지하철 탑승시위를 하고 있다. ⓒ
ⓒ 이희훈
 
공기와 같은 권리 '이동권'

사실 비장애인 처지에서는 여전히 "이동하는 것도 권리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공기 없이 살아갈 수 없으면서도 공기가 희박해지는 순간에만 그 소중함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대다수 비장애인들은 공기를 마시듯 이동권을 누려왔기에, 마치 우리가 '공기권'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처럼 이동권을 이야기할 필요를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을 고려한 안전시설이나 엘리베이터가 없어 지하철을 타다가 떨어져 죽고 버스는 이용조차 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는, 거리의 턱과 사방팔방 설치되어 있는 계단이 아마득한 산처럼 느껴지는 이들에게는 절실한 권리일 수밖에 없다.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법이 이듬해 시행되면서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저상버스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전에 없던 것이 새롭게 생겨나니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 많이 좋아졌다"라고. 과연 그런가?

법 제정 이후 처음 수립된 '제1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2007~2011)' 상으로는 2011년까지 전체 시내버스의 31.5%를 저상버스로 교체해야 했지만 실제 보급률은 12%에 불과했다.

'제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2017~2021)'이 완료되어 가는 2021년 9월 기준으로는 30.4%에 머물렀다. 즉 제3차 국가 계획이 마무리되도록 제1차 계획의 목표조차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고속·시외버스의 경우에는 더욱 참담하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설비가 갖춰져 있는 건 전체 고속·시외버스 1만여 대 중 서울과 당진 간을 운행하는 단 2대뿐이다. 2019년 10월 시범 운행을 시작할 당시에는 그나마 서울↔부산, 서울↔강릉, 서울↔전주, 서울↔당진 4개 노선에 10대였으나, 현재는 코로나19와 이용 승객 부재 등의 이유로 8대가 운행을 중단했다.

특별교통수단(장애인 콜택시)은 법정 의무대수가 중증장애인 200명 당 1대에서 2019년에 150명당 1대로 상향 조정됐고 현재 이 법정대수를 넘어선 지역도 있다. 그러나 특별교통수단의 도입 책임이 시·군에 맡겨져 있다 보니 지역별 편차가 매우 크다. 예컨대 인천광역시와 충청북도는 도입률이 50%대에 머물고 있다.

예산 없는 법규는 무용지물

왜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 걸까? 그건 국가가 법규만 만들어 놓았을 뿐, 구체적인 예산을 통해 이를 뒷받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오랜 투쟁으로 지난 1월 18일 교통약자법이 개정되어 ▲노선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특별교통수단의 원활한 환승·연계를 지원하는 광역이동지원센터 설치 의무화 ▲특별교통수단 이동지원센터 및 광역이동지원센터의 운영비를 국가 또는 시·도가 지원할 수 있다는 조항 등이 신설됐다.

그러나 (광역)이동지원센터에 대한 국비 지원은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강제 조항에서 임의 조항으로 수정되고 말았다. 저상버스 도입 과정에서 구체적인 예산 강제가 없을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뼈아프게 경험한 전장연은 국비 대 지방비의 비율을 70:30(서울시의 경우 50:50)으로 할 것을 요구했지만, 기재부는 계속해서 방관자적 태도로 일관해왔다.

이에 전장연은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을 요구하며 지속적인 지하철 탑승 직접행동을 전개했지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역시 아무런 책임 있는 답변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제 공은 새 정부의 기재부로 넘어가게 됐다.

교통약자법 제3조는 "교통약자는…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이동권 조항은 국가 예산을 통해 보장될 때에만 공허한 선언이 아니라 실질적인 권리로 우리 사회에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21년 동안 외쳐왔지만 장애인의 이동권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고, 우리의 투쟁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도현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 김도현
 
* 필자 소개: 이 글을 쓴 김도현은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이자 장애인언론 <비마이너> 발행인으로 일하고 있으며 장애학의 시좌(視座)에서 한국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모색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장애학의 도전〉이 있고, 〈철학, 장애를 논하다〉, 〈장애와 유전자 정치〉 등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덧붙이는 글 |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url.kr/jikh9o

Copyrights ⓒ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