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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이상훈]한일 관계, 눈치만 봐선 개선 못한다

이상훈 도쿄 특파원 입력 2022. 05. 04. 03:04 수정 2022. 05. 0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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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일본 총리관저 홈페이지에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지난달 26일 한일정책협의대표단을 면담했다는 내용이 쏙 빠져 있다.

일본 주요 신문들이 분 단위로 취재해 쓰는 총리 동정에 '오전 10시 40분 한국 대표단 면담'이 실려 있고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총리가 직접 답변했는데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언론 보도로 일본 국민이 이미 알고 있는 기시다 총리의 한국 대표단 면담 사실을 일본 정부는 왜 드러내려 하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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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계산하며 韓 거듭 공격하는 日
양국 정상 용기 내서 결단해야 풀린다
이상훈 도쿄 특파원
3일 일본 총리관저 홈페이지에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지난달 26일 한일정책협의대표단을 면담했다는 내용이 쏙 빠져 있다. 일본 주요 신문들이 분 단위로 취재해 쓰는 총리 동정에 ‘오전 10시 40분 한국 대표단 면담’이 실려 있고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총리가 직접 답변했는데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언론 보도로 일본 국민이 이미 알고 있는 기시다 총리의 한국 대표단 면담 사실을 일본 정부는 왜 드러내려 하지 않는 것일까. 대표단 면담을 전후해 일본에서 벌어진 일들을 종합해 보면 감을 잡을 수 있다.

일본에서는 총리의 대표단 면담 전이나 후에 일본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게 아니라는 뒷말이 나왔다. 애초 기시다 총리가 면담에 소극적이었지만 한미일 삼각 연계를 강조하는 미국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한국 대표단을 만났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에는 면담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다” “망설이던 기시다 총리가 면담 전날 밤에 결심했다” 등의 언론 보도는 이런 분위기를 드러낸다. 전·현직 총리부터 일본을 이끈다는 주요 관계자들이 시간 단위로 한국 대표단과 면담을 해놓고 뒤에서는 ‘만나기 싫었는데 억지로 만났다’며 어깃장을 놓는 모양새다.

그 배경에는 일본 주류라는 보수 강경파가 있다. ‘한국이 징용공 문제의 답을 내놔야 한다’며 일제강점기 근로자 강제동원 책임을 한국에 떠넘기고,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다 해결됐다’며 큰소리를 쳐야 지지를 얻는 게 일본 분위기다. “한국 대표단과 섣불리 면담하면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자민당 강경파는 이제 “면담은 몰라도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한다.

문제는 국제정세가 그렇게 간단치는 않다는 점이다. 일본은 그동안 한국의 반일 감정을 두고 ‘국제정세를 외면한 어리석은 처사’라고 비판해 왔다. 지금은 거꾸로다. 관계 개선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국내에서 ‘콘크리트 보수 지지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한국을 공격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억지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면 한국 새 정부로서는 일본이 관계 개선과 안보 협력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기시다 총리는 전통적으로 평화와 동북아 선린우호를 추구해 온 자민당 고치카이(宏池會) 파벌의 적통을 잇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 초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노역 역사가 있는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추천을 보류하려다 막판에 방향을 튼 것을 두고 일본에서는 “당내 소수파인 기시다의 컬러를 당내 보수파가 뒤집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대로 읽으면 기시다 총리가 한일 관계 개선에 뜻을 두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억지로 만나는 것’이라는 여론몰이를 무릅쓰고 대표단과 마주 앉아 한일 관계 개선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한 것은 기시다 총리의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 ‘친일세력’이라 공격 받을 수 있는데도 일본에 대표단을 보내 관계 개선 의향을 표명한 것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용기로 평가할 수 있다. “한미일 연계가 지금처럼 중요한 때가 없었다”는 기시다 총리 말대로 작금의 한일 관계 개선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안보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1965년 수교 이래 한일 관계는 결국 양국 최고위층이 용기를 내고 타협해 가며 만들어낸 산물이다. 한국도 일본도 눈치만 봐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마지못해 끌려가는 외교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에도, 주요 7개국(G7) 일본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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