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올해 한국 따라잡나..3년 빨라진 '경제 추월' 시계

최현준 2022. 5. 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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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준의 DB deep][디비딥 차이나] TSMC·전자산업 앞세운 대만 경제의 역습
게티이미지뱅크

“다시 ‘아시아 4룡’의 선두가 될 것이다.”

지난해 10월10일 대만의 건국기념일인 쌍십절 연설에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한 발언이다. 차이 총통이 2000년대 들어 잘 쓰지 않는 단어인 ‘아시아 4룡’을 굳이 꺼내든 것은 대만 경제가 머지않아 한국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아시아 4룡은 1970년대 이후 경제 성장을 이룬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 네 나라를 가리킨다. 홍콩과 싱가포르가 인구 1천만명 미만의 도시 국가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대만이 한국을 곧 앞선다는 선언이었다. 대만 인구는 2300만명으로, 5100만명인 한국의 45% 수준이다.

IMF 전망, 2025년에서 2022년으로 3년 앞당겨

차이 총통의 발언은 예상보다 빠르게 실현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0월12일 펴낸 ‘월드 이코노믹 아웃룩’을 통해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25년부터 한국을 앞설 것으로 전망했다. 반년 뒤인 지난달 25일 나온 ‘월드 이코노믹 아웃룩’에선 시기를 무려 3년이나 앞당겨 올해부터 대만(3만6051달러)이 한국(3만4994달러)을 앞설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통화기금은 지난해 10월에는 한국과 대만의 2022년 성장률을 각각 3.3%, 3.3%로 같게 봤지만, 올 4월에는 각각 2.5%, 3.2%로 수정했다. 한국은 크게 감소, 대만은 소폭 줄어들 것으로 보면서, 두 나라의 국내총생산 전망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

두 나라의 경제 상황을 비교할 수 있는 대표 지표인 1인당 국내총생산에서 대만이 올해 한국을 앞서는 것으로 나오자 대만 정부는 환호했고, 한국에서는 우려가 쏟아졌다. 이 전망이 그대로 실현될 경우 대만은 2003년 이후 처음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에서 한국을 앞서게 된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지난해 10월10일 타이베이에서 열린 건국 기념일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타이베이/EPA 연합뉴스

성공적인 코로나 방역-전자 부품 중심 산업 구조 ‘윈윈’

대만 경제 성장의 핵심 요인은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과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전자산업의 선전으로 분석된다. 대만은 2015년부터 코로나 직전인 2019년까지 성장률 1~3%대를 기록했으나, 코로나19 기간인 2020년과 2021년 전체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전자 분야 수출이 급증하면서 경제가 크게 성장했다.

대만의 코로나 방역 실적은 통계로 잘 나타난다. 국제 통계 누리집인 아워월드인데이터 자료를 보면, 2020년 12월31일 대만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799명이었고, 1년 뒤인 지난해 말 누적 확진자 수는 1만7029명이었다. 오미크론 사태를 겪는 중인 지난 3일 누적 확진자 수는 17만3942명이었다. 같은 시기 한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2020년 말 6만1769명, 2021년 말 63만838명이었고, 지난 3일에는 1740만명이었다. 누적 사망자를 보면, 지난 3일 기준 대만은 868명, 한국은 2만3007명이었다.

대만 타이베이의 101타워. 대만 경제부 누리집 갈무리

성공적인 코로나 방역은 대만 특유의 전자 제품 중심 산업 구조와 맞물려 수출에 날개를 달았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 사태는 세계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가했지만,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컴퓨터 등 가정·사무용 전자 제품의 수요를 폭발시켰다. 대만은 전자 부품과 통신·디스플레이 제품 등 두 품목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2.2%(2021년)로 절반을 넘는다.

대만 재정부 통계처 자료를 보면, 특히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전자 부품 수출액이 2019년 1125억 달러에서 2021년 1719억 달러로 수직 상승했다. 2년 만에 무려 52.8%가 증가한 것이다. 대만 전체 수출에서 전자 부품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34.2%에서 2021년 38.5%로 늘었다. 1000원 어치를 수출하면 385원 어치가 반도체 등 전자 부품인 셈이다. 앞서 2017년부터 2019년 사이 대만의 전자 부품 수출액은 1071억 달러에서 1125억 달러로 5% 증가한 것과 견주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었다.

대만 경제의 상징 TSMC…세계 10대 기업으로

삼성전자와 함께 세계 반도체 산업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인 티에스엠시(TSMC)는 대만의 전자 부품 중심 경제의 성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스템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 분야에서 점유율 50%가 넘는 독보적 기업인 티에스엠시는 2019년 말부터 삼성전자의 시가 총액을 넘어선 뒤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2020년 3월부터는 지속해서 앞서고 있다. 지난 4일 기준 티에스엠시의 시가총액은 594조원으로 455조원인 삼성전자를 압도한다. 전자제품 수요 폭발로 시스템 반도체 수요가 폭증했고, 싼값에 안정적으로 위탁 생산하는데 두각을 보인 티에스엠시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최강자인 삼성전자 역시 2020년 1월초 주당 5만5500원에서 4일 현재 6만7900원으로 올라 코로나 수혜 주로 분류되지만, 티에스엠시는 2020년 1월 주당 339.5대만달러(1만4560원)에서 4일 현재 534대만달러(2만2900원)로 급상승했다.

티에스엠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기업 아람코와 함께 시가총액 세계 10위 안에 드는 두 개의 아시아 기업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만에는 티에스엠시 외에도 유엠시(UMC), 미디어텍, 리얼텍 등 최상위권 반도체 업체들이 적지 않고, 애플 아이폰을 위탁 생산하는 폭스콘도 대만 회사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티에스엠시(TSMC). 신주(대만)/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 크다지만 전혀 ‘변수’ 안돼

결국 대만은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020년 경제성장률 3.36%로 전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코로나 방역을 잘했다고 평가받는 한국의 성장률(-0.9%)은 물론, 제로 코로나 상태를 상당 기간 유지한 중국의 성장률(2.2%)보다도 높다. 대만이 경제성장률에서 중국을 앞지른 것은 1991년 이후 처음이다.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한 2021년에도 대만은 경제성장률 6.45%라는 고성장을 달성했다. 당시 한국의 성장률은 4.0%였고, 중국은 8.1%였다. 한국과 중국이 2020년 저성장의 기저 효과를 누렸다면, 대만은 기저 효과 없는 순수 성장이었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면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대만의 경제 성장에는 전혀 변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대만의 대중국 수출액은 2019년 1321억달러에서 2021년 1888억달러로 42.9% 증가했다. 대만의 수출 증가 대부분이 중국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대만의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9년 40.1%에서 2021년 42.3%로 오히려 늘었다. 대만 수출 대상 2위인 미국으로의 수출액은 2019년 462억달러에서 2021년 656억달러로 42.0% 성장했고, 미국 비중은 14.1%에서 14.7%로 소폭 상승했다. 한국보다 대만이 더 확실하게 ‘미국에 안보를 맡기고, 경제는 중국에 밀착하는’ 이른바 ‘안미경중’을 실천한 셈이다.

대만 시민들 “반도체 업계만 혜택” 불만도

대만 정부는 ‘한국을 앞선다’는 전망을 주요 정치적 성과로 내세우며 선전하고 있지만, 일부 시민들은 불편한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급증해 한국을 앞서게 되더라도 실제 대만 일반 시민들의 월급이나 생활 수준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만의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168 대만 달러로, 약 7200원이다. 올해 한국 최저시급 9160원의 78.6%다.

경제 성장이 주로 전자산업 분야에서 이뤄지면서 특정 분야 종사자만 혜택을 볼 뿐 전체에게 고루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만 언론 <중국시보>는 지난해 12월17일 시민들이 “무슨 소용이냐. 전부 반도체 업계가 버는 돈이다. 다른 업계는 죽겠다”, “한국 대졸자의 초봉 평균이 9만 대만달러(3860만원)라고 한다. 우리는 한국의 3분의 1도 안된다”고 불만을 터트렸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다소 과장된 정보가 있는데, 한국 대졸자의 평균 초임은 3031만원(한국 고용정보원)이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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