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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모의 외교포커스] 윤석열 정부 외교의 출발점은 '강제징용' 해결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입력 2022. 05. 0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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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다음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가 맞닥뜨려야 하는 외교적 환경은 녹록지 않다.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안보·무역·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전방위적 대결 구도를 형성하면서 국제질서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대전환의 시기다. 한국 외교는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윤석열 정부 앞에 놓인 수많은 외교 과제 중에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지만, 가장 먼저 손을 대야 하는 분야는 대일관계다. 현재의 국제질서와 한국 대외관계 구조 등을 감안할 때 한·일관계를 지금과 같은 상태로 두고서는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어떤 외교적 목표에도 순조롭게 다가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윤석열 정부는 한·미관계를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격상하는 것을 외교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있다. 한·미·일 협력을 아시아 전략의 최우선 요소로 인식하고 있는 미국과 동맹의 수준을 격상하려면 지금 같은 한·일관계로는 어렵다. 이뿐만 아니라 원칙 있는 남북관계, 한·미 동맹 강화에 따른 대중국 외교 리스크 최소화, 쿼드 참여 확대 등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외교 목표들은 모두 일본과 연관이 있다.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일본의 방해를 차단하기 위해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 외교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의외로 크다. 미·중 경쟁이 날로 확대되고 있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배경에도 일본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대일외교를 경시했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분명한 자세를 취하지 않았고 한·일관계를 뿌리째 흔들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진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대처도 소홀히 했다. 북·미 대화에서 북핵 문제를 진전시키고 남북 대화의 폭을 넓히면 일본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일본은 배후에서 미국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정책 추진을 지속적으로 방해했다. 결국 하노이에서 북·미 대화가 끊기고 북핵 문제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자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한·일관계에서도 일본의 공세에 밀리게 됐다. 일본을 적으로 돌린 상태에서는 운신에 크게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한국 외교의 구조적 취약점을 간과한 탓이다.

바닥으로 가라앉은 한·일관계를 단번에 개선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를 비롯해 한·일관계를 가로막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당장 모두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최악의 상태를 벗어나는 데 시동을 걸기 위한 ‘최소한의 신뢰 회복’이다.

산 넘어 산처럼 쌓여 있는 한·일 갈등 요소 중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여기에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효력 유예 조치 등이 한꺼번에 얽혀 있다. 대미외교와 한·미·일 협력, 경제안보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미·중 대결 구도 속에서 한국 외교가 움직일 수 있는 폭을 크게 제한받게 된다. 무엇보다 ‘압류된 일본 기업의 국내자산 매각·현금화’라는 시한폭탄이 터지는 것을 막는 것이 급선무다. 현금화를 막지 못하면 한·일관계는 손쓸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법원의 배상 판결을 존중하면서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배치되지 않는 방법으로 현금화를 막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방법이 없지는 않다. 그동안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됐으나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추진할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 뿐이다. 대표적인 것이 ‘대위변제를 통한 협상’이다.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우선 배상함으로써 피해자들이 법원 판결로 얻게 된 손해배상 권리를 사들이고 일본 기업들과 구상권을 놓고 협상하는 방식이다. 한국 법원의 판결을 이행하면서도 일본이 반발하지 않는 해법이 생길 수 있다. 국회에서 논의됐다가 중단된 이른바 ‘문희상 안’처럼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할 수 있는 국내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한·일 갈등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걸 풀지 못하면 관계 개선에 필요한 최소한의 신뢰를 쌓을 수 없다. 한·일관계를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한 첫걸음이자 윤석열 정부 대외정책의 순항을 위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조치다. 국내정치적 장애물을 돌파하는 ‘용기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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