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전 러시아 견제 때처럼… 부활하는 英日동맹

도쿄/성호철 특파원 2022. 5. 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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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기시다 정상회담
보리스 존슨(오른쪽에서 둘째) 영국 총리와 기시다 후미오(왼쪽 둘째) 일본 총리가 5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열린 환영식에 참석해 나란히 걷고 있다. 두 나라 정상은 이날 회담에서 상대국 영토에 입국하는 군인의 비자 면제 조치 등을 담은 ‘원활화 협정’에 합의했다./로이터 뉴스1

영국과 일본이 러시아·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120년 전 맺었던 동맹 관계를 부활시키고 있다. 20세기 시작과 함께 1902년 체결된 영·일 동맹은 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23년 폐기될 때까지 양국 위상 강화에 큰 역할을 했는데, 최근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제 정세에서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새로운 차원의 동맹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5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원활화 협정(RAA·Reciprocal Access Agreement)’에 합의했다. 두 나라 군인이 상대국에 입국할 때 비자를 면제받고 무기와 탄약을 쉽게 반입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RAA는 사실상 군사동맹에 준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양국 합동 군사훈련을 더욱 빈번하고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언제든 대규모 군대의 상대국 입국이 가능하다. 일본은 지난 1월 호주에 이어 영국과 두 번째로 이 협정을 맺었다. 영·일 간 군사적 접근은 최근 6~7년 새 급진전했다. 지난 2015년 이후 외무·국방 장관(2+2) 회담이 4차례 열렸고, 작년 9월엔 영국 최신예 항모 ‘퀸 엘리자베스’가 일본에 처음으로 기항했다.

이날 오전 영국 공군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가 동원된 공군 분열식을 관람한 양국 정상은 회담에서 현 일본 자위대의 주력인 F2 전투기에 이은, 차세대 전투기 개발에 공동 협력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타이푼 전투기는 영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이 공동 개발한 전투기로 현재 유럽을 대표하는 최신예 기종이다.

영국을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를 환영하는 한대의 보이저 항공기와 두대의 타이푼이 환영비행하는 장면./AFP 연합뉴스

회담 직후 존슨 총리는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만나 “양국은 똑같은 섬나라의 군주제이며 민주주의 국가로서 오랜 기간 공통의 입장과 이해를 공유했다”며 “유럽과 동아시아의 안전 보장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일은 대만이나 남중국해와도 직접적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군사행동을 할 가능성을 지적한 것이다. 기시다 총리도 “우크라이나는 내일의 동아시아일지도 모른다”며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화는 인도·태평양,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허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일본 신문들은 “존슨 총리가 영·일 안보 협력 확대에 의욕적”이라고 보도했다.

회담 때 두 정상은 후쿠시마산(産) 팝콘을 같이 먹었는데, 회담 직후 영국 측이 깜짝 선물을 발표했다. 영국이 후쿠시마산 23개 품목에 대한 방사성 물질 검사를 폐지하기로 한 것이다. 영국은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검사 의무화 정책을 고수했다. 한국 등이 여전히 후쿠시마산 농산물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대해 일본은 러시아 추가 제재를 발표해 화답했다. 러시아인 약 140명의 자산 추가 동결과 수출 금지 대상에 군사 단체 약 70개 추가, 양자컴퓨터 등 첨단 기술품의 대러 수출 금지 등이다.

120년 만의 영·일 동맹 부활 배경엔 당시와 유사한 세계 정세가 있다. 20세기 초 러시아 제국주의 급팽창에 놀란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南下)를 막으려 일본과 손을 잡았다. 일본은 세계 각국의 예측을 뒤엎고 1905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 세계 강대국 대열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러시아와 중국의 팽창을 막아야 한다는 데 양국의 이해가 일치했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대와 대영제국의 번영 재현을 원하는 영국의 ‘그레이트 브리튼 전략’과도 맞닿는다.

영·일간 군사 협력의 다음 단계로는 일본의 오커스(AUKUS) 참여가 거론된다. 오커스는 미국·영국·호주 3국의 안보 동맹으로 핵 잠수함 기술 공유를 목적으로 하는데 일본이 참여해 ‘조커스(JAUKUS)’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오커스의 일본 참여와 관련해) 우리는 긍정적이며, 배타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영·일 동맹 강화는 자칫 한국이 아·태 지역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군사동맹 라인에서 소외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중국 견제의 핵심 기구인 쿼드(Quad·미국·일본·인도·호주 4국)와 오커스에서 모두 빠져있다. 아·태 지역에서 한국을 빼고 미국·일본·호주·인도·영국 5국 간 군사 협력만으로도 자유민주 진영 수호가 가능하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고착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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