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로변까지 진출한 사행성 PC방.. 경찰은 불법 환전 단속 어렵다며 '뒷짐'

윤예원 기자 2022. 5. 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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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PC방 같지만 사행성 게임 놓고 현금 오가
불법 피하려 환전은 PC방 밖에서 '꼼수'
경찰 "환전해야 불법인데 잡아내기 어려워"

과거 주택가 으슥한 골목에 자리 잡았던 불법 사행성 PC방이 대로변까지 진출하고 있다. 도박에 빠지는 이들은 해마다 늘고 주거지까지 도박장이 침투했지만, 경찰은 불법성 입증과 단속이 어렵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도박장이 주거지와 가까울수록 도박에 빠지기 쉽다고 경고하면서 정부가 도박 중독을 예방할 의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 관악구의 한 사행성 PC방./오귀환 기자

지난달 29일 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 사행성 PC방을 찾았다. 지하철역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대로변에 식당, 카페, 생활용품점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고 외관은 평범한 PC방과 다를 게 없었다. 경찰 지구대가 불과 600m 거리에 있었지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2층에 자리한 사행성 PC방은 밖에서 내부를 전혀 볼 수 없는 구조였다. 창문에는 검은 시트지가 발려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사장이 문을 막아섰다. 의심의 눈초리로 위아래를 훑었지만 “여긴 최소 충전이 얼마부터냐”라고 묻자 “만원부터 가능하다”며 길을 터줬다. 아홉 자리 중 세 자리는 이미 중년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카드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사장은 어떤 게임을 할 건지 물었다. 홀덤과 포커, 바둑이, 맞고 네 가지 게임이 있었다. 유일하게 할 줄 아는 맞고를 선택했다. 게임은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했다. 주인에게 딴 돈은 현금으로 바꿔주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환전은 어디서 해주냐”고 묻자 “그건 따고 나면 알려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만원을 건네자 사장은 이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기다리자 게임 화면 오른쪽 위에 게임머니 ‘만알’이 충전됐다.

사행성 PC방은 현금으로 게임머니를 충전하고, 게임을 통해 게임머니를 얻어 다시 현금으로 환전해주는 구조다. PC방에서 환전을 해주면 불법이기에 다른 장소에서 환전이 이뤄진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게임물의 이용을 통하여 획득한 유·무형의 결과물을 환전하거나 이를 알선하는 행위는 모두 불법이다.

뒷자리 남성은 게임이 잘 풀리지 않는 듯했다. “에이 XX만원 따기가 X나게 힘드네 진짜”라며 사장을 불렀다. 남성은 “포커에 있는 21만8300원 옮기고 10만원 더 넣어줘”라며 현금을 건넸다. 이어 “여기 게임 관리 좀 잘해”라고 사장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다. 남성은 게임을 하는 내내 욕을 하거나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길 반복했다. 기자 역시 한 판 만에 9200알을 잃었다. 1알당 1원이니 돈을 거의 잃은 셈이다.

사행성 PC방에서 한 남성이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오귀환 기자

지난 2일 오후 같은 PC방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2만원을 넣고 자리에 앉았다.

지난주에도 봤던 중년 남성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컴퓨터 화면엔 게임이 아닌 ‘라이브스코어’ 창이 떠 있었다. 홈페이지 옆 배너엔 ‘토토1번 정보 공유방’ ‘바르셀로나에 메시가 빠지면 베팅하시겠습니까?’ 등의 문구가 떠 있었다. 불법 스포츠 도박이 의심스러웠다.

게임 화면 오른쪽 위를 보니 사장에게 건넨 현금 2만원이 2만알이 돼 돌아왔다. 점당 100알판으로 입장했다. 한 판 만에 허무하게 9000알이 날아갔다. 다음 판도 여지없었다. 결국, 환전소는 가보지 못했다.

사장에게 “돈을 따서 환전하는 사람이 있긴 하냐”고 물었다. 사장은 “기계하고 (게임)해서 돈을 어떻게 땁니까”라고 솔직히 말했다. 사장은 “어영부영해서는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사행성 PC방이 주택가 골목에서 대로변까지 진출하고 있지만, 경찰은 불법성 입증이 어려워 단속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환전이 이뤄지면 위법인데 환전하는 순간을 포착해야 해 범죄를 입증하기가 어렵다”며 “신고가 들어오면 일선서에서 즉각 조치하고 있다”고 답했다.

합법적인 PC방 업주들과 경찰에 따르면 환전은 사행성 PC방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PC방 업주들이 모인 포털 카페에 ‘PC방 영업은 점점 힘들어지는데 불법 PC방은 늘고 있다’는 글이 올라오자 ‘게임은 합법인데 뒤에서 몰래 환전 쳐준다’는 댓글이 달렸다. 일선 지구대에서 만난 경찰도 “PC방이 아닌 외진 곳에서 환전을 한다”며 “자기들끼리 알음알음 하니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도박 중독에 빠져 고통받는 이들은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따르면 도박 중독 치유나 재활을 위해 센터에 상담을 신청한 건수는 2020년 기준 1만5131건이다. 2018년 1만2213건, 2019년 1만4124건에서 매년 늘고 있다. 상담을 의뢰하지 않은 건수를 포함하면 도박 중독으로 신음하는 이들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도박할 수 있는 곳이 주거지와 가까울수록 도박에 빠지기 쉽다고 경고한다. 조현섭 총신대 중독재활상담학과 교수는 “주거지와 가까이 있다면 도박에 빠질 확률은 더 높다”라며 “나중에는 내성이 생겨 판돈 10만원이 1000만원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도박 중독은 동거인들이 인지하기 어렵고 갑자기 큰 돈을 잃어 주변인까지 힘들게 한다. 알코올 중독 등 많은 중독 사례를 연구했지만 도박 중독이 가장 악질”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사행성 게임으로 인한 도박 중독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도박 중독의 예방과 치료에 대한 정부 내 역할이 산재돼 있고, 보건복지부 참여가 배제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경찰 수사를 요청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방송통신위원회는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있다. 도박 중독은 질병이다. 도박 중독을 철저히 예방하고 관련 위험 요인을 법적으로 제한해야 하는데 현재 정부는 그런(중독에 대한) 정의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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