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비상 걸린 미국, 원전 다시 뜬다!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입력 2022. 5. 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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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츠미쿡]

● 빌 게이츠부터 일론 머스크까지… 미국 巨富가 외치는 원전
● 화석연료 의존 벗어나기 위한 上策
● 원전 산업 몰리는 돈은 脫원전 기조 제동 신호
● 남은 과제는 여론·수급 문제 극복

미국에서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단으로 원전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Gettyimage]
[Gettyimage]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적 에너지 위기를 불러왔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이자 세계 2위 원유 수출국이다. 가까운 유럽은 물론 여러 나라가 러시아에서 에너지를 수입한다.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을 줄일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건 당연한 결과다. 특히 미국에선 저명한 기업가와 투자가들이 원자력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한 2월 24일.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a16z(안드레센호로위츠) 공동설립자이자 영향력 있는 투자자 마크 안드레센은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지금 당장 미국과 유럽에 최첨단 원자력발전소 1000개를 지어야 한다."

전쟁 발발 2주째이던 3월 6일 이번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그는 "지금 상황을 보면, 유럽이 가동을 중단한 원전을 다시 돌려야 하고 기존 원전의 전력생산량을 늘려야 한다는 게 지극히 명백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국가 안보, 국제 안보에 중대하다"고 강조했다. 머스크는 방사능 유출 위험이 과장됐고, 지구온난화 대처에도 원전이 천연가스나 석탄, 석유를 태워 전력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방식이라고 말했다.

빌 게이츠(위) 마이크로소프트 기술 고문, 일론 머스크(가운데) 테슬라 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의장 등 미국 굴지의 기업가들은 원전 사업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AP 뉴시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기술 고문은 신형 원자로 개발 기업에 투자하는 등 에너지 문제 해결에 있어 원전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에너지 분야 활동에 있어 게이츠의 분신과도 같은 조나 골드만 브레이크스루에너지 집행이사는 전쟁 발발 후 "원전을 뺀 친환경 에너지 정책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3월 30일 방송된 MSNBC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독일 정부가 대책 없이 원전 가동을 중단했기 때문에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과 관련해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탄소배출 없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위해선 원전이 주요한 대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원전에 문제점이 있다면 폐기를 주장할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

이들 외에도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의장, 실리콘밸리의 저명한 투자가이자 창업자인 피터 틸 같은 인물이 원자력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 전력 생산 현황을 보면 이들이 원전을 강조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생산된 전력 중 38.3%가 천연가스 발전으로 만들어졌다. 2위는 석탄(21.8%), 3위가 원자력(18.9%)이다. 그다음은 풍력(9.2%), 수력(6.3%), 태양광(2.8%) 순이다. 화석연료(천연가스·석탄) 발전이 60%를 넘을 만큼 전력 생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전력 60% 화석연료 의존 미국

화석연료 발전은 환경오염을 유발한다는 비판을 받지만 전력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풍력, 수력, 태양광 발전은 사정이 다르다. 바람의 세기와 강우량, 일조량이 일정하지 않으니 전력 생산량도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다. 또 현재 기술 수준으론 생산 전력을 비축해 뒀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다.

이러한 상황에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로 말미암은 역풍이 에너지 대란을 심화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주도해 우방국들로 하여금 러시아와 무역을 하지 못하게 제한하는 등 경제제재를 강화하면서 러시아로부터 공급을 받아온 에너지 자원의 수급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당장 문제가 심각해진 건 유럽이다. 유럽연합 국가가 사용하는 천연가스의 40%를 공급해 온 나라가 바로 러시아다. 원유도 연간 소비량의 25%를 러시아가 공급해 왔다. 미국은 러시아에서 천연가스를 수입하진 않는다. 원유 수입량도 얼마 되지 않아 러시아로부터의 원유 수입을 곧바로 금지할 수 있었다.

그래도 충격은 있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미국 주유소 휘발유(가솔린) 가격이 폭등했다. 미국자동차협회(AAA) 자료를 보면 1년 전 갤런당 2.874달러였던 휘발유 평균 가격은 2022년 3월 31일 현재 4.225달러로 47% 올랐다. 결국 3월 3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략비축유(긴급 상황에 대비해 저장해 두는 연료)를 6개월간 1일당 100만 배럴씩 방출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역대 최대 규모다. 휘발유 가격이 치솟은 게 다가 아니다. 그동안 다른 나라에 수출하던 천연가스를 유럽연합에 공급해야 하는 부담도 떠안았다. 유럽연합이 러시아로부터의 천연가스 수입을 줄이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실 미국에선 우크라이나 사태가 본격 촉발되기 전인 지난해부터 원전 산업에 대한 투자가 급증했다. 국제 정세가 불안한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에너지 공급원은 원전이라고 보거나 기술의 미래가치가 높다고 여기는 투자자가 많아진 걸로 분석된다.

탄소배출 없이 안정적 전력 생산

3월 23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에만 원자력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에 34억 달러(약 4조1361억 원)가 투자됐다.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이전 10년보다 더 많은 금액이 지난해 원자력 분야 스타트업에 투자됐다. 5억 달러(약 6082억 원) 이상 투자를 받은 커먼웰스퓨전시스템즈(Commonwealth Fusion Systems), 헬리온에너지(Helion Energy Inc.) 같은 기업뿐 아니라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도 많은 투자를 받은 걸로 분석됐다.

지난해 막대한 돈이 밀려들기 전까지 원전 산업에 대한 투자는 가뭄 수준이었다. 미국에서 원전을 가동해 상업용 전력을 생산하기 시작한 건 1958년부터다. 시간이 가면서 천문학적인 초기 건설비용이 들어가는 데다가 규제가 많은 원전보다 비용이 덜 들고 규제도 덜한 천연가스 발전소가 많아졌다. 미국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지어진 원전은 1973년 첫 삽을 떴지만 규제 및 비용 문제로 2016년에야 발전을 시작한 테네시주 와츠바(Watts Bar)원전이다.

EIA에 따르면 원전의 발전설비 용량은 2012년 미국 전역에서 총 원자로 104개가 가동되던 때 10만2000MW(메가와트)로 최고점을 기록했다. 쭉 하향세를 그려 지난해 말 기준 가동되는 원자로 개수는 93개, 발전설비 용량은 9만5000MW 수준이다. 참고로 한국전력이 매년 5월 공개하는 자료를 보면 2020년 한국의 전체 발전설비 용량은 13만3392MW다. 그중 원전 발전설비 용량은 2만3250MW로 약 17.4%를 차지한다.

민주당 강경파가 정치를 주도해 온 캘리포니아에선 원전을 모두 폐쇄하는 수순을 밟아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원전 유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 2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자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에너지부 장관을 지낸 스티븐 추 스탠퍼드대 교수를 필두로 환경 에너지 전문가 80여 명이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에게 제출한 탄원서가 대표적이다. 캘리포니아 마지막 원전이자 2025년에 폐쇄될 예정인 디아블로캐년 원전을 폐쇄하지 말자는 것을 골자로 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캘리포니아주는 2045년까지 100% 풍력, 태양광, 지열(地熱), 원자력 같은 청정에너지원으로 생산한 전력만 사용할 것이라며 화석연료 사용과 탄소배출을 중단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를 달성하려면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탄소배출 없이 가장 많은 전력을 생산하는 디아블로캐년 원전을 계속 가동해야 한다. 디아블로캐년 원전을 대체하려면 앞으로 남은 2년 내에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을 지금보다 20% 늘려야 한다. 가뭄 때문에 수력발전으로 생산하는 전력량이 올해 19%나 하락한 상황이다. 이를 감안하면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원전 생산 전력을 대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원전처럼 기후 조건과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는 상시 가동하고, 기후 조건에 따라 전력 생산이 불규칙한 태양광·풍력 발전 같은 시설을 통해 추가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참 좋기는 한데…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쇼핑센터.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은 우라늄 수급 불안을 야기해 미국 원전 산업의 장애물로 떠올랐다. [AP 뉴시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3일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0) 사회'를 달성하겠다는 '청정에너지경제 행정명령'을 내렸다. 대통령 권한으로 정부 각 부처에 청정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도록 지시한 것. 그런데 원자력발전에 대한 태도가 다소 모호하다.

연방정부 에너지부 웹사이트엔 원자력 에너지에 대해 "원자력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원"이라고 적혀 있다. "원자력 에너지는 대기오염을 막고 태양광 풍력 발전 등에 비해 적은 공간을 사용한다. 폐기물 배출량도 극소량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원자력에너지는 청정에너지라고 규정한 것인데, 바이든 대통령도 원전을 폐쇄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원전 산업을 육성하려는 움직임도 없다. 민주당 강경파를 포함해 미국 전반의 원전 폐쇄 요구 여론이 적지 않기 때문인 걸로 사료된다.

퓨리서치센터가 1월 24~30일 에너지정책과 관련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원전에 대한 미국인의 생각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원자력발전을 장려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35%, 규제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26%였다. '잘 모르겠다'고 밝힌 응답자는 37%였다. 반면 풍력·태양광 발전을 늘리는 데 찬성한 응답자는 72%나 됐다. 원전은 왠지 꺼림칙하지만 풍력·태양광 발전은 그렇지 않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이다.

민주당 성향의 학자, 환경운동가 중에서도 원전 산업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집단이 존재한다. 의회를 기준으로 보면 단연 공화당이 원전 산업에 더 적극적이다. 공화당은 하원을 중심으로 정부가 우라늄을 비축하고 원전 가동 허가와 원자로 환경영향평가 과정을 단축하는 내용이 포함된 법안을 추진해 왔다. 원전 운영을 통해 편리하게 전력을 생산하겠다는 뜻이다. 4월 1일 이 법안은 민주당이 다수인 연방하원에선 추진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산 우라늄 수급 해결이 관건

2016년 3월 존 바라소 공화당 상원의원이 경기 화성시 현대·기아 남양 연구소를 방문해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존 바라소 의원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목적으로 러시아산 우라늄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동아DB]
이런 국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우라늄 수급 문제가 불거졌다. 원전 개수 증감 문제를 넘어 당장 기존 원전을 가동하는 데 필요한 우라늄 공급에 차질이 생긴 것.

3월 17일 와이오밍주를 대표하는 두 명의 공화당 상원의원 존 바라소, 신시아 루미스가 우라늄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러시아 우라늄 수입을 금지하자는 내용이다. 저변에 미국의 우라늄 산업, 더 정확히는 와이오밍주의 우라늄 산업을 육성하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 와이오밍주는 과거 우라늄 광산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러시아산을 비롯해 가격이 싼 수입산 우라늄이 들어오면서 산업이 시들어갔다.

문제를 좀 더 깊이 바라보자. 미국이 러시아에 강력한 경제제재를 하면서 이에 대한 보복으로 러시아가 우라늄 수출을 먼저 중단할 가능성이 제기된 상황이다. 미국이 원자로를 가동하는 데 사용하는 우라늄 중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기준 16%에 달한다. 3월 블룸버그는 백악관이 러시아 원자력에너지 기업의 제품 수입을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미국 원전이 받을 영향을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원전들은 6~8개월 사용 분량의 우라늄을 미리 확보해 두고 있지만 비축량이 바닥날 경우엔 원전 가동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 이에 백악관이 쉽사리 러시아 원자력에너지 기업 규제를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이 러시아 우라늄을 정제해서 수출하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우라늄까지 수입을 금지할 경우 전체 수입량의 46%가 줄어든다. 미국이 수입하는 우라늄 중 카자흐스탄 우라늄이 22%, 우즈베키스탄 우라늄이 8%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생한 에너지 위기 속에 미국의 원전 산업은 다시 주목받게 됐다. 과연 미국의 원전 산업은 여전한 반대 여론과 우라늄 수급 불안을 뛰어넘어미국의 전력을 책임지는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커먼웰스퓨전시스템즈(CFS)가 개발 중인 핵융합로 모식도. [CFS]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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