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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저항시의 상징' 김지하 별세..향년 81세(종합)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2. 05. 0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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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저항시인 김지하씨가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五賊) 등의 작품을 남기고 8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1969년 11월 시인지에 '황톳길'을 통해 공식 등단했으며 1970년 5월 사상계에 풍자시 '오적'(五賊)을 발표해 필화사건을 겪으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저항시인으로 떠올랐다.

정부는 이를 빌미로 같은달 20일에 김지하 시인을 비롯해 사상계 대표 부완혁, 편집장 김승균, 민주전선 출판국장 김용성 등을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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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이듬해 1970년 '오적' 필화사건, 1975년 '타는 목마름으로' 발표
칼럼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박근혜 지지로 '변절' 논란도
고 김지하 시인 (뉴스1 DB)2022.5.8/뉴스1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한국을 대표하는 저항시인 김지하씨가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五賊) 등의 작품을 남기고 8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1세.

토지문화재단 관계자는 이날 뉴스1에 "오늘 오후 김지하 시인이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김지하 시인은 최근 1년여간 암 투병생활을 해왔다.

고 김지하 시인은 서울대 미학과 재학시절에 4·19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 그리고 6·3사태를 겪으면서 학생운동에 깊게 관여했고 이를 저항시를 통해 표현했다.

시집 '오적' 겉면과 뒷면© 뉴스1

고인은 1969년 11월 시인지에 '황톳길'을 통해 공식 등단했으며 1970년 5월 사상계에 풍자시 '오적'(五賊)을 발표해 필화사건을 겪으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저항시인으로 떠올랐다.

풍자시 '오적'은 '한일협정반대운동'에 참여했던 고인이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을사오적에 빗대어 당시 만연했던 부정부패와 비리를 해학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오적'의 유포를 막기 위해 사상계의 시판을 중단했으나 이 시는 야당인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 6월호에 다시 실렸다.

정부는 이를 빌미로 같은달 20일에 김지하 시인을 비롯해 사상계 대표 부완혁, 편집장 김승균, 민주전선 출판국장 김용성 등을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결국 사상계는 1970년 9월28일자로 등록취소를 당했으나 문공부장관을 상대로 등록취소처분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해 1971년 10월26일 서울고법 특별부에서 승소판결을 받았다.

왼쪽부터 김지하 시인, 부완혁 사상계 대표, 김승균 〃 편집장, 김용성 민주전선 출판국장, '오적'이 실린 사상계 5월호(출처 국가인권위원회)© 뉴스1

고인은 1971년 가수 김민기와 함께 야학 활동을 시작했고 1973년 4월 소설가 박경리의 딸 김영주씨와 결혼했다. 이들 사이에는 아들 김원보, 김세희 형제가 태어났다.

그는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하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또 다시 옥고를 겪었으며 긴급조치 4호 위반혐의로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고인의 대표작 '타는 목마름으로'는 이 시기에 나온 작품이다. 고인은 이 작품을 통해 노벨평화상과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추천된 바 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김지하의 구명을 위해 프랑스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미국의 노엄 촘스키 등 해외 문인과 지식인들과 연대해 '사법 살인'을 막자고 적극 나섰고 이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가 1975년 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석방된 고인은 인혁당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으며 같은 해 3월 13일 서울에서 원주 집으로 가려고 나오다가 중앙정보부에 연행 다시 구속됐다. 이후 재판을 받고 다시 무기징역에 징역 7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결국 그는 1980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고 김지하 시인 (뉴스1 DB)2022.5.8/뉴스1

한편 고인은 1941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김영일이다. 김지하는 지하(地下)에서 따온 필명이다. 그는 목포산정초등학교,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미학과에서 수학했으며 2008년부터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석좌교수로 있다가 2013년부터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임하고 있었다.

다만 한국을 대표하는 저항시인이었던 고인은 1991년 민주화 투쟁에서 연쇄 분신을 질타하는 칼럼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원제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를 발표하고 2012년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해 '변절'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고인의 빈소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 5호실에 임시로 마련됐으며, 9일 중 특실로 옮길 예정이다.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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