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 Review] '판교 등대' 부활할까..IT기업 주52시간 예외 촉각

정원엽 2022. 5. 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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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성남시 판교 일대의 2018년 모습. 한 때 ‘판교 등대’로 불렸다. 밤에도 퇴근하지 않고, 야근하는 이들이 많다는 의미였다. 최근 IT기업과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주 52시간제’를 둘러싼 논의가 뜨겁다. [중앙포토]

주 52시간제 도입과 함께 사라진 ‘판교 등대’가 다시 등장할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난 3일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 ‘스타트업·전문직의 근로시간 규제완화’가 포함되면서 IT업계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일본 등에서 시행 중인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일정 금액 이상 고소득 근로자에겐 연장근로수당과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이 도입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2018년 3월 주 52시간제 도입 전까지 게임·IT업계에선 ‘크런치 모드’로 불리는 야근이 많았다. 서비스 출시 전 업무량 급증 시기, 밤새 야근하다 보니 사무실 불이 꺼지지 않아 일부 기업은 ‘판교 등대’ ‘구로 오징어배’라 불렸을 정도였다. 주 52시간제가 도입과 노조의 등장,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강조되면서 이런 관행은 점차 사라졌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하지만 기업들이 획일적 기준 적용에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이를 완화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지난해 7월부터 주 52시간제가 5~49인 규모사업장으로 확대되자 IT·스타트업계에선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던 상황. 윤 당선인은 대선기간 중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1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근로 시간 유연화 정책에 힘을 싣기도 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고소득 사무직은 근로시간 제한 규제가 풀린다. 또 회사가 연장 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기업이 고성과자에 대해선 다른 방식(보너스, 성과급, 스톡옵션)으로 보상할 가능성이 커진다. 2020년 대한상공회의소 여론조사(응답자 300명)에서 직장인 87.5%가 제도 도입을 찬성한 이유다. 이들은 평균 연봉 7950만원 이상을 적용대상으로 꼽았다. 또 글로벌 기술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주 52시간제 획일적 적용은 족쇄란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참고로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은 주급 684달러(연 3만5568달러) 이상 관리직과 전문직 근로자에 대해 초과근로 수당 가산지급(급여 50% 가산)을 면제해준다. 연봉 10만7432달러 이상 직원에겐 임금 및 시간 관련 법률을 적용하지 않고 추후 업무성과를 토대로 추가 급여를 지불한다.

국내에선 최근 2~3년 사이 IT기업 개발자의 평균연봉이 높아지면서 적용 대상자 규모도 많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2019년 김병관 전 의원(더불어민주당), 2020년 임이자 의원(국민의힘)이 발의했던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현재 폐기)은 ‘상위 3% 연봉 노동자’를 대상으로 규정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연봉 1억724만원(국세청 근로소득 통계 기준) 이상 58만5000여 명이 대상이 된다.

여기에 글로벌 기술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주 52시간제 획일적 적용은 족쇄란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실제 일본은 2019년 ‘고도(高度)프로페셔널(Professional)제도’를 도입했다. 1075만엔(1억500만원) 이상 수입을 가진 근로자가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경우 연간 휴일규정이나 근로시간 규정 적용을 제외하는 제도다.

반면 대기업·IT 종사자 등은 근무시간 증가 등 노동여건 악화를 우려한다. 참여연대는 4일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논평을 통해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노동자 건강권 침해·삶의 질 악화 문제가 심각한 현실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현행 제도를 무력화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익명을 원한 IT업계 노조 관계자는 “이제야 열악했던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원격근무가 확산되고 있는데, 시대를 역행하는 조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이 제도가 국내에 당장 도입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이 필요한데 168석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원내 대변인은 지난달 8일 브리핑을 통해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과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확대로 다시 야근 지옥이 될까 우려된다”며 “선택을 가장한 장시간 노동 강요, 연장근무 수당 미지급이라는 구시대 그릇된 관행을 부활시켜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원엽 팩플팀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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