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4억 올려달래요" 잔인한 8월이 온다

이미지 기자 2022. 5. 9.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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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의 전용면적 59㎡ 아파트에서 전세살이하는 A씨는 4개월 앞으로 다가온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걱정이 태산이다. A씨는 2020년 9월 지금 사는 전셋집의 보증금을 5억원에서 5억2500만원으로 올려 계약했다. 당시 같은 단지 전세 시세는 최고 7억5000만원에 달했는데, 2020년 7월 말 개정된 주택임대차법 덕분에 보증금을 5%만 올려주고 갱신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전셋값을 조금만 올리고 2년 더 살 수 있다는 것에 안도했지만, 계약 만기가 다가오면서 엄청나게 오른 전세 시세에 앞이 깜깜해진 것이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연합뉴스

A씨가 사는 아파트의 요즘 전세 시세는 9억원이 넘는다. 집주인이 시세대로 전세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면 현금 4억원 정도를 마련해야 한다. A씨는 “2년 전 시세만큼 전세금을 올리지 못한 집주인이 분명히 보증금을 대폭 올리려고 할 텐데 어떻게 목돈을 마련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임대차법 2년으로 ‘계약갱신’ 8월부터 만료 시작…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 2년새 35% 올라

오는 7월 말이면 계약갱신청구권(2+2년)과 전·월세 상한제(5% 룰)를 도입한 임대차법 개정 2년을 맞는다. A씨를 포함해 2년 전 전세 계약을 연장한 세입자 중 상당수는 시세대로 오른 가격에 전셋집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KB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2020년 7월 4억9922만원에서 지난달 6억7570만원으로 35.4%(1억7648만원) 올랐다. 2년 전 계약을 갱신한 세입자가 비슷한 수준의 전셋집을 구하려면 2억원 가까운 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같은 기간 경기도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44.9%(1억2101만원), 인천도 43.7%(9159만원) 급등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주거 수요가 많은 수도권 인기 지역에서는 급등한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해 반(半)전세를 선택하거나 외곽으로 밀려나는 세입자가 속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대차법 개정 후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도 계약을 갱신한 세입자와 새로 계약한 사람의 전세금이 수억 원씩 차이가 나는 ‘이중 가격’ 현상이 보편화됐다. 집주인이 직접 거주한다는 이유로 세입자를 내보낸 후 집을 처분하거나 전입신고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다른 세입자를 들이는 등의 꼼수도 만연하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세입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임대차법 개정을 밀어붙였지만 결과적으로 시장 왜곡만 부추겼다”고 말했다.

◇ 세입자들 밤잠 설쳐… 집주인 “4년치 전셋값 한번에 올릴 것” 속출

서울 노원구 중계동 ‘중계그린’ 49㎡(이하 전용면적)는 지난달 29일 5억225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그러나 불과 열흘 전엔 같은 면적이 2억2000만원에 거래됐다. 신규 계약 전셋값이 갱신 계약보다 배(倍) 이상 비싼 것이다. 양천구 신월동 ‘목동센트럴아이파크위브’ 84㎡도 하루 간격으로 이뤄진 전세 계약 두 건의 금액 차가 4억6000만원에 달했다.

집값이 비싼 강남권에선 같은 단지에서 전셋값이 5억~6억원씩 차이 나는 일이 흔해졌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개나리푸르지오’ 147㎡는 지난달 22일 16억2800만원에, 이달 1일엔 22억원에 거래됐다. 앞선 거래는 2020년 3월(15억5000만원) 계약에서 5% 이내로 보증금을 올린 갱신 계약이고, 최근 거래는 시세를 반영한 신규 계약이다. 일부 단지에선 집주인과 세입자가 서로 합의해 ‘시세보다는 낮지만, 5%보다는 많이 올린’ 금액에 계약을 맺으며 ‘삼중 가격’이 형성되기도 한다.

개정 임대차법이 가져온 극심한 전셋값 왜곡은 결국 세입자 부담으로 돌아온다. 2018년 말 결혼한 직장인 B씨는 “신혼 때 직장 근처에서 4억원짜리 전세 아파트를 구해 주변의 부러움을 샀는데, 지금 시세는 8억원이 됐다”면서 “갱신 계약이 끝나면 근처 빌라나 외곽 지역 아파트로 옮겨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2년간 망가진 전·월세 시장

2년 전인 2020년 5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4억8655만원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4억2618만원)과 비교하면 3년 동안 14.2% 올랐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50.8% 올랐다. 정부가 온갖 부동산 규제를 쏟아내고도 서울 아파트값을 잡지 못해 고전했지만, 전세 시장은 상당히 안정적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2020년 7월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임대차법 개정을 강행하면서 전세 시장마저 격랑에 휩싸였다. 법 개정 후 지난달까지 전국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33.2%, 수도권 평균값은 38.6% 올랐다. 2년 전 계약갱신청구권으로 한숨 돌린 세입자들은 4년 치 전셋값 상승분을 한꺼번에 떠안게 됐다.

새 임대차법 때문에 시세대로 전세금을 올리지 못한 집주인들은 새로 맞는 세입자에게 ‘한풀이’를 할 기세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전세로 주고 있는 C씨는 “한번 계약하면 4년 동안 보증금을 못 올리니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매물로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작년 말부터 잠잠하던 전셋값이 올 하반기부터 다시 요동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8~9월 계약할 수 있는 전셋집을 찾는 수요가 최근 늘면서 전세 매물이 귀해지고 호가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이 집계한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8일 기준 2만5980건으로 두 달 전보다 17.8%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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