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재의 ESG인사이트]푸줏간 주인의 공정과 효율

2022. 5. 9.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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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 격차가 극심했던 18세기, 스코틀랜드 커콜디라는 마을에서 자유 시장경제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가 태어났다. 19세기 영국의 문호 찰스 디킨스는 ‘두 도시 이야기(1859)’에서 아담 스미스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상을 이렇게 적었다. “커다란 희망에 넘치는 것 같으면서, 또한 완전한 암흑, 허무인 것처럼도 보였다. 사람들은 천국을 가리키는 것 같으면서, 또한 완전히 지옥의 길을 걷고 있었다. 100여 년 전 그 당시는 1850년대인 지금과 너무나도 닮았다.”

아담 스미스는 예순일곱 해 생애 동안 단 두 권의 저서만을 남겼다. 그의 유명세치곤 단출했다. 도덕감정론(1759년)과 국부론(1776년)이 그것이다. 우리들에겐 국부론이 익숙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묘비에 ‘도덕감정론’의 저자로 새겨 달라고 유언했다고 하니, 도덕감정론에 더 큰 애착을 가졌던 듯싶다. 이 두 권의 책이 묘사하는 인간 본성은 어떠했을까. 도덕감정론에서는 인간을 공평무사한 존재로 그렸다. 인간은 내면에 제3자의 불편부당한 관찰자를 놓음으로써 어떤 사건에 대해 객관적으로 공감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국부론에서는 인간의 이기심이 강조되었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이나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이기심 덕분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그것이다.

이 말은 시대를 유전(遺傳)하면서 자유 시장경제 진영의 단골 인용구가 되었다. 즉 우리들의 식탁이 풍요로운 이유는 푸줏간, 빵집 주인들의 친절 때문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그들의 이기적 욕구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성이 풍요로운 생산과 교환이 이뤄지는 시장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은 인간의 이기적 동기에 제한을 가하는 제도와 규제 등에 대해 회의적이고 비판적이다. 과연 그러할까. 그 판단을 위해서는 그가 남긴 두 권의 책을 관통하는 인간상에 대한 파악이 우선되어야 한다. 즉 두 권을 분리해서 읽지 말고 합본해서 보자면, 그는 전적으로 공평무사한 인간도, 전적으로 이기적 인간도 아닌 ‘공감력과 이기성을 겸비한 인간’을 상정하고 있다. 이 균형 잡힌 인간을 전제로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의 ‘보이지 않는 손’이란 시장 메커니즘을 입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책이 아닌 현실 속에서 ‘공감과 이기의 균형을 이룬 인간’이 과연 존재할까. 즉 감시와 규제가 없을 때, 자신과 손님의 식탁에 같은 품질의 소고기와 빵을 올려놓을 푸줏간과 빵집 주인이 과연 존재할까. 지인과 손님들에게 동일한 품질의 물건을 같은 가격에 판매할 주인들이 있을까. 신독의 경지에 다다른 상인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오히려 낮은 품질에 더 큰 마진을 붙이려는 유인 기제가 작동하지 않을까. 이래서 시장에는 늘 ‘물 먹인 소고기’도, ‘방부제가 첨가된 빵’도 등장한다. 결과적으로 주인들의 식탁은 풍요로워지나 손님들의 식탁은 점점 왜소해질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시장실패라고 말한다. 외부효과, 공유지의 비극, 제한된 합리성, 담합, 불공정 거래 등이 시장을 실패하게 한다. 이로 인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상처를 입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그 치료를 위한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 국가가 직접 개입하는 방법, 둘째 시장 스스로 자가 치료해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이 그것이다. 전자는 자칫 시장의 효율적 자원배분을 막는 부작용이 예상된다. 이른바 정부실패이다. 후자는 최근의 화두인 ESG(환경·사회·거버넌스)를 통해 효율적 자원배분을 촉진하는 것이다. 오염 및 탄소배출 등을 통한 외부효과는 환경 이슈이고, 담합, 불공정거래 등은 사회 및 거버넌스 이슈인 까닭이다. 따라서 주주인 투자자들이 ESG 수준을 평가하여 기업에 자금을 적극 배분한다면, 기업은 스스로 시장실패를 피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혈액과 같은 자금이 원활히 수혈되고 순환된다면 기업의 면역력도 개선되어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다시 원활히 움직인다.

이러한 ESG 경제의 발전은 시장경제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불공정, 독과점과 양극화의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이다. 만일 그러한 세상에서 찰스 디킨스가 부활한다면 이렇게 적지 않을까. “21세기 인간들은 지혜롭다. 그들은 천국을 가리키며 역시 천국의 길을 함께 걸어간다.”고. 아담 스미스도 다시 온다면, “ESG는 시장에 공감과 효율을 동시에 불어 넣는 보이는 손”이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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