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초밥십인분' 압색 그날.. 증거도 없이 서랍까지 다 털었다

최훈민 기자 입력 2022. 5. 9. 18:17 수정 2022. 5. 9.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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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고발로 자택 압수수색 당한 3명 인터뷰
"민주당 측 서버 침입한 적 없다"
경찰도 "침입 흔적 없었지만, 업무방해 혐의도 있어"
C씨가 1위를 했던 지난 2월 당시 이재명 게임 순위 /이재명 게임 갈무리

서울 도봉구에 거주하는 A(30)씨 집에 지난달 28일 형사 3명이 들이닥쳤다. 형사들은 A씨의 PC와 휴대전화는 물론, 책상과 가방, 옷장을 샅샅히 뒤진 뒤 A씨의 디지털 사용 기록을 다운로드받고는 철수했다.

경찰이 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면서 A씨에게 적용한 첫번째 핵심 혐의는 ‘해킹’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대선 기간 이른바 ‘이재명 게임’이란 온라인 게임을 운영했는데, A씨가 이 게임의 고(高)득점 랭킹 순위표에 ‘언뜻 보면 한글 욕설처럼 보이는 한자(漢字) ID’를 노출하기 위해 민주당 측 서버에 침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A씨는 “맹세코 남의 서버에 침투한 적이 없다”고 했다. 경찰도 “압수수색에 앞서 민주당 측 서버를 조사했지만 외부 침입 흔적은 찾지 못했다”고 했다. 실제로 ‘이재명 게임’은 해킹 없이도 간단하게 ‘랭킹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게 가능한 구조였다. 고소인인 민주당 주장을 경찰과 검찰, 영장 발부권자인 법원까지 권력기관들이 맹목적으로 수용해준 것이다.

A씨는 9일 조선닷컴 인터뷰에서 “아무런 증거도 없이 이런 식으로 시민의 프라이버시를 거짓말까지 해가며 함부로 침해해도 되는 것이냐”며 “일반 시민이 고소했다면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겠느냐”고 했다.

◇이재명 게임, 해킹 없이도 고득점 기록 전송 가능

경찰은 ‘이재명 게임’의 고득점 상위 순위에 올랐던 ‘사라진초밥십인분’을 포함 게임 상위 계정주 3명을 지난달 28일 전격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 맨 앞줄에 적시된 사유는 ‘이재명 게임 서버에 침입해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혐의였다. 그 뒤에 업무방해 혐의를 덧붙여놨다.

정보통신망법은 ‘정당한 접근권한 없이 또는 허용된 접근권한을 넘어 정보통신망(서버 등)에 침입하는 행위’(제 48조 1항)를 해킹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A씨 등 계정주들은 “내가 내 PC에서 정상적인 접근권한을 통해 내 점수를 고친 것뿐”이라며 “서버 침입에 관한 정황 증거조차 전혀 없는 무리한 압수수색이었다”고 반발했다.

A씨 등이 말하는 ‘순위표에 이름을 올린 방식’은 이렇다. 이용자가 PC에서 크롬(Chrome) 브라우저를 이용해 이재명 게임에 접속해 플레이하고난 뒤, ‘F12′ 키를 누르면 이용자가 머물고 있는 페이지의 프로그램 정보가 뜬다. 여기서 ‘ESC’ 키를 누르면 내가 받은 점수를 검색할 수 있다. 이 인터넷 공간은 사용자 개인의 영역이고, 여기서 자기 점수를 원하는 점수로 고친 뒤 빠져나오면, PC에 수정 저장된 점수가 저절로 민주당 측 서버에 전송된다는 게 A씨 등의 설명이었다.

A씨는 “이재명 게임은 남의 서버가 아니라, 내 PC, 내 브라우저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 고득점이 가능한 구조”라며 “해킹으로 서버에 침입해 이런 짓을 벌인 뒤 압수수색 당했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압수수색이 이어진 건 황당하다”고 했다.

실제로 민주당도 고소인 조사 때 계정주들이 이재명 게임 서버에 침입했다는 물증이나 정황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압수수색 영장에 적시된 혐의 2가지 가운데 1가지는 정황 증거가 없었던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계정주들이 서버에 침투는 하지 않았지만, 점수가 전송은 된 건 확인된 상태였다. 어떤 방식으로 점수를 조작했는지, 증거 확보 차원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A씨는 “경찰에게 사실대로 말해줬는데도, 경찰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게임 서버에 접속해 데이터를 변조한 것 아니냐’고 다그쳤다”고 말했다.

◇“개인정보 악용된 거 같은데…” 속이고 쳐들어온 경찰

A씨와 경찰에 대한 조선닷컴 취재를 종합하면, A씨가 경찰 전화를 받은 것은 지난달 28일 오후 1시쯤이었다. 수화기 너머의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과 형사는 A씨에게 “선생님 개인정보가 범죄에 악용된 것 같다. 댁에 찾아가려는데 시간 괜찮냐”고 했다. A씨는 보이스피싱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만나서 이상하면 만남을 종료하면 될 일이라고 판단해 “알았다”고 답했다. 곧 형사 3명이 집으로 들이닥쳤다. 형사들은 바로 이재명 게임 관련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A씨는 “압수수색하러 왔다고 하면 되는데 내 개인정보가 범죄에 악용되었다는 식의 거짓말을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며 “진술서 작성을 종용 당했다”고 했다. 경찰의 진술서 종용에 A씨는 “지금 진술을 안 하고 나중에 정식으로 조사 받을 때 경찰서에서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라고 말했는데, 경찰은 “진술 거부하는 거냐. 이렇게 협조 안 해주면 우리도 원칙대로 컴퓨터 본체와 휴대전화를 압수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A씨는 이에 울며 겨자 먹기로 진술서를 썼다. 경찰은 A씨의 하드를 복제하고, 이재명 게임이 출시됐던 지난 2월15일에서 16일 사이 A씨가 게임 순위를 캡처했던 사진만 그의 휴대전화에서 복사해 갔다. A씨는 경찰에게 자기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풀어주는 등 압수수색에 협조했지만, 경찰은 A씨 안방의 책상과 가방, 옷장을 뒤졌다.

영장 속 압수 대상 목록에는 문자 메시지와 통화기록, 카카오톡 등 메신저 대화 기록과 사진, 동영상, 문서 파일, 연락처, 메모, 음성 녹음 파일, 전자우편, 인터넷 접속 기록, 삼성·구글·네이버 등 클라우드 저장 자료, 수첩, 메모, 출력물까지 모조리 적혀 있었다고 한다.

◇“공권력이 평범한 시민 인생 이렇게 쉽게 짓밟아도 되나”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 거주하는 B(27)씨 역시 같은 날 오전 8시30분쯤 압수수색을 받았다. 경찰관 3명이 집으로 찾아왔다. B씨의 방으로 들어온 경찰은 “전자기기를 다 꺼내라”고 한 뒤, 휴대전화와 노트북 비밀번호를 풀라”고 지시했다. B씨는 이에 협조했지만, 경찰은 서랍과 옷장까지 모두 뒤졌다. 경찰은 B씨의 휴대전화에서 이재명 게임이 처음 공개된 2월15일~16일 사이 찍힌 사진을 전송 받아 가져갔고, 노트북의 하드 복제본이 아닌, 노트북 자체를 비닐에 밀봉해서 압수해 갔다.

B씨의 취미는 낚시다. B씨에 따르면 그는 낚시 용품을 서랍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낚시용 칼을 보고 경찰이 B씨에게 “왜 칼을 가지고 있냐”고 따져 묻고, 옷장에 군복을 보고 개인적인 질문을 마구 던졌다. 압수수색 나온 3명 가운데 2명이 그렇게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사이, 또 다른 1명은 자신의 휴대전화로 주식 차트를 보다가 이내 B씨의 방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고 한다. 그는 “자기들 편 아닌 사람한테 공포를 주려는 목적에서 압수수색을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참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전 8시30분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사라진초밥십인분 계정의 주인 C씨의 집에도 경찰은 들이닥쳤다. 출근을 준비하던 C씨에게 전화를 건 경찰은 “어디시냐”고 물었다. 이에 C씨가 “집”이라고 대답하자 경찰은 “만나서 얘기 좀 나누자”고 했다. 막 출근하던 찰나 전화를 받았던 C씨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며 “이유가 뭔가요?”라고 대답하는 순간, 현관문에서 대기 중이던 경찰관 4명과 마주쳤다.

C씨는 이상한 나머지 “압수수색 하시는 것을 촬영해도 되냐”고 물었지만, 경찰은 바로 거부했다. 경찰은 C씨에게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풀라고 지시한 뒤, “범죄 사실을 자백하고 쉽게 쉽게 좀 끝내자”고 계속 압박하며 C씨의 침실과 방 2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경찰이 C씨에게 “여기서 그냥 진술서 쓰고 쉽게 끝내자”고 말했고, B씨가 이를 거부하며 “정식 조사 때 조서를 작성하겠다”고 답했다. 경찰은 A씨와 달리 진술서를 쓰지 않고,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열어주지 않은 C씨의 컴퓨터 하드 복제본과 함께 휴대전화를 압수해 갔다.

C씨는 “일개 시민을 상대로 이러한 말도 안되는 고소를 진행한 거대여당 더불어민주당도 정말 황당하지만, 이런 일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한 검찰, 이를 승인한 법원, 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을 속이고 죄를 자백하라며 범죄자 취급을 한 경찰까지, 평범한 시민 한 사람의 인생을 공권력으로 이렇게 쉽게 짓밟아도 되는 거냐”고 했다.

◇경찰 “속이는 건 수사 기법” “해킹 증거 못잡았지만, 증거 인멸 우려”

이에 대해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진술서 강요 논란에 대해 “피의자가 특정이 되긴 했지만 우리가 압수수색하는 대상이 실제 피의자가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받은 것뿐, 혐의 인정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진술서를 받은 것은 아니다”고 했다. 또 “압수수색을 나설 때 ‘택배 왔다’는 등의 방식으로 증거를 훼손하지 못하도록 거짓말로 압수수색 대상자를 속이는 건 일종의 수사 기법”이라고 했다. 또 “해킹 외에 업무방해 혐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단순 업무방해 혐의로 피고소인 소환 한번 안하고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고 말한다. 서울고검 출신 임무영 변호사는 “경찰이 거짓 목적을 말하고 압수수색을 진행한 건 정상적인 공무집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 압수 목적물이 컴퓨터 등 디지털 자료인데, 이미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확보했음에도 책상 서랍과 옷장 등을 뒤진 건 과잉 압수수색이라고 판단된다”고 했다. 또 “휴대전화를 볼모로 진술서 작성을 강요하는 건 직권남용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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