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하겠다는 건지 도대체 감이 안 잡힌다"..곤혹스러운 기업들

조계완 입력 2022. 5. 11. 16:46 수정 2022. 5. 12.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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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학계·재계가 본 취임사
"기업 정책이든 금융정책이든
무엇을 지향하는지 불분명해"
"경제 미치는 영향 매우 큰데
5년 투자계획 잡기도 어려워"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참석자들과 옷과 마스크를 벗고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경제분야 국정과제 철학은 “성장은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잘 구분해야 한다”(대통령직인수위원회 110대 국정과제 보고서)로 집약된다. 이에 대해 여러 경제학자와 기업 쪽에선 “코로나 팬데믹 이후 산업정책에서 ‘국가의 일’이 더 많아지고 있는 국내외 경제 환경변화에서 오히려 벗어나” 있으며, “그저 일 잘하는 정부만 내세울 뿐 뭘 하고 또 하지 않겠다는 건지 도대체 감이 명쾌하게 잡히지 않아 기업들이 5년을 내다보는 장기 투자·운영계획을 잡기도 어렵다”고 곤혹스러워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사에서 “빠른 성장 과정에서 많은 국민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고, 양극화와 갈등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다. 도약과 빠른 성장은 오로지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에 의해서만 이뤄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대통령직인수위가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 보고서가 표방한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는 전방위적 규제개혁” 맥락을 그대로 관통하는 말로 해석된다. 오직 민간만이 빠른 성장을 이뤄내고, 그 결과는 소득·고용 양극화 및 불평등 해결로 이어질 거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지금은 각국마다 산업정책에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예전보다 더 경쟁적으로 부상하는 시대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방향이)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낙오자는 보듬는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등 한국경제가 직면한 시대적 과제를 잘 해결하고 전 세계적인 기술패권 경쟁 및 산업정책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복영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경제학)도 “지금은 미래산업 육성을 위해 선진국마저 정부가 나서는 소위 ‘산업정책의 부활’ 시대다. 이 기회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또 이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 간 분업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타래처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상황에서 해법을 찾으려면 어디에 가위를 갖다 대야할지 판단·결정해야 하는데 오직 ‘민간’과 ‘규제 해체’만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 교수는 “불공정과 불평등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런 문제를 낳는 제도를 고치는 것이다. 어떤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이나 개인의 목표와 행동이 달라지고 그러면 경제의 성과와 구조가 달라진다”며 “윤석열 정부는 진보정부가 경제에 지나친 개입을 했다고 판단하고 정부의 역할을 줄이려는 것 같다. 자칫 복지 축소나 독과점, 산업안전, 환경규제 등을 완화하려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취임사에 ‘자유·번영·성장·과학·지성’ 같은 어휘만 나열돼 있을뿐 완수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불분명해 답답한 느낌이 든다는 평도 나온다. 한 경제단체 임원은 “대·중소기업 정책이든 거시·금융정책이든 무엇을 지향하는지 모호한 대목이 많다. 임기 내내 그때그때 일이 터지면 적절하게 대응할 뿐이라는 거냐”며 “정부가 시장에 관여하지 않겠다면 기업에 좋을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정부 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편인데 5년을 예상하고 내다보는 투자계획을 잡기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객관적인 사실과 데이터에 기초해 정책을 결정·집행하는 실용주의”(110대 국정과제 보고서)를 원칙으로 제시하지만, 무엇을 하겠다는 것보다는 일을 ‘잘’ 하다보면 “다시 도약하고 함께 잘사는 국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종합 기조라는 해석도 나온다. 선출 정부가 정책 설계·집행 권한을 필요한 정도로만 스스로 제한하겠다고 약속하는 셈이다. 조복현 한밭대 교수(경제학)는 “새 정부 경제정책 평가를 해보려 해도 정리가 잘 안 되는 것 같아 논평하기도 곤란하다”고 했다. 경제운용 목표 수치를 비롯해 구체적이고 명확한 약속이 제시되지 않으면 무엇이 지켜지고 있는지 혹은 실패하고 있는지 국민들이 판단하기도 어렵다.

조계완 선임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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