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가 휩쓸고 간 곳에 '산타독'이 왔다..산불 피해 복구하는 반려견들

강릉=김기윤 기자 입력 2022. 5. 14. 03:01 수정 2022. 5. 14.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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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산불 피해지역 복구 '산타독 프로젝트' 현장 가보니
견주들 '산타독' 40마리 데리고 화마가 할퀸 산 올라 복원 앞장
지역주민들이 원하는 종류인.. 도라지-관상용 개양귀비 등
산 구석구석에 씨 흩뿌리고 다녀
지난달 30일 강원 강릉시 옥계면의 한 야산에서 분홍색 씨앗 주머니를 목에 매단 한 반려견이 3년 전 산불로 민둥산이 된 비탈면을 누비고 있다. 씨앗 주머니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 개들이 뛰어놀면 자연스레 산 구석구석에 씨앗이 뿌려지게 된다. 한국유기동물보호협회 제공


민둥산 되살리는 ‘산타독’


《씨앗 주머니를 매달고 산불 피해 현장을 뛰어다니는 강아지들이 있다. 일명 ‘산타독(산을 타는 강아지들)’이라 불리는 반려견과 유기견이다. 이들은 산불로 황폐화된 산에 씨앗을 뿌리며 산림 복원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오전 10시 강원 강릉시 옥계면 현내리. 주수천과 동쪽으로 넓게 펼쳐진 옥계해변, 높은 봉우리들로 둘러싸인 마을에 강원뿐 아니라 서울, 인천, 경기, 충청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차량 수십 대가 모여들었다. 고요하던 마을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차량에서 내리는 사람들 뒤로 이들이 ‘모셔 온’ 반려견들이 한두 마리씩 따라 내렸다. 이날 모인 반려견은 총 40마리. 산불로 타버린 산림 복원을 위해 씨앗 뿌리기 봉사에 참여할 이른바 ‘산타독’(산을 타는 강아지들)들이다. 개들이 작은 구멍이 뚫린 씨앗 주머니를 매단 채 화마가 할퀴고 간 민둥산을 뛰어놀면 자연스레 산 구석구석에 씨앗이 흩뿌려진다.

이날 봉사활동은 한국유기동물보호협회가 대형 산불로 피해를 입은 강원, 경북 일대 산간 지역에서 벌이는 산림 복원 활동 ‘산타독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프로젝트는 2020년 시작됐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이어가지 못한 탓에 올해가 햇수로 2년 차다. 2017년 칠레에서 대형 산불이 일어난 뒤 비영리단체 ‘pewos’ 활동가가 자신의 반려견 세 마리에 씨앗 가방을 매달고 산불 피해 지역을 누비도록 해 성과를 낸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기자도 이날 반려견과 함께 봉사에 참여했다.
○ “신나게 노는 것이 개들의 봉사”

차에서 내린 반려견들은 ‘견생(犬生)’ 최초의 봉사활동을 앞두고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코를 킁킁댔다.

낮 12시 견주와 개들이 2019년 4월 대형 산불로 타버린 옥계면 도직리 밥봉 중턱으로 향했다. 산을 20여 분 오르니 능선 아래 민둥산의 모습이 펼쳐졌다. 산불 이후 3년이 지났지만 나무는커녕 사람 허리 높이까지 올라오는 풀도 좀체 찾아보기 힘들었다. 타버린 나무들은 밑동만 남아 있었다. 봉사활동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이 넓은 산이 다 타버렸네”라며 탄식부터 했다. 올해 3월에도 인근 산에서 불이 났지만 나뭇가지 등 타고 남은 잔재가 정리되지 않아 봉사활동을 하기 어렵다고 주최 측은 설명했다.

산에 오른 견주들은 씨앗이 담긴 주머니를 반려견에게 매달았다. 어른 손바닥만 한 주머니에는 도라지와 더덕, 관상용 개양귀비 등의 씨앗이 담겼다. 소형견은 주머니를 1개, 보더콜리나 리트리버 같은 중대형견 종은 2∼3개씩 달았다. 산에 오른 반려견들은 잠시 숨을 ‘헥헥’ 몰아쉬며 힘들어하더니 2시간여 동안 서로 어울리며 산 이곳저곳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개들이 이따금 물을 마시러 오면 견주들은 빈 씨앗 주머니를 가득 찬 새 주머니로 바꿔 매달았다.

이날 반려견 40마리는 모두 15kg의 씨앗을 민둥산에 흩뿌렸다.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알 턱이 없지만, 개들은 산 곳곳에 새로운 생명을 심으며 공익적 활동을 한 셈이었다. 황성진 한국유기동물보호협회 이사 겸 쏘셜공작소 대표는 “개들은 산의 비탈면처럼 사람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곳도 다니고, 씨앗을 뿌리는 범위도 사람보다 훨씬 넓다”며 “반려견들이 뿌린 씨앗이 훗날 산림 복원으로 이어지는 동화 같은 일이 실현되길 바란다”고 했다.

답답한 도시를 떠나 자연을 만난 개들은 이날 살판이 난 것 같았다. 개들에게는 씨앗을 뿌리는 봉사가 놀이였던 것이다. 반려견이 실컷 뛰어놀 만한 공간을 찾기 쉽지 않은 도심에 사는 견주들은 반려견에게 제대로 놀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할 겸 봉사활동에도 흔쾌히 참여했다. 이번 프로젝트 참여자 모집은 지난달 공고 10여 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인천에서 온 한 참가자는 “취지는 전혀 모르는 강아지들이 재밌게 뛰노는 것만 봐도 행복하다”며 웃었다.

오후 4시경 반려견들이 하나둘씩 산어귀로 내려오며 활동은 끝났다. 실컷 뛰어다닌 탓에 개들도 다소 지친 기색이었다. 일부 반려견은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오기 힘들었는지 도중에 바닥에 엎드리거나 주저앉기도 했다. 주인 품에 안겨 내려오는 반려견도 있었다. 산불 당시 코앞에서 벌겋게 타오르는 산을 지켜봤던 주민들이 밭농사 도중 산에서 내려오던 봉사자를 바라보며 흐뭇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한 반려견(보더콜리)이 몸통에 씨앗 주머니를 매달고 산불 피해 지역을 달리다 잠시 멈춰 선 모습. 한국유기동물보호협회 제공
○ “버림받은 개들이 사람과 환경 도와”

두 살인 반려견 ‘별이’도 이날 주인 김온유 씨(27)와 함께 어느 개보다 신나게 산을 누볐다. 별이는 경기 평택시의 한 길거리에서 박스에 담긴 채 버려졌던 개다. 당시 피부병이 심해 새 주인을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지난해 4월 경기 평택시 동물보호소에서 안락사를 하루 앞두고 새 주인 김 씨를 만났다. 김 씨는 “아픔을 가진 아이지만 밖에 나와 이토록 즐거워하고, 봉사활동도 하니 나도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날 프로젝트에 참여한 반려견 다섯 마리 중 한 마리는 별이처럼 사람으로부터 버려진 경험이 있는 유기견이었다. 버림받았던 반려견들이 사람과 함께 재난 피해 회복을 돕겠다고 나선 셈이니 더 기특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프로젝트를 돕기 위해 나선 강릉 주민 자원봉사자 30여 명은 반려견들의 방문을 반기며 “유기견 출신 강아지도 왔다고 해서 더 기특하다. 얘들이 뭘 아는진 모르겠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고 했다.

유기견 문제는 강릉 지역 사회의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해마다 여름 피서철이 지나면 강릉의 해변이나 근처 도로에 버려진 반려견이 수두룩하다. 특히 강릉 경포대는 전국에서 유기견이 가장 많이 버려지고, 많이 발견되는 지역 가운데 하나로 꼽힐 정도다. 강릉의 유기동물보호소는 이미 포화 상태라며 지역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안타까워했다.

엄여울 한국유기동물보호협회 사무국장은 “나중엔 지역마다 유기동물 보호시설이 갖춰지고, 시설의 유기견들이 교육을 받고 외출을 겸해 이번 같은 봉사에 참여하게 되기를 바란다”며 “봉사활동으로 사회적 인식도 바뀌어 유기견의 입양률이 높아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날 반려견들이 뿌린 씨앗은 마을 주민들이 산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종류로 준비됐다. 도라지와 더덕은 씨앗 위에 흙을 덮지 않더라도 빗물만 있으면 쉽게 싹을 틔우는 종이라는 장점이 있다. 더구나 발아한 씨앗이 자라났을 땐 상품 작물로 수확할 수 있어 주민들에게 부수적인 이득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황 이사는 “생활 터전에 피해를 입은 지역민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종자를 선택했다”며 “개양귀비 씨앗은 주민들이 꽃을 보고 희망을 품길 바라는 마음으로 골랐다”고 설명했다. 종자 값은 모두 150만 원이 들었다고 한다.

산타독 프로젝트는 향후 각 지역의 기업, 대학과도 연계해 활동 폭을 넓힐 계획이다. 다음 달엔 경북 안동의 산불 피해 지역을 찾아 대구한의대 반려동물보건학과 학생들과 봉사활동을 할 예정이다. 올해 이 같은 행사를 많으면 10회 개최할 계획이다.

○ 산림 복구 위해 팔 걷고 나선 이들

최근 발생한 경북 울진, 강원 삼척 지역 대형 산불을 비롯해 강원과 경북 동해안 지역 산간에서 해마다 산불 피해가 발생하면서, 산타독 프로젝트 외에도 여러 단체들이 화재로 불타 황량해진 민둥산을 복구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는 7일 산림청 남북산림협력단과 함께 자원봉사자 15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강릉 성산면 어흘리 일대에서 소나무 묘목 3000그루를 심었다. 어흘리는 2017년 5월 산불 피해를 입은 곳이다.

사단법인 ‘생명의숲’은 최근 산불 피해 산림 복원을 위해 포털 사이트와 연계해 ‘댓글 10개당 나무 한 그루 심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누리꾼이 캠페인에 댓글을 달면 10개당 나무 1그루를 심을 수 있는 돈을 기업이 기부하는 프로젝트다. 누리꾼과 기업의 기부를 통해 6억 원이 모여 산불 피해 지역 학교 내 숲, 재난 복구 숲 조성 등에 쓰일 예정이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2015년부터 나무 16만 그루를 심은 환경재단도 올해 울진, 삼척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한 나무 심기 사업에 돌입했다. 재단은 반복되는 기후재난 종식을 목표로 ‘숲에 새가 다시 날아들 때까지’ 나무 심기를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경북 경산시자원봉사센터는 참여자들이 가정과 직장에서 도토리 싹을 틔워 묘목까지 기른 뒤 피해 지역에 옮겨 심는 ‘도토Re:숲으로’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최근 대규모 산불 이후 숲의 소중함과 산불의 위험성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며 “푸른 숲을 되살리기 위해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산불 잦은 미국-호주 “짧은 시간내 넓게”… 드론 띄워 파종


국내외 산불피해 복원 이색 아이디어
스타 이름 딴 ‘BTS숲’ ‘샤이니숲’ 등
13개국 262개 숲 만든 스타트업도
산림청은 메타버스서 나무심기 행사


미국 스타트업 ‘드론 시드’ 직원들이 산불 피해 지역 파종에 쓰이는 드론을 옮기는 모습. 이 회사의 소개에 따르면 이 드론은 대당 26kg의 종자나 씨앗 등을 싣고 날 수 있다. 드론 시드 홈페이지 화면 캡처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대형 산불이 세계적으로 빈번해지면서 해외에서도 산림을 복원하려는 여러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산불이 잦고 피해 규모도 작지 않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호주 등에서는 드론을 활용해 산불 피해 지역에 씨를 뿌리는 방식이 각광받고 있다. 하늘을 나는 드론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넓은 지역에 씨를 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호주 스타트업인 ‘에어 시드 테크놀로지스’는 인공지능(AI)이 탑재된 드론을 날려 땅으로 종자를 투하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토양 샘플을 분석해 피해 지역에 적합한 흙과 종자를 섞어 공 형태의 덩어리를 만들고, 드론이 이를 투하하는 방식이다. 호주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실제 이 방식으로 종자를 심었다고 한다.

2014년부터 호주 일대에서 산림 복원을 해 온 스타트업 ‘덴드라 시스템’도 드론을 이용해 산불 피해를 입은 가파른 산에 종자를 뿌리고 있다. 마찬가지로 종자와 비료 등이 섞인 공 형태의 덩어리를 드론이 투하하는 방식이다. 미국 시애틀에 본사를 둔 ‘드론 시드’ 역시 캘리포니아주, 오리건주, 캐나다 등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스타트업 ‘코드오브네이처’는 이끼를 뿌려 산림 복구를 돕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끼 포자를 증식시킨 뒤 키트 형태로 산림에 뿌려 피해를 입은 토양의 회복 속도를 빠르게 하는 기술이다.

스타트업 ‘트리플래닛’은 2011년부터 캠페인을 통해 13개국에 262개 숲을 조성해 86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이들은 팬들로부터 기부를 받아 ‘BTS 숲’ ‘샤이니 숲’ 등 스타의 이름을 딴 숲을 조성했다.

산림청은 올 3월 ‘메타버스’(디지털 가상 세계)에 나무가 한 그루 심어지면 산불지역에 실제 나무 두 그루를 심는 캠페인을 벌였다. 참가자가 메타버스 플랫폼 ‘세컨블록’에 만들어진 가상의 숲에 가상의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 플랫폼 운영사가 산불 피해 지역에 실제 나무를 심는 비용을 지원했다.

강릉=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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