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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들 "몰카 두려워 탐지기 구입.. 택배는 남자 이름으로 받아"

특별취재팀 입력 2022. 05. 14. 03:05 수정 2022. 05. 14.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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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젠더 리포트] "언제든 당할 수 있다" 성범죄 무서운 2030女

제품 리뷰 유튜버 김모(28)씨는 가방에 늘 호신용 스프레이를 넣고 다닌다. 아직 사용한 적은 없지만, 들고 다니면 안심이 된다. 성범죄는 ‘일상의 공포’이기 때문이다. 2016년엔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나더니, 대학교 땐 단톡방에서 여학생을 성희롱하는 사건이 줄줄이 터졌다. 밤 늦게 버스를 기다릴 때 남자들이 와서 말 거는 것도, 혼자 택시를 타는 것도 무섭다. 그는 “돈을 더 주더라도 보안이 잘되는 곳에 살고 싶어서 일반 원룸이 아닌 아파텔(주거용 오피스텔)을 월세 120만원이나 주고 얻었다”고 했다.

성범죄 대상이 될까 봐 불안하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일상에서 성범죄 공포를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선일보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16세 이상 남녀 178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한민국 젠더 의식’ 조사에서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불안하다’고 답한 여성들은 10명 중 6명(59.4%)으로, 남성(14.5%)의 4배에 달했다. 20~30대 여성은 10명 중 7명이나 됐다. 20~30대 여성들의 60% 이상은 ‘집에 혼자 있을 때도 범죄를 당할까봐 불안하다’고 했다. 서울에서 4년째 혼자 사는 회사원 이모(24)씨는 “스토킹하던 여성 집을 찾아가 엄마·여동생과 함께 살해한 ‘노원구 세 모녀 사건’을 보고 너무 무서워서 택배도 ‘곽두팔’ ‘강태수’ 같은 남자 이름으로 받는다”고 했다.

불법 촬영, 영상물 유포·협박 등 디지털 성범죄 불안도 컸다. 본지 조사에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 대상이 될까 두렵다’는 20·30대 여성은 10명 중 6명(60.3%, 64.0%)꼴로, 전 세대에서 가장 높았다. 실제 검찰에 접수된 디지털 성범죄는 2016년 1만3566건에서 2020년 1만6866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산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상담 인원도 2020년 4973명에서 2021년 6952명으로 1년 새 40% 급증했다.

대학생 A씨(21)는 지난해 SNS로 “쇼핑몰 모델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쪽지를 받고 한 남성을 만나 계약서를 썼다. 가해자는 A씨에게 노출이 심한 옷을 입혀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을 되팔았다. 자기 사진이 인터넷에 떠돈다는 소식을 들은 A씨에겐 지옥 같은 삶이 시작됐다. 학교도 휴학하고 집 밖에도 못 나간 채 혼자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을 삭제하다 서울시 디지털성범죄 안심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삭제해도 끊임없이 올라오는 사진을 보며 “죽어서도 이 상황이 계속될 것 같다”고 호소했다.

젠더 갈등 기폭제 된 '강남역 살인사건' - 2016년 서울 강남역 인근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조현병을 앓던 남성 김모(40)씨가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 여성들의 범죄 불안감이 극대화되면서 젠더 갈등의 기폭제가 됐다. 사진은 당시 시민들이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글을 남긴 모습. /연합뉴스

몰래카메라 탐지 업체에 의뢰해 집 안을 점검하거나, 카드 모양 몰카 탐지 기구를 구입해 들고 다니는 여성들도 늘고 있다. 몰카 탐지 업체인 프로정보통신 이정직 대표는 “개인 의뢰자 80%가 여성”이라며, “최근 점검한 30대 여성 집에선 TV 옆에서 공유기 모양 카메라가 발견됐는데 촬영에 도청까지 되는 기구였다. ‘의심되는 사람 없냐’고 물었더니 ‘남자 친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여성들의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2019년 30만~40만원짜리 몰래카메라 탐지기 1550대를 구입해 자치구, 산하기관, 숙박업소 등에 배포해 주기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관악구는 몰카 탐지기를 대여해 주는데, 혼자 사는 여성들이 주 이용자로, 연간 100~200건씩 이용한다.

일각에선 “여성들의 범죄 공포가 과장됐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가 외국에 비해 치안이 안전한 편인데 여성들 불안감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정숙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범죄분석조사연구실장은 “피해자의 90%가 여성이라 불안해 할 수 있고 또 한국은 인구 밀도가 높아 주변 범죄에 대한 민감도도 높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여성들의 범죄 불안이 실제보다 과도한 것은 그들이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온라인에 넘쳐나는 성폭력적 콘텐츠 때문”이라면서 “랜덤채팅앱 하나만 깔아도 ‘성을 사고 팔자’고 유인하는 등 여기저기 떠다니는 성적 영상들이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특별취재팀〉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김연주 사회정책부 차장, 변희원 산업부 차장, 김경필 정치부 기자, 유종헌 사회부 기자, 유재인 사회부 기자, 윤상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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