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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한 단도 50km 새벽 배송.. 구리 농수산시장 '터줏대감' [방방곡곡 노포기행]

이종구 입력 2022. 05. 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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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농수산물시장 도매상 정정중 대표]
거농→억대 빚→폐업→암투병→매출 100억
"농부의 마음으로 일하고 신뢰가 성공 낳는다"
 구리도매시장 '원년 멤버' 도매상의 인생 역정
정정중 정중한 에프앤비 대표가 11일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 내 자신의 도매점 입구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다 잠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은 경기도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면적은 18만여㎡로 축구장 25개를 합친 것보다 넓다. 하루 팔리는 농수산물은 2,389톤에 이른다. 전국 32개 도매시장 가운데 네 번째로 큰 시장이다. 시장에 자리 잡은 530개의 도매상에서 3,000여 명의 직원이 일한다. 19만 구리 시민은 물론 제철 농산물을 찾는 전국의 소비자들이 단연 첫손에 꼽는 곳이다.

10일 시장을 찾았다. 정문을 지나 ‘청과동’ 건물 귀퉁이를 돌아서니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점포가 시선을 끌었다. ‘정중한 에프앤비’(정중한)라는 간판을 건 33㎡남짓 크기의 농산물 도매상이다. 안에는 산지에서 갓 올라온 20㎏짜리 감자박스 100여 개가 쌓여 있었다. 낡은 에어컨 한 대와 간이 테이블만 덩그러니 놓여 휑한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가게의 '내공'은 남달랐다. ‘정중한’은 구리시장의 ‘1세대 도매상’이다. 정정중(51) 대표가 1997년 6월 시장이 개장할 당시 3번째로 입점해 올해로 25년째 한자리를 지켜온 '원년 멤버'다. 수많은 점포가 문을 열고 닫는 와중에도 묵묵히 그 자리에서 존재감을 뽐내온 몇 안 되는 터줏대감이다.


강원도의 청년 농부, 유통업에 뛰어들다

11일 정정중 정중한 에프앤비 대표가 배추를 어깨에 메고 배송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배우한 기자

정 대표는 강원도 홍천 거농(巨農)의 셋째 아들이었다. 93년 전역해 7만㎡에 달하는 밭에서 부친의 감자농사를 도우며 남부럽지 않은 청년 농부로 사는가 싶었다.

96년 9월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일생을 바꿨다. 그는 “일꾼 상당수가 한 달 넘게 이어진 소탕작전에 동원돼 수확을 제때 하지 못했다”며 “공포감에 관광객까지 뚝 끊겨 노지 판매량까지 곤두박질치면서 그해 감자 농사를 망쳤다”고 말했다. 유복하던 가족은 순식간에 억대 빚더미에 앉았다.

정 대표는 “참담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동네 주민이 “새로 개장하는 구리도매시장에서 농산물 유통업을 하는 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반전의 기회였다. 밭일을 도와주는 주민들에게 품삯을 넉넉하게 쳐주며 인심을 잃지 않았던 덕분이었다.

농사라면 자신 있었다. 큰형, 작은형과 도매상 '금강농산'을 열었다. 자본금은 은행 대출 5,000만 원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자신있었다. 좋은 농산물을 고르고 판매해본 경험을 믿었기에 성공을 자신했다.

발품을 파는 '무대포' 정신으로 판로를 넓혀갔다. 수년간 농사로 체득한 ‘매의 눈’으로 최고 품질의 감자를 확보해 전국 곳곳의 고속도로 휴게소를 두드렸다. 휴게소 인기 간식 알 감자와 감자튀김 판매점을 찾아가 알이 굵고 단단한 최고 품질의 감자를 선보이며 “더 싸게 공급하겠다”고 설득했다.

박리다매 전략으로 3년을 하루도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거래처가 100여 곳으로 늘었다. 감자를 넘어 배추, 양파 등 100여 개로 품목이 다양해졌다. 그는 “하루 15시간씩 일만 했다”며 “새벽 경매가 끝나면 20㎏ 감자 5박스를 들고 뛰어다녔더니 주변에서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을 붙여 줬다”고 웃었다.

2002년 연 매출 50억 원을 넘어섰다. 구리도매시장에 입성한 지 5년 만이다. 그해 570개 중도매상 가운데 매출 3위로 올라섰다. 삼형제가 전부였던 직원은 80여 명으로 늘었다. 그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성공을 일궜다.


구리도매시장 '큰손'으로 우뚝

지게차로 각종 농산물 박스를 옮기고 있는 정정중 정중한 대표. 배우한 기자

2008년 ‘정중한 에프앤비’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한자 '정중(正中)'에는 바르게 생각하고 치우치지 않겠다는 각오가 담겼다. 33㎡ 매장에서 시작해 현재 저온창고(520㎡), 공산품저장창고(660㎡) 등을 갖춘 대표 농산물·식품 종합 중도매상으로 자리매김했다.

‘농부의 마음으로 일하고 신뢰가 성공을 낳는다.’ 25년을 올곧이 지켜온 경영원칙이다. 정 대표는 식품 대기업에 하루 15톤의 농산물을 납품하는데, 단 1㎏이라도 불만을 제기하면 당일 바로 새 상품을 직접 들고가 문제를 해결했다. 농부의 마음을 담아 ‘내 물건은 끝까지 책임진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파 한 단, 양파 한 망 등 소량 배달도 흔쾌히 응했다. 약속을 행동으로 실천하니 신뢰가 쌓이고 거래처는 급속히 불어났다.

일부 농산물은 경매가 아닌 산지에서 직접 충당한다. 농민들과 상생하려는 바람이 담겼다. 그는 “다른 도매상에 비해 10%씩 더 값을 쳐주면서 장기간 수매 계약을 맺었더니 농민 모두 만족해했다”며 “작물 수급과 납품 체계가 단단하게 자리를 잡으면서 사세를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진정성에 농민들이 화답했다. 작황이 좋지 않아 품귀현상을 빚는 작물도 웃돈 없이 공급할 정도로 서로 믿는 관계가 됐다. 돈이 더 들더라도 좋은 농산물만 받아 공급한다는 원칙이 결실을 맺은 셈이다.


“감자밭 침수피해로 쫄딱 망해”...암 극복 후 달라진 인생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 전경 모습. 구리시 제공

그렇다고 고비가 없던 건 아니다. 2003년 경남 밀양의 10만㎡ 규모 감자밭을 이른바 '밭떼기'로 사들였다가 사달이 났다. 장마가 길어지면서 낙동강 하구에 위치한 밭이 물에 잠겨 출하를 앞둔 감자 수백 톤이 상했다. 정 대표는 “유통이 막히면서 피해가 15억 원으로 불었다”고 말했다.

위기는 또 찾아왔다. 민원에 직격탄을 맞아 경기 남양주의 감자 가공공장 문을 닫았다. 삼형제는 도매상을 접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결국 두 형은 손을 떼고 정 대표 홀로 도매상을 떠안았다. 15억 원이 넘는 빚이 두 어깨를 더 짓눌렀다. 거래처마저 끊겨 자금을 융통할 구멍조차 없었다.

그는 “금전 압박에 시달리다 못해 4개월간 도매상도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소중한 가정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마저 밀려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2살에 위암 판정을 받았다.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정 대표는 당시의 절망적인 상황을 떠올리며 어렵게 말을 이었다.

이번에도 이웃이 재기의 희망을 열어줬다. 그의 성실성을 높이 평가한 지인이 아주대병원 구내식당과 거래선을 연결해줬다. 2,500여 명 직원이 이용하는 곳이다. 하루 납품액이 27만 원에 불과했지만 그에게는 마지막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성실함으로 승부했다. 매일 구리에서 병원이 있는 수원까지 새벽 배송을 했다. 50㎞가 넘는 거리다. 늘 기진맥진해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대파 한 단이라도 보내달라고 하면 군말 없이 다시 차를 몰고 수원으로 향했다. 그는 “많게는 하루에 5번씩 구리와 수원을 오갔다”며 “이런 노력이 통했는지 1년 후에는 주문 품목이 늘어 하루 납품액이 2억 원을 넘을 정도로 커졌다”고 말했다.

25년째 경기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 내 한자리에서 도매상업을 하고 있는 정중한 에프앤비 점포. 이종구 기자

그렇게 고군분투한 결과 도매상은 정상화됐다. 현재 대기업 식품전문업체, 정부 공공기관 등 150곳에 1만2,000여 가지 농산물과 공산품, 냉동가공식품을 납품하고 있다. 연 매출 100억 원을 넘어 시장 내에서 '큰손'으로도 불린다.

암수술도 성공적으로 마쳐 몸 상태를 회복해갔다. 암 투병 이후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고 있다. 그는 “내 인생은 보너스라는 생각으로 더욱 남을 도우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정 대표는 구리에서 봉사자로 정평이 나있다. 10년 전부터 수시로 경로당을 찾아 쌀포대를 전달하거나, 어버이날이면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아치울마을의 카페로 노인 200~300명을 초청해 삼계탕을 대접하고 있다. 이 카페엔 별도의 문화공간을 만들어 젊은 작가의 전시공간으로 내주고 있다. 비정부기구인(NGO) 보호종료아동지원 서포터즈 이룸의 활동가로, 매달 신선한 재료를 들고 청소년 쉼터로 달려가 한 끼 식사를 만들어 준 지도 10년이 넘었다.

누구보다 굴곡진 삶을 살아온 그의 각오는 무엇일까. 정 대표는 “성실하게, 일한 만큼만 대가를 바라며 살아가는 농민의 마음으로 농산물 유통업을 해왔다”고 자부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이익보다는 농민들과 상생, 거래처와의 신뢰를 잃지 않고 가게를 지켜나가겠다”고 소박한 각오를 밝혔다.

정정중 대표가 운영중인 도매상 ‘정중한 에프앤비’의 가공식품 저장창고 모습. 이종구 기자
경기 구리시 인창동의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 위치도,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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