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⑱ 신세기통신 출범..1·2 이통사 민간 '경합' [김문기의 아이씨테크]

김문기 입력 2022. 05. 14. 07:00 수정 2022. 05. 19.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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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제2이동통신사 大戰편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첫발인 한국전기통신공사(KT), 한국데이터통신(LGU+), 한국이동통신서비스(SKT)가 설립된 지 꼬박 4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간 이동통신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 슬로우 무버에서 패스트 팔로우로, 다시 글로벌 퍼스트 무버로 도약했습니다. 5G 시대 정보통신 주도권 싸움은 더 격렬해졌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할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부족하지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동통신 연대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담긴 독자의 제보도 받습니다 [편집자주]

[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선경이 제1이통사 ‘한국이동통신’을 거머쥐자 시장의 관심은 제2이통사로 옮겨갔다.

1994년 1월 26일 유력한 지배주주로 꼽히는 포항제철과 코오롱 수장이 첫 회동을 가졌다. 이날 조말수 포철사장과 이웅열 코오롱그룹 부회장은 코오롱빌딩에서 지배주주가 누가 될지 선의의 경쟁을 벌였다. 물론 이날도 결론은 도출되지 않았다.

1월 29일 제3차 승지원 결의가 이뤄졌으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전경련은 당초 예상한 2월 17일에서 25일로 최종선정을 연기했다. 14~18일까지 합동서류면접심사를 실시하고 2월 25일 회장단 회의를 통해 제2이통사를 최종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쟁구도는 단순화됐다. 8개 기업 중 쌍용, 동부, 건영, 영풍이 포철 컨소시엄에 합류했다. 결과적으로 지배주주에 나선 단체는 포철과 코오롱, 금호로 압축됐다. 다만, 신규 참여사인 금호는 제3이통사 도전을 위한 포석으로 여겨지면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14일 시작된 합동서류면접심사가 예정대로 끝나자 19일 전경련은 포철과 코오롱, 금호 3개사간 자율합의를 통해 주주 구성이 완료되기를 바랐다. 만약 합의가 불발될 경우에는 전경련이 임의결정하겠다고 밝혔으나 기간은 함구했다.

이에 따라 포철과 코오롱은 합의안을 도출하기 위한 실무협의를 진행했다. 21일 저녁 롯데호텔에서 권혁조 신세기통신(포철)과 송대평 제2이동통신시장(코오롱), 전경련 실무팀이 모여 논의를 이어갔으나 진전이 없자 22일 오전 뉴서울호텔에서 조찬회동을 갖기도 했다. 23일 저녁에는 승지원에서 회장단 긴급회의가 열렸다. 이 가운데 23일로 예정된 선정일자가 25일로 자연스럽게 미뤄진 셈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자율적 합의가 어려워짐에 따라 28일로 또 다시 연기됐다.

제2이동통신사 선정 발표날인 28일 오전에도 포철과 코오롱의 신경전은 도무지 끝날 기색이 없었다. 새벽부터 조말수 포철 사장과 이웅열 코오롱 부회장이 담판에 나서기도 했으나 양보 없는 혈전만 나눴다. 지분배정과 공동경영 문제에 관한 이견차가 쉽사리 줄지 않았다.

이같은 갈등에 이건희 삼성 회장뿐만 아니라 회장단 인원이 나서 중재에 안간힘을 썼다. 만약 자율적 합의가 아니라 전경련에 의한 임의결정이 내려진다면 전경련 차원에서도 잇속만을 챙기는 재벌기업 이미지와 위상까지도 흠결이 생길 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의 바람대로 막판 극적으로 합의안이 받아들여졌다. 포철이 15%를 확보한 지배주주로 코오롱이 14%로 뒤를 잇는 최종안이 통과된 것. 기업 자율 합의를 통한 제2이동통신사가 탄생한 날이다. 물론 정치권의 계속된 질책과 금호의 반발, 진통 속 여론의 비난이 있기는 했으나 5년간의 대단원이 막이 내린 날이기도 했다.

신세기통신 설립 이후 큰 인기를 끈 바 있는 TV CF 광고 속 한 장면. "짜짱면 시키신분"이라는 카피는 그 당시 꽤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진=CF]

◆ 한국이동통신 vs 신세기통신…민간 경쟁 시작

선경그룹은 1994년 3월 16일 한국이동통신의 주식 매입금 4천271억2천만원을 납입했다. 주식 매입금은 관계사인 유공과 선경인더스트리, 흥국상사가 나눠 분납했다. 다만, 한국통신이 보유한 한국이동통신 주식 33%에 대한 매각이 유찰되면서 한동안 경영권을 가져올 수 없었다. 이후 같은해 6월 2일 한국이동통신의 주식이 증권시장에 매각됨에 따라 비로소 선경그룹이 한국이동통신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시간이 흘러 7월 7일 선경그룹은 한국이동통신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하고 경영권을 최종적으로 취득했음을 알렸다. 한국이동통신의 대표로 손길승 부회장을 선임했다.

같은달 18일 손 부회장은 취임식을 통해 “민간기업으로의 발전적인 새출발을 위해 민간기업의 활력과 선경그룹 경영의 특징을 한국이동통신에 접목해 한마음 한뜻으로 세계 일류의 종합정보통신 기업이라는 목표를 달성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그 사이 신세기통신도 권혁조 대표이사를 선임하고 법인을 등록하는 등 출범을 위한 사전 작업에 돌입했다. 240여 국내외기업들이 모인 컨소시엄으로 사우스웨스턴벨, 에어터치커뮤니케이션스, 퀄컴 등도 함께 했다.

마침내 6월 30일 창립기념식을 개최하고 신세기통신의 출발을 알렸다. 이 자리는 윤동윤 체신부 장관을 비롯해 최종현 전경련 회장(선경그룹회장), 김만제 포철회장, 이동찬 코오롱그룹 회장 등 관계인사만 750여명이 참석한 대형 행사였다.

자리에 오른 권혁조 사장은 “1996년 1월 디지털 이동통신 방식인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으로 이동전화 서비스를 시작하고 조기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고객만족기술우위 국제화를 3대 경영이념으로 삼고 구현해 가겠다”고 강조했다.

민간 주도의 민간 경쟁을 통해 정보통신의 새출발을 알린 1994년은 5년간의 1차 통신사업 구조개선의 마지막장으로 제2차 통신사업 구조개편을 알린 때이기도 했다.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목차

1편. 삐삐·카폰 이동통신을 깨우다

2편. 1세대 통신(1G)

3편. 제2이동통신사 大戰

/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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