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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셋업 슈트 차림에 트레일화' 등산 싫어도 등산화 신고 싶어

한겨레 입력 2022. 05. 14. 09:16 수정 2022. 05. 1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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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스타일 콕!콕!]스타일·MZ세대 등산화를 신다
홍대·성수동 등 등산화 차림 부쩍 늘어
힙스터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해
기능성에 집중한 미적 디자인으로 인기
로아x아워 레가시 워크숍 협업 안드레아스. 로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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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2호선 남단. 낙성대역에서 신림역까지, 관악산 인근에 분포한 지하철역에서 주말마다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형형색색의 테크웨어로 무장한 등산객들이다. 필자가 5년째 살고 있는 낙성대 지하철역 근처는 겨울이 되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라도 온 듯 형광색 패딩을 입은 등산객들로 붐빈다. 볼 때마다 진기한 광경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나 산을 좋아하는구나 싶어 놀라고, 청룡영화제 시상식을 방불케 하는 중장년층의 과감한 의상 컬러 선택에 또 한번 놀란다.

등산복 없는 등산화도 괜찮아

코로나19 발병 이후 등산로에 새로운 발걸음이 늘었다. 엠제트(MZ)세대다. 한때 등산은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통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갈 곳을 잃은 20대들은 전국 팔도의 등산 코스를 찾았다. 당장 인스타그램에 ‘#관악산’을 검색하면 24만개가 넘는 게시물이 떠오른다. 화려한 색상의 레깅스와 바람막이를 입은 채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들은 ‘등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가 됐다.

이보다 흥미로운 점은 산을 내려와서다. 산은커녕 언덕조차 없는 홍대나 성수동에서도 등산화는 볼 수 있다. 물론 등산화를 신고 있는 사람들이 등산복까지 입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잘 차려입은 셋업 슈트에 검은색 트레일화를 신거나, 나일론 소재의 통이 넓은 바지에 굽이 높은 등산화를 신은 힙스터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산이 아닌 새로 생긴 카페와 맛집을 찾아온 사람들이다.

옷 좀 입는다 하는 이들이 찾는 서울의 편집숍에서는 전부 등산화를 팔고 있다. 명동의 에이트디비전, 홍대의 웍스아웃, 청담동의 비이커와 분더샵, 신사동의 카시나 등이 대표적이다. 등산화는 이제 힙스터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등산용품 브랜드 중에서도 어떤 브랜드들이 인기를 끌고 있고 있을까? 또 이들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살로몬이다. 살로몬은 1947년 프랑수아 살로몬이 프랑스 알프스에서 설립한 브랜드다. 살로몬은 1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 만년설에서 야외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을 위해 장비를 만들었다. 살로몬은 부츠와 스키를 연결하는 장치인 바인딩을 개발했고, 1970년대 들어 한해 100만개 이상의 바인딩을 판매하며 업계 1위로 도약했다. 그리고 1992년 하이킹용 신발을 처음 선보이며 여름 스포츠 용품 시장에도 발을 내디뎠다.

살로몬의 XT-4 . 살로몬 제공

아디다스 산하에 있던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살로몬은 현대적인 실루엣의 신발들을 다수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5년 살로몬에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든다. 2015년 프랑스의 유명 편집숍 브로큰 암은 살로몬을 소개하기로 한다. <보그>의 한 기사에 따르면, 브로큰 암 공동 설립자 기욤 슈타인메츠는 이렇게 말했다. “살로몬의 노력은 기능성에 중점을 둔다. 디자인이 기능에서 비롯되면, 타협 없이 정직하고 급진적인 것을 제시할 수 있다. 이것이 살로몬 제품이 미학적으로 독특하고 강한 개성을 지닌 이유다.”

러닝화보다 가벼운 등산화

이후 알프스산맥을 벗어나 파리 마레지구에서도 주목을 끌기 시작한 살로몬은 다양한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11 바이 보리스 비잔 사베리는 2018 봄, 여름 컬렉션을 통해 살로몬과의 협업 신발을 선보였고, 꼼 데 가르송, 팔라스, 타카히로미야시타 더 솔로이스트와 같은 영향력 있는 브랜드와의 협업을 펼쳤다. 유구한 역사와 기술력을 겸비한 등산화에 이색적인 디자인이 더해지자 살로몬의 인기는 빠르게 치솟았다.

호카 오네 오네 역시 주목할 만하다. 호카 오네 오네는 살로몬에서 근무했던 니콜라 메르무드와 장뤼크 디아르가 설립한 브랜드다. 호카 오네 오네의 가장 큰 장점은 가벼운 착용감이다. ‘마시멜로 미드솔’이라 불리는 밑창은 키높이 신발 못지않게 두툼한 높이를 자랑하지만, 실제로 손으로 들어보면 그 무게가 웬만한 러닝화보다도 가볍다. ‘메타 로커’라고 불리는 곡선 형태의 밑창은 발을 내딛는 순간마다 보행을 편안하게 돕는다. 호카 오네 오네는 탁월한 착용감을 앞세워 마라톤 러너들 사이에서 호평을 얻었다. 이후 세계적인 다자이너인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호카 오네 오네의 트레일화를 신은 모습이 목격되어 화제를 모았고, 국내에서는 옷 잘 입기로 소문난 가수 오혁과 딘이 착용하며 인기를 견인했다.

로아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지방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매슈 윌리엄스는 2019년 자신이 전개하는 1017 알릭스 9SM을 통해 스투시, 로아와의 삼자 협업 부츠를 선보였다. 로아 역시 알프스산맥을 끼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2015년 설립됐다. 비교적 역사가 짧은 편이지만 로아는 다채로운 소재와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패션계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중이다. 참고로 현재 로아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아워 레가시, 어 콜드 월과의 협업 부츠가 판매 중이다.

쓸모 있는 디자인이 아름다움으로

아크테릭스는 버질 아블로가 선택한 브랜드다. 버질 아블로는 오프 화이트 2020 가을, 겨울 컬렉션을 선보이는 자리에서 모델들에게 우아한 드레스와 함께 짧게 커스텀한 아크테릭스 바람막이를 입혔다. 또한 그는 루이비통 2020 가을, 겨울 남성복 컬렉션 런웨이 무대에 직접 파란색 아크테릭스 바람막이를 입고 등장해 많은 눈길을 모았다. 아크테릭스의 베스트셀러는 바람막이 제품이지만, 같은 시조새 로고가 새겨진 등산화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노반 LD 3. 아크테릭스 제공

앞서 언급한 등산화들의 일반 스니커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기능성에 있다. 지금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발은 나이키 에어 포스 1이다. 물론 에어 포스 1도 농구화로 처음 설계된 만큼 에어 솔을 내장하고 있지만, 에어 포스 1이 착용감으로 유명해진 신발은 아니다. 반면 앞서 언급한 브랜드의 신발들은 철저하게 착용감과 내구성에 집중하여 탄생했다. 기욤 슈타인메츠의 말처럼 철저하게 기능성에 집중한 디자인은 미적으로도 저만의 독특한 지점을 차지한다. 인기를 끄는 모든 상품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게 반짝이는 유행일지라도 그것 역시 대중의 암묵적인 합의가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비단 신발 이야기만은 아니다.

주현욱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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