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아이 보는 앞 따로 계산"..위탁가정 "못 참겠다" '한목소리'

신정은 기자 2022. 5. 1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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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위탁 보호율 37% 목표인데..갈 길 먼 가정위탁 제도


1. 아이들과 마트에 갑니다. 반찬 재료부터 과자, 휴지, 치약까지 가족이 함께 쓰는 물건을 사지만 결제는 두 번 나눠서 합니다. 한 번은 우리 가족의 몫, 한 번은 위탁 아동의 몫. 외식비도, 놀이공원 입장료도, 가족여행 숙박비도 마찬가집니다. 아이가 보는 앞에서 "따로 계산해달라"며 영수증을 받는 건 아이에게도 미안한 일이고, 행여나 상처받을까 그냥 합쳐서 계산하기로 합니다.

2. 예원이(가명)는 태어난 직후 친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6년째 위탁 가정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학대 후유증으로 폐소공포증을 앓을 뿐만 아니라 분리불안을 겪어 위탁 엄마와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 합니다. 위탁 엄마는 소심한 성격의 예원이 기를 좀 살려주겠다는 마음으로 국공립어린이집 학부모운영위원회에 지원했는데, 거절당했습니다. 주민등록상 동거인 신분이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사회로 향하는 아이의 첫 관문에서 마주한 차별에 위탁 엄마는 버럭 화를 냈습니다.

두 사례는 모두 위탁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불편하고 부당한 일이죠. 정부는 가정위탁 보호율을 2024년까지 37%로 끌어올리겠다고 말했습니다. 가정위탁보호율은 2013년 이후 쭉 20%대를 유지해오다, 2020년에는 25.9%였습니다. 위탁 부모들은 "이대로 (정부 목표인 가정위탁 보호율) 37% 절대 안 된다. 우리부터 나서 가정 위탁 반대하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아이를 보살피기에도 바쁜 위탁 부모들 입에서 어쩌다 이런 말까지 나오게 된 걸까요? 제가 직접 만나고, 또 화상 인터뷰로 만난 위탁 가정의 이야기를 [취재파일]로 전합니다.

위탁 반대하겠다는 위탁 부모들…이유 귀 기울이면


친부모의 학대나 가난, 이혼, 사망, 질병 등 여러 사정으로 보호가 필요한 경우 아이들은 위탁 가정에 보내집니다. 특히 학대 피해를 입은 아이들의 경우 공격적인 성향을 띄거나 분리불안, 대인기피 등을 동반해 일반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과 돌봄이 필요합니다. 전문 위탁 기간은 6개월, 일반 위탁 기간은 평균 6년 8개월. 어른들 때문에 다친 아이들이 다신 아프지 않게, 위탁 가정은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 줍니다.


그렇지만 위탁 가정이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일단 사람들이 가정 위탁에 대해 무관심하고, 편견 어린 시선을 줍니다. "위탁 가정에서 학대 사건이 있었다"는 소식이 이따금 전해지면, 자칫 위탁 가정 모두의 문제로 비칠까 두렵습니다. 최근 한 입양 전 위탁 가정( ※ 일반, 전문 위탁 가정과 다릅니다)에서 13개월 남아가 숨진 일도 있었죠. 학대 가해자가 위탁 부모라는 게 기사에서 부각됐습니다. "남의 자식이라 때렸네" "위탁 가정에 돈 주지 맙시다" 등 댓글도 달렸습니다. 이런 일이 거듭될수록 '멀쩡한' 위탁 가정은 점점 작아집니다. 잠재적인 범죄자처럼 여기는 시선도 종종 느낀답니다. 아이가 사회 구성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자연스러운 훈육도 위축될 때가 있습니다.

위탁 가정에서 학대는 자주 있는 일일까요? 아닙니다. 2020년 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총 3만 905건의 아동 학대가 일어났습니다. 위탁 부모의 학대는 20건에 불과합니다. 0.1%도 채 안 됩니다. 학대 가해자의 82.1%는 친부모였고, 친인척은 5.4%, 타인은 1.8%였습니다. "남의 자식이라 때렸네"라며 위탁 가정을 싸잡아 비난하기엔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혈연으로부터 학대를 당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다친 아이들을 한 가족처럼 품는 게 위탁 가정입니다. 2020년 기준 보호 대상 아동 4,120명 중 1,068명이 위탁 가정에서 보호를 받았습니다. 나머지 아이들은 쉼터나 일시 보호 시설 등으로 보내집니다.

※ 가정 위탁이란?
보호 대상 아동들에게 일정 기간 위탁 가정을 제공해 보호하는 것. 친가정 복귀를 목표로 주민등록상 주소지만 이전해 일정 기간 아동복지법이 정한 기준에 맞는 위탁 가정에서 생활. 올해 학대 피해 아동이나 2세 이하 등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담당하는 전문 가정위탁 사업도 신설됨.

"돌봄 노동자식 접근 안 돼…공공 육아의 파트너로 봐야"


위탁 가정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돈 주냐'는 겁니다. 무례할 뿐만 아니라, 위탁 가정의 사정을 모르는 소리입니다. 대부분의 위탁 가정이 가계비 추가 지출을 부담합니다. 내 손을 떠날 때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아이가 행여나 밖에서 홀대받지 않도록, 더 큰 사랑으로 보듬어주려고 애써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위탁 부모들은 말합니다. 보호 아동의 기초생활수급비와 양육 지원금, 주거 급여, (전문 위탁의 경우) 아동 보호비 등이 주어지지만 '돈 주니까 하는 일'이 될 순 없습니다. 아이를 24시간 돌보는 일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찰뿐더러 기초생활수급비는 보호 아동이 원래 받아야 하는 돈이고, 양육 지원금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정부는 양육 지원금으로 월 30만 원에서 월 50만 원까지 연령별 차등 지급을 권고하지만 실제 지원은 월 20만 원 선입니다. 일부 지역에선 수급비 증빙을 위해 6개월마다 영수증을 모아 제출하도록 합니다.


위탁 부모들은 "영수증 모으는 게 귀찮고 불편하다" 식의 단순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가장 답답한 건 위탁 가정의 진심과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을 관계 기관이 몰라주는 겁니다. 진정 짚어야 할 문제는 '국가가 위탁 가정을 대하는 태도'라고 말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수급비 관리 체계는 행정 편의를 위한 것일 뿐, 위탁 가정에 불필요한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현행 제도는 위탁 가정을 믿고 지지하기보다 소진시키는 구조라는 겁니다. 국가가 돌봄 노동자로 위탁 가정을 볼 것인지, 또는 사회적 돌봄을 실천하는 공공 육아의 파트너로 위탁 가정을 삼을 것인지 입장이 분명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위탁 가정은 당연히 후자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위탁 가정에 대한 관계 기관의 아쉬운 접근은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보호 아동의 분리부터 복귀까지 현장에서 위탁 가정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가정 위탁의 목표는 원가정 복귀입니다. 하지만 아이의 회복 수준과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적절한 시기에 복귀가 이뤄져야 할 겁니다. 아동의 분리와 원가정 복귀를 결정하는 사례결정심의위원회에 위탁 가정은 참여하지 않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김은숙 씨는 최근 전문위탁가정으로 아이를 돌보다 갑작스럽게 원가정 복귀 통보가 내려졌다고 합니다. 김 씨는 아이가 한창 말문이 트일 시기라 당장 생활환경을 바꾸는 게 좋지 못할 수 있다고 의견을 피력했지만, 이미 급하게 통보 받은 복귀일보다 2주 가량 더 앞당겨졌다고 말합니다. 사흘 만에 부랴부랴 짐을 싸 아이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습니다.

다른 위탁 부모는 센터로부터 "주변에 위탁 가정할 분들을 좀 찾아 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접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가정 위탁 제도의 활성화는 공적 책임의 영역인데 기존 위탁 가정이 겪는 고충이 채 해소되기도 전에 주변을 포섭하는 역할까지 떠넘겼다는 겁니다. 또 다른 위탁 부모는 소속 구청과 주민센터가 제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탓에 직접 찾아보고, 설명하고, 지원을 요청해야 했습니다. 위탁 부모들은 아이를 맡은 후 마주할 현실이 이 정도일 줄 전혀 몰랐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몰랐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던 겁니다. 위탁 부모들에게 가정 위탁을 주변에 추천하겠냐고 물었더니 "아이만 생각하면 O, 제도만 생각하면 X"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대론 안 된다. 우리부터 나서 가정 위탁 반대하겠다"는 말까지 나온 겁니다.

위탁 선진국은 어떨까? "보호 아동과 위탁 가정을 중심으로"


보통의 가정과 가장 비슷한 환경에서 아이를 보살핀다는 점에서, 위탁 가정은 더 늘어야 한다는 게 중론입니다. 국내 가정 위탁의 역사도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언론은 주로 자격, 심사, 관리 문제에 주목하지만,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관리·감독의 범위 안에 정착한 위탁 가정들의 목소리는 쉽게 묻힙니다. 이미 잘하고 있는 위탁 가정도 제도 개선이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는데요, 그렇다면 가정 위탁을 앞서 시작하고 또 활성화되어 있는 미국 등 선진국에선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요.

미국 LA 한인가정상담소에서 가정 위탁 슈퍼바이저를 하고 있는 사회복지사 김은진 씨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가정위탁 보호율이 70%가 넘는 미국은 위탁의 역사가 깊습니다. 위탁 가정이 되려면 복잡한 절차와 엄격한 심사를 거치지만, 가정 위탁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되어 있고 편견도 덜하다고 말합니다. 김 씨는 "미국엔 보육원이 없다. 기본적으로 일반 가정에서 아이가 보살핌받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좋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수급비 등 예산 관리에 대해선 "(위탁 가정이 쓴) 영수증을 검사하지 않는다. 대신 매주 아이들을 방문 면담하고 아이의 상태를 점검하면서 그 기본금이 아이들에게 잘 쓰이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등에선 돌봄 부담을 덜기 위해 가정부 파견 서비스나 하루 중 몇 시간 보육 인력을 제공하는 '데이케어', 위탁 가정 심리상담 등을 지원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취재파일]을 마치며…"아이들은 참 환했습니다"



SBS 보도국 시민사회팀은 5월 한 달 동안 어른들 때문에 다친 아이들이 '다신 아프지 않게' 기획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이번 주 위탁 가정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화상 간담회를 열기도 하고, 서울, 경기, 울산의 위탁 가정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는데요, 확실한 건 제가 만난 아이들이 정말 환하고 예뻤다는 겁니다. '엄마!' 하고 외치거나 카메라 앞을 '쉭쉭' 지나가며 취재를 방해(?)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넘치는 에너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아이들은 따뜻한 가정의 품 안에서 밝아지고, 또 회복하고 있었습니다. 학대 당한 아이들이 사라져, 위탁 가정도 그만큼 줄어든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요원합니다. 죄 없는 아이들과, 또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 더 지치지 않도록 관계 당국은 위탁 가정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주길 바랍니다.

신정은 기자silve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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