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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침공] 반려견과 걸어서 225km..61세 남성 마리우폴 탈출기

신창용 입력 2022. 05. 14.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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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침공이 두 달째 이어지던 4월 20일, 61세 우크라이나인 이고르 페딘은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에 살던 그는 이날 러시아 군인들이 집마다 돌아다니며 민간인에게 무차별 발포하는 걸 봤기 때문이다.

페딘이 마리우폴에서 왔다고 말하자 트럭 운전사는 그를 태워서 2시간을 달려 우크라이나 국기가 보이는 곳에 내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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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 감시 속 천신만고 끝에 며칠 만에 자포리자 도착
검문소 억류·도주 반복.."부랑자로 보였을 것..운이 좋았다"
마리우폴에서 자포리자까지 걸어서 탈출한 61세 우크라이나인 이고르 페딘 [가디언 공식 트위터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러시아의 침공이 두 달째 이어지던 4월 20일, 61세 우크라이나인 이고르 페딘은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에 살던 그는 이날 러시아 군인들이 집마다 돌아다니며 민간인에게 무차별 발포하는 걸 봤기 때문이다.

겁에 질린 그는 생필품만 챙겨서 손수레를 채운 뒤 4월 23일 오전 6시에 9살짜리 반려견 '주주'와 함께 길을 나섰다.

영국 일간 가디언이 13일(현지시간) 1면 머리기사로 소개한 페딘의 탈출기는 전쟁의 참상과 그 속에서 피어난 기적을 동시에 담고 있다.

과거 선박 요리사였던 페딘은 마리우폴에서 며칠에 걸쳐 약 225㎞를 걸어간 끝에 우크라이나군이 통제하는 자포리자에 도착했다.

가까스로 러시아군의 감시를 피해가며 전쟁 한복판을 두발로 통과한 것이다.

러시아군이 포위한 마리우폴을 벗어나기부터 쉽지 않았다. 도로는 폭발로 인해 패여 있었고, 길에는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지뢰도 피해야 했다.

포격 소리가 귀를 때리고, 장갑차가 지나갈 때마다 진동을 온몸으로 느끼며 페딘은 러시아군의 총부리를 피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나는 더럽고, 먼지투성이였다. 러시아군은 나를 부랑자 취급했다"며 "마침내 마리우폴에서 벗어났을 때 나는 뒤돌아서서 작별 인사를 했다.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마리우폴에서 자포리자까지 거리를 나타낸 지도 [구글 지도 화면 캡처]

그는 첫날 집에서 20㎞ 떨어진 니콜스크 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전쟁통에 16세 아들을 잃은 아버지를 만났다.

페딘은 15년 전 술을 끊었지만, 아들을 잃은 슬픔을 보드카로 달래고자 하는 이 남성과는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소파에서 하룻밤을 보낸 그는 다음 달 오전 6시에 다시 여정을 재개했다. 체첸군 검문소가 기다리고 있었다.

페딘은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에 위궤양을 앓고 있어 치료를 위해 자포리자에 가는 길이라고 둘러댔다.

페딘은 자포리자에 도착하기까지 수많은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다. 군인들에게 어딘가로 끌려가기도 하고,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새벽에 잠자는 군인들 사이를 살금살금 발뒤꿈치를 들고 걸어서 간신히 빠져나오기도 했다.

지칠 때쯤 최대 장애물이 나타났다. 통과해야 할 다리가 파괴된 것이다.

자칫 발을 잘못 디뎠다가는 30m 아래로 떨어질 위험이 있었지만, 그는 반려견을 몸에 매달고 조심조심 한발씩 내디뎌 다리를 건넜다.

다음 검문소에 도착하자 군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페딘의 대담함에 군인들이 몰려들기도 했다고 한다.

다음날에는 언덕 2개를 넘어야 했다. 힘이 빠진 강아지를 품에 안고 간신히 고비를 넘겼다.

언덕을 지나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행운이 찾아왔다. 트럭이 나타난 것이다.

페딘이 마리우폴에서 왔다고 말하자 트럭 운전사는 그를 태워서 2시간을 달려 우크라이나 국기가 보이는 곳에 내려줬다.

바로 자포리자였다. 페딘은 트럭 운전사가 1천 흐리우냐(약 5만원)를 주며 행운을 기원했다고 전했다.

페딘이 자포리자 피란민 텐트에 들어서자 한 여성 자원봉사자는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페딘이 "마리우폴"이라고 답하자 그 여성 자원봉사자는 텐트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이 남자가 마리우폴에서 걸어서 여기까지 왔어요"라고 외쳤다.

페딘은 "순간 모두가 멈췄다.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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