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나면 버드나무잎 우려 먹어라"..'제로백신' 北 웃픈 방역

우수진 2022. 5. 1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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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4일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방역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보강하기 위한 정치국 협의회를 진행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13일 하루 17만4000여명의 발열 환자가 발생했으며 21명이 사망했다고 14일 관영매체를 통해 전했다. 전날 밝힌 1일 확진자 수(1만 8000여명)의 10배 가까운 급증이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1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방역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보강하기 위해 정치국 협의회를 열었다. 북한 방역 컨트롤타워인 국가비상방역사령부는 이날 협의회에서 "5월 13일 전국적으로 17만 4440여명의 발열환자가 발생했고 8만 1430여명이 완치됐으며 21명이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북한 당국이 밝힌 13일까지 총 발열 환자 수는 52만 4440여명이다. 그중에서 24만 3630여명이 완치됐고 28만 810여명이 치료받고 있다. 누적 사망자 수는 27명이다.

이런 추세라면 발열 환자나 확진자 수의 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감염력이 특히 강한 오미크론의 특성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오미크론 변이 대유행으로 인해 2월 초 2만 명대를 기록하던 하루 확진자 수가 62만1180명(3월 17일 기준)까지 폭증했다. 특히 코로나19 백신 접종자가 거의 없는 '제로 백신' 상황인 북한에서는 전파력이 더 심각할 수 있다.

김정은도 이날 협의회에서 "악성 전염병의 전파가 건국 이래의 대동란이라고 말할 수 있다"며 경각심을 드러냈다.

다만 그러면서도 "당과 인민의 일심단결에 기초한 강한 조직력과 통제력을 유지하고 방역 투쟁을 강화해 나간다면 얼마든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체적 역량으로 상황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셈이다.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국가방역체계를 '최대비상방역체계'로 전환하면서 전국의 모든 도·시·군을 봉쇄하는 조치를 취했다. 노동신문, 뉴스1

하지만 북한의 이런 의지도 곧 한계에 부딪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은 이날 협의회에서 약품의 수송과 공급에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해 신속히 주민들에게 의약품을 보급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오미크론을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물자가 확보됐을 지는 의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대북 지원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이럴 경우 김정은의 우선적 선택지는 중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선진적인 방역성과와 경험을 배워야 한다는 김정은의 언급에 주목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주민들의 공포심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경우 민심을 안정시키는 차원에서 신속하게 외부의 지원을 받으려는 시도를 할 것으로 예측된다"며 "상황의 급박성을 고려해 그동안 효능에 의문을 표시해 왔던 중국산 백신 지원도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오미크론 확산을 계기로 그간 코로나19 대처 과정에서 무너진 북한 보건·의료체계의 실태도 드러났다. 국가비상방역사령부는 이날 회의에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도 보고했다. 그러면서 "대부분 과학적인 치료방법을 잘 알지 못해 비롯된 과실"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이는 증상이 있는 주민들이 자구책으로 장마당이나 상점에서 치료에 필요한 약품을 구입하면서 의료진의 제대로 된 복약 지도를 받지 못해 약물을 오남용한 탓으로 보인다. 이는 중앙정부의 보건 및 방역 역량이 지역 말단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국영 의료체계가 흔들리면서 등장한 비공식 의료서비스의 문제점이 노출된 것이다.

북한의 열악한 보건·의료 상황은 이날 발열환자 치료법을 안내한 노동신문 보도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신문은 경증 발열환자를 치료하는 방법 중 하나로 민간요법을 소개하면서 "금은화를 한번에 3~4g씩 또는 버드나무 잎을 한 번에 4~5g씩 더운 물에 우려서 하루에 3번 먹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구강 위생을 지키기 위해서는 "소금물로 자주 함수(입 헹구기)를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상황은 북한 당국이 백신이나 치료제는 물론 진단키트, 마스크, 손소독제, 구강청결제 같은 기본적인 방역 물품조차 충분히 구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도 이어진다.

정유석 IBK경제연구소 북한경제팀 연구위원은 "코로나19 차단을 위해 국경을 봉쇄한 이후 의약품은 물론 위생에 필요한 소비재의 수입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라며 "윤석열 대통령도 대북 인도 지원 방침을 밝힌 만큼 백신을 포함한 방역물품을 신속하게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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