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가 두자릿수 증가율 자랑하던 수출 실적..중량 기준으로는 역성장

세종=전준범 기자 2022. 5. 15. 06: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올 1분기 수출액 전년比 18.3% 급증
수출 중량은 3.9% 늘어나는데 그쳐
팬데믹 전과 비교하면 중량 역성장
전문가들 "유가·환율 올라 성과 착시"
尹 "실물경제 둔화..상황 인식해야"
부산항 신선대부두에 컨테이너가 쌓여있다. / 연합뉴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 속에서 사상 최대 수출 실적을 올린 건 우리 제조업이 가진 세계적인 경쟁력 덕분이었습니다.
5월 9일 퇴임 연설에서, 문재인 전(前) 대통령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실패와 기업 옥죄기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임기 내내 수출 실적 홍보에 열을 올렸다. 문 정부의 수출 경쟁력 자랑은 공급망 차질과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긴축 행보 등으로 각종 경제 지표가 망가진 임기 말로 갈수록 두드러졌다. 수입 물가 급등으로 무역수지 누적 적자가 100억달러(5월 10일 기준)에 접근한 순간에도 “다른 나라보다는 양호한 편”이라며 한국의 수출 체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수출 실적을 달러 환산 금액 기준이 아니라 ‘중량’ 기준으로 측량해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올해 1분기(1~3월)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8% 이상 급증한 데 반해 수출 중량은 4%가량 늘어나는데 그쳤다. 국제유가와 환율이 치솟으면서 수출의 수치 성과를 돋보이게 했을 뿐 실제로 해외에 판 물량은 제자리걸음 상태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량 기준 수출 실적은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측정하는 지표다. 수출 중량 증가율 둔화는 GDP 성장률에 대한 순수출의 기여도가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수치 성과에만 취해 있기에는 우리나라 수출 경쟁력의 현실과 시장을 둘러싼 대외 여건이 녹록지 않다며 새 정부가 고부가가치 수출 품목 발굴과 수출 기업 지원·육성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광주 광산구 GGM 공장 야적장에 자동차들이 주차돼 있다. / 연합뉴스

◇ 수출 실적 중량으로 보면 팬데믹 회복 못해

15일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소비재·원자재·자본재를 모두 합친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1732억달러로, 1464억달러를 기록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8.3% 증가했다. 1732억달러는 작년 1분기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이던 2017년 1분기(1321억달러)나 코로나19 사태 초반이던 2020년 1분기(1302억달러)와 비교해도 크게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같은 실적을 중량 기준으로 보면 온도 차가 뚜렷하다. 올해 1분기 우리나라 수출 중량은 총 4669만톤(t)이다. 4492만t으로 집계된 작년 1분기보다는 소폭 늘었으나, 증가율은 3.9%로 금액 증가율(18.3%)과 큰 격차를 보인다. 그나마 작년과 비교하면 늘긴 했다. 비교 대상을 2019년(4939만t), 2018년(4869만t) 등 팬데믹 이전 연도 1분기로 바꾸면 올해 수출 중량은 예년보다 쪼그라들었다.

수출 중량은 뒷걸음질치는데 수출액만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통 고부가가치 품목을 많이 판 덕에 적게 수출하고도 많은 돈을 벌었거나, 유가·환율 급등의 영향을 받았거나, 둘 중 하나가 이유”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수출의 상황은 후자에 해당한다고 했다. 한 통상 전문가는 “팬데믹에 전 세계가 힘들었는데 고부가가치 품목 수출이 갑자기 늘었을 리 없다. 글로벌 공급 네트워크가 고도화하고 수입 중간재 비중이 높아져 수출 부가가치 자체도 예전만 못하다”며 “국제유가 상승과 고환율 등에 따른 수출액 착시 효과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인 분석”이라고 했다.

그래픽=손민균

◇ 尹 대통령 “경제 상황 정확하게 인식해야”

새 정부도 우리나라 수출 여건에 드리운 먹구름을 인지하고 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3일 취임식에서 ‘수출’, ‘최고치’ 등의 단어 자체를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전날 전임자인 문승욱 전 장관이 이임사에서 “코로나19와 글로벌 물류 대란 속에서도 역대 최대 수출, 최대 무역, 최단기 무역 1조달러 달성의 ‘트리플 크라운’ 성과를 이뤘다”고 문 정부 성과를 강조한 것과 대조된다.

이 장관은 자화자찬 대신 “잠재 성장률이 지속해서 하락하는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하는 가운데 우리 산업의 역동성과 성장성도 약화하고 있다”며 “우리 산업과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도록 통상이 산업의 국제 환경을 개척해 나가는 선도적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13일 서울 중구 국제금융센터에서 열린 ‘거시금융상황 점검회의’에 참석해 “무역수지 적자 전환과 실물 경제의 둔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정부는 이럴 때일수록 경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통상 분야의 한 민간 전문가는 “한국이 세계적 수출 경쟁력을 갖춘 나라인 건 사실이지만, 최근 수출 수치는 유가·환율 등 거시 환경이 만들어준 것”이라며 “새 정부는 무역수지 적자와 같은 적나라한 현실에 더 주목하면서 우리나라의 수출 경쟁력 강화 전략을 처음부터 점검·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