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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러 갑니다. 박물관으로. 《멈춰서서 가만히》- 정명희 지음 [북적북적]

조지현 기자 입력 2022. 05. 15. 07:18 수정 2022. 05. 1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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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339 : '나'를 만나러 갑니다. 박물관으로. 《멈춰서서 가만히》- 정명희 지음
 
타인에게 묻는 안부를 정작 자신에게 묻지 않고 달리다 보면 거울 안에 낯선 이가 있다.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안부를 묻기 위해 박물관을 찾는다. 마음 둘 곳이 없을 때 이곳만큼 적당한 곳이 없다. 크고 작은 방이 있어 숨기 좋고 나를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중략).. 한 점의 유물 앞에서 시간은 가보지 않은 길에서 지금 이곳으로 이어지고, 어느 귀퉁이를 돌아 나올 즈음 잊고 있던 나를 만나기도 한다.

'당신은 어떤 유물을 좋아하세요?'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기다렸다는 듯 술술 이 질문에 대답할 사람이 많을까. 혹, 마음속으로는 '나는 말이야, 은은하게 미소 짓는 신라의 수막새를 보면 덩달아 웃음이 번져. 때때로 내 미소가 마음속에 둥실 떠오르지 뭐야', '반가사유상이야말로 보고 또 보고 싶잖아. 그 앞에서 살고 싶을 정도야', '뗀석기를 볼 때마다 에너지를 느껴' 라고 생각하더라도, 그렇게 말하기는 머뭇거릴 듯하다. 그러려면 그 유물에 대해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샅샅이 알고 있어야만 할 것 같으니.

여기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책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명한 말에 지레 기죽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알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게 알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알지 못하는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긴다. 언제나 그랬지만 느낌이 먼저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책, 국립중앙박물관 정명희 학예연구관의 신간 『멈춰서서 가만히』(어크로스 펴냄)다. 알게 됐기에 사랑하고 그래서 더 잘 보게 되는 것, 맞는 얘기다. 하지만 알기 전에도 먼저 좋을 수 있지 않은가. 좋기 때문에 더 잘 알고 싶은 마음이 지식에 대한 강박 앞에서 주눅 들지 않았으면 하는 저자의 바람이 담긴 글 「느낌이 먼저다ㆍ화원별집」은 이 책의 첫 번째 글이다. 이 글을 제일 앞에 담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

『멈춰서서 가만히』는 박물관과 유물에 대한 책 가운데 독특한 지점에 서 있다. 저자인 정명희 큐레이터는, 스스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긴 시간 속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유물의 사연을 상상하고 찾아내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다. 그렇게 찾아낸 '할 말 많은 유물'을 전시를 통해 관람객과 이어주는 사람이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는 전시가 이런 마음과 정성으로 만들어지는구나, 전시 포스터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하는 '주인공 유물'은 이렇게 정해지는구나 가늠해보기도 하고 박물관 사람들의 일상을 슬쩍 들여다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어떤 대상을 '새롭구나, 신기하구나' 하며 볼 수 있는 '호기심과 애정의 눈', 저자가 공유하는 그 소중한 시선을 나눠 갖게 된다는 점에서 귀하다. 독자는 이 호기심과 애정의 시선으로 유물뿐 아니라 '나'를 보는 조용하고 단정한 시간을 누리게 된다. 책 제목처럼 '멈춰서서 가만히'.
유물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을 기억한다. 과거를 보여주는 유리 구슬처럼 우리는 갈 수 없는 어떤 곳을 보여주다가도 어떤 날은 거울이 되어 우리를 비춘다.

사진발 잘 받는, '요즘 여기쯤은 가줘야지' 하는 근사한 공간에 다녀왔음을 소셜 미디어에 인증하지 않으면 뒤쳐지는 느낌을 받기 쉬운 시대, 알고리즘이 쉴 새 없이 들이미는, 우리의 시간과 주의력을 다 빨아들이려는 콘텐츠와 광고에 '진짜 나'를 잃기 쉬운 요즘이다. 이번 주말도 인스타 핫플에서 사람들에 치일 것인가. 저자는 박물관으로 오라고 손을 내민다.
좋아 보이는 똑같은 공간에 다녀왔음을 인증하는 일이 시들해졌다면, 오늘은 박물관이다. 낯선 것을 발견하고, 신기하게 느낄 수 있는 시선을 회복하며, 나다운 시간을 채워나갈 힘을 얻을 수 있다. 유물이 그랬듯이 다시 혼자가 되더라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의 따스한 마음과 아름다운 것을 함께 본 시간을 오래 담아두었으면 한다.

정신없이 일하고 돌아온 저녁, 이 책을 펼치고 하루에 딱 한 편씩-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괜찮다. 그날그날 끌리는 제목을 하나씩- 골라 읽어보시라. 아무 곳도 가지 않았는데, 마치 차분한 사람과 맑은 공기를 깊이 마시며 과거와 지금, 유물과 나를 이어주는 여행을 훌쩍 다녀온 기분이 든다 해도 놀라지 마시길.

'어크로스' 출판사의 낭독 허락을 받았습니다.

조지현 기자fortun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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