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째 친환경 옷 제작.. 깨끗한 자연 물려주고파" [차 한잔 나누며]

장한서 입력 2022. 5. 16.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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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위한바느질' 이경재 대표
귀농 생활 중 '그린 디자인'에 주목
옥수수 전분 활용해 우비 첫 제작
이효리 의뢰 '에코 웨딩'도 호응
코로나 여파로 메디컬 의류 주력
"사회적책임 다하는 기업 관심을"
12일 서울 성북구 ‘대지를위한바느질’ 이경재 대표가 친환경 병원복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시간이 흘렀을 때 부끄럽지 않은 디자인을 하고 싶었어요.”

14년째 친환경 의류를 만들고 있는 이경재(42) ‘대지를위한바느질’ 대표는 오랜 기간 ‘그린(Green) 디자인’을 추구해 온 원동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12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대지를위한바느질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나는 어떤 디자이너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얻지 못해 답답했다”며 “그린 디자인이 해답이었다. 깨끗한 자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철학이 생겼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그린 디자인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대학교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이 대표는 동문들이 의류 회사에 취업한 것과 달리 한 방송국 의상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디자이너의 고민 끝에 옷을 창조해내는 것이 아닌, 정해진 틀 안에서 프로그램을 위해 옷을 만들어야 하는 현실에 회의를 느꼈다. 결국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첫 직장을 나왔다.

퇴사 후 그는 강원 횡성군 청일면 신대리로 ‘귀농’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와 가족 모두를 위한 선택이었다. 마을 주민들 요청으로 공동건물 운영을 맡아 약 4년간 펜션 사업을 하며 농촌 생활을 했다. 숙박업 특성상 주말은 바빴지만, 평일엔 한가했다. 이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기로 마음먹고 강원도와 서울을 오가며 야간대학원을 다녔다. 이 대표는 “수업 대부분이 디자이너의 역할, 환경 이슈, 새로 나온 친환경 소재를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린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의 첫 친환경 의류는 ‘우비’다. 횡성 한우축제에 갔다가 주최 측에서 방문객들에게 나눠 준 우비가 비가 그친 뒤 ‘쓰레기 산’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이 대표는 충격에 빠졌다. 분해가 잘되는 친환경 소재라면 좋겠다는 생각에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우비가 첫 작품이 됐다.
이후 그는 한 유명 연예인의 결혼식을 본 뒤 ‘에코 웨딩’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대표는 “화려하고 비싼 드레스를 하루만 입고 버리는 것이 아까웠다”며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드레스는 땅에 묻어도 분해되지 않아 친환경 소재로 드레스 만드는 것을 시도했다”고 했다. 2006년 친환경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개인전을 열었고, 그 개인전 제목이 ‘대지를위한바느질’이었다. 그린 디자이너라는 방향성이 명확해진 순간이다. 이효리·이상순 부부도 제주도에서 친환경 결혼식을 하기 위해 이 대표를 찾았다. 에코 웨딩에 관한 문의가 빗발치자 이 대표는 강원도 생활을 정리하고 상경했다. 지인이 운영하는 병원에 친환경 병원복을 납품하면서 대지를위한바느질이라는 이름으로 2008년 처음 사업자 등록을 했다. 2010년엔 사회적기업 인증도 받았다. 에코 웨딩 사업은 자리를 잡아 갔고, 친환경 병원복과 관공서 유니폼 제작도 확대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에코 웨딩 사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결혼식과 함께 드레스 예약도 줄줄이 취소됐다. 10년 가까이 된 에코 웨딩 사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대표는 병원복 등 친환경 의류를 제작해 온라인으로 유통하는 데 주력하며 그린 디자인 철학을 꿋꿋하게 이어 가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친환경 메디컬 브랜드 ‘HED+’(헤드플러스: Happy Earthday plus)를 미국 아마존에 론칭했다. 친환경 소재에 항균 기능을 더한 제품들을 출시해 6개월 만에 완판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엔 지난해 12월 선보였다.

그는 지역에서 구축한 생산 시스템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헤드플러스 역시 성북구에 있는 작은 봉제공장들과 협업해 여러 병원복을 생산하고 있다. 이 대표는 “봉제·염색공장 등 지역에 있는 소규모 업체들이 실력이 있지만 굉장히 영세하다”며 “성북구 안에 있는 여러 업체와 시스템을 구축해 교육도 하고 제작도 함께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경쟁력 있는 친환경 의류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결국 소비자가 사회를 바꾸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10년 전과 비교해 젊은층을 중심으로 소비자들의 친환경 의식이 매우 높아졌다”면서 “윤리적 소비자가 윤리적인 시장을 만들 수 있는 만큼 소비자들이 기업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많이 요구하고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제품을 소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한서 기자 jh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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