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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위기의 영국 구한 처칠·애틀리 협치처럼..연금·노동·교육 3대 개혁, 윤 대통령 "초당적 협력을"

한영익 입력 2022. 05. 17. 00:02 수정 2022. 05. 17.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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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첫 국회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영국의 전시(戰時) 연립내각은 한국 정치의 협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첫 국회 연설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연립내각 모델을 언급하며 국회에 ‘초당적 협력’을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은 전시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국가가 가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다. 각자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는 다르지만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손을 잡았던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윈스턴 처칠이 영국 총리가 된 1940년 5월은 영국 영화 ‘다키스트 아워’(가장 암울했던 시기, Darkest hour)에서 묘사된 것처럼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체코·폴란드에 이어 프랑스까지 독일의 침공을 당한 상태였고, 설상가상으로 영국·프랑스 연합군 수십만 명이 침공 며칠 만에 독일군에 대패해 됭케르크 해안에 고립됐다. 히틀러와 평화협정 체결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항전파였던 처칠은 취임하자마자 정치적 곤경에 처했다.

위기의 순간에 처칠에게 힘을 실어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정적이었던 노동당 당수 클레멘트 애틀리였다. 그는 의회에서 협상파들을 비판하고 항전 의사를 내비치며 처칠을 지지했다. 됭케르크 해안에 포위된 연합군 34만 명을 구출한 뒤 처칠은 “우리는 숲에서 들판에서 해변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싸울 것”이라는 유명한 연설로 영국을 하나로 묶었다. 처칠은 외치와 전쟁 수행에 전념했다. 애틀리와 노동당은 내치를 맡았다. 일부 보수당 정치인의 반대에도 1942년 영국 정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요약되는 ‘베버리지 보고서’를 채택할 정도로 이들에게는 실권도 있었다.

윤 대통령 “국정 중심은 의회, 주요사안 의원들과 논의할 것”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회 본회의장에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입장하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윤호중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박홍근 원내대표. 김성룡 기자

두 사람의 파트너십은 보수당(615석 중 387석)과 노동당(154석)의 단순 연합을 넘어서는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처칠이 1940년 6월 연설에서 “후손들은 지금을 ‘가장 위대한 순간(Finest hour)’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장담했던 것처럼, 영국인들에게 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 독일에 맞섰던 경험은 자랑스러운 기억이 됐다.

윤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도 존경하는 인물로 처칠을 꼽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날 영국 사례를 인용한 건 위기 의식의 발로라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윤 대통령은 연설에서 ①급변하는 국제 정치·경제 질서 ②불안한 국내외 금융시장 ③북한의 핵무기 고도화 등을 언급하며 “나라 안팎의 위기와 도전은 우리가 미루어 놓은 개혁을 완성하지 않고서는 극복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연금·노동·교육 개혁은 지금 추진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게 된다. 정부와 국회가 초당적으로 협력해야만 한다”며 국가적 과제를 내세웠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일에도 “지금은 총으로 싸우는 전시는 아니지만, 지금의 정치·경제·사회 위기는 사실 전시와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윤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을 의식한 듯 “법률안, 예산안뿐 아니라 국정의 주요 사안에 대해서도 의회 지도자와 의원 여러분과 긴밀히 논의하겠다”며 몸을 낮추는 모습도 보였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바로 의회주의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의회주의는 국정운영의 중심이 의회라는 것”이라고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상징색에 가까운 하늘색 넥타이 차림으로 야당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 악수한 점에서도 협치에 대한 의지가 읽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그동안 꼭 했어야 될 개혁이 미뤄진 상황인 만큼, 난제를 돌파하려면 국민적 에너지가 하나로 모아져야 한다. 여야에 협조를 당부하기 위해 영국에서 있었던 2차 세계대전 당시 이야기를 하며 위기 극복 메시지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전시 내각을 언급한 건 과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야당에 협조를 당부하며 전쟁 상황을 끌어오는 건 거칠게 느껴질 수 있다. 협조를 하지 않으면 반역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자기 혁신에 대한 내용이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영익 정치에디터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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