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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현역' 박청수 교무, 고려인 청소년 지원.."숨쉬는 한 계속"

입력 2022. 05. 17. 09:31 수정 2022. 05. 1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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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후 66년 무아봉공(無我奉公)' 박청수 교무
'나를 없애고 공익 위한다'는 원불교 정신 받들어
"많은 사람 위해 큰 살림 해라" 모친 말씀도 섬겨
인생의 8할 가까이 나눔 실천
올핸 고려인청소년 위한 모금
"한국어수업 따라가도록 지원"
55개국에서 빈민 퇴치에 힘써
지금도 영어 공부..'나눔 현역'
박청수 원불교 교무가 지난 13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의 자택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용인)=김희량 기자] “내가 숨쉬고 있는 한, 누군가 어려운 걸 아는 한 영원히 도울 겁니다. 1분 1초도, 의미 있고 가치 있도록 제 생명이 불완전 연소되지 않게 살려고 해요.”

‘세계 사회봉사의 상징’, ‘한국의 마더 테레사’, ‘마더 팍’….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박청수(85) 원불교 교무를 보면 꺼지지 않는 불꽃이 떠오른다. 호암상, 만해평화대상 수상부터 노벨평화상 최종 10인 후보까지. 60여 년 동안 세계 55개국에 빈곤·질병 퇴치를 위한 노력을 쏟고도 그의 나눔은 멈추지 않았다. 헤럴드경제는 지난 13일 박 교무의 박물관이자 거처가 있는 경기 용인시 처인구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을 찾아, 그와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을 다녀온 박 교무는 “2㎞ 정도 걸어야 해 고단했지만 좋았다”며 연이은 인터뷰 준비와 며칠 뒤 영어 주례 연습에 전념하고 있었다. 6권의 책을 내기도 한 그는 현재 중앙 일간지 칼럼을 쓰고 있기도 하다. 나눔이 닿아야 할 곳곳을 찾고 세상에서 눈을 떼지 않는 일까지 게을리하지 않는 박 교무는 그의 방식으로 세상을 돌보고 있었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신문과 9시 뉴스를 보며 매일 전화영어 수업도 받는다는 그에게서 변치 않는 열정도 느껴졌다. 2007년 원불교 강남교당에서 은퇴했지만,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를 ‘나눔의 현역’이라 할 만 하다.

박청수 원불교 교무가 지난 13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의 자택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87일 만에 4000만원을 모았습니다.” 지난 2월 9일부터 진행한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의 고려인 청소년들을 위한 모금 얘기다. 함박마을의 원고려인문화원은 고려인 중고생들에게 방과후수업을 제공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사정을 알게 된 박 교무는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에게 매월 20만원가량의 격려금을 1년 동안 지원하기로 했다. 이들을 위한 ‘고려인 돕기 호소문’을 작성, 원고려인문화센터 설립 자금 3000만원과 전세금 1000만원을 87일 만에 만들었다. 그는 “가장 큰 걱정은 아이들이 한국어가 미숙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라며 “제 도움 없이도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했다.

박 교무는 자신에게 사과, 배 등 선물이 들어오면 주소지를 바꾸어 함박마을로 보낸다. 그만큼 고려인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자신이 태어난 해(1937년)에 16만명이 넘는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것이 늘 마음 아팠다는 박 교무. 그는 1998년 소련 붕괴 후 고려인들이 러시아 연해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알게 돼 3000만원의 한인촌 건설금을 후원했다. 2001년에는 아랄해가 말라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우즈베키스탄 누쿠스 지역 한인을 위해 러시아 볼고그라드의 농가주택 27채를 매입해 이주를 도왔다.

박 교무는 탈북 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인 한겨레중고교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그는 “고려인·탈북민 학생들이 모이는 만남의 자리를 꿈꾸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그의 말에서 교육을 통해 한국 안의 청소년들 사이에서 작은 통일을 이뤄보려는 열정이 느껴졌다.

“많은 사람을 위해 일하며 큰 살림을 해라”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1956년 출가한 후 66년. 박 교무는 어머니의 뜻대로 캄보디아, 북한, 인도 히말라야 등 세계 곳곳을 돌며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각종 물품을 지원하는 등 비용으로만 100억원이 넘는 나눔을 실천했다. 지금도 매달 640만원을 캄보디아 프놈펜의 빈민가 탁아원에 보낸다. 덕분에 0~3세 영아 60여 명이 하루 12시간 돌봄을 받고 있다.

원불교의 무아봉공(無我奉公· 나를 없애고 공익을 위해 성심성의를 다한다) 정신을 평생 실천한 박 교무이지만 비용 걱정에 보이지 않은 곳에서 잠을 설친 날이 많았다. 한센병 환자들을 돕기 위해 담양 창평엿을 15년 동안 팔거나 생활유지비가 부족해 수도원 부지 안에 테니스 코트를 손수 만들기도 했다.

박 교무는 “젊은 적엔 돈 걱정을 많이 해 나이 들면 그게 쭈글쭈글 주름이 될까 걱정했어요. 생각한 것보다는 나은데, 어때요”라고 해맑게 물었다. 인생의 8할 가까이를 남을 위해 산 그의 얼굴에는 기쁨과 보람만이 가득해 보였다.

용인=김희량 기자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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