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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歷知思志)] 고향

유성운 입력 2022. 05. 18. 00:16 수정 2022. 05. 18.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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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 문화팀 기자

조선 중기 학자 서거정은 ‘고향’이 다양했다. 그의 출생지는 정확하지 않은데 부친이 관직 생활을 했던 서울로 추정된다. 하지만 그는 부친이 자란 ‘대구 인사’로도 통했다. 그는 대구 경재소(중앙과 지방의 연락소 역할을 한 기구)의 당상으로 활동했고 대구 인사들을 관직에 추천하기도 했다.

그는 유년 시절을 보낸 외가 경기도 임진현에 대해서도 각별하게 챙겼다. 1453년 임진현 객관(客館) 중수기에서 “나도 선영이 마을 서쪽에 있는 고향 사람”이라며 애틋한 감정을 표현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62세에 이 지역 순찰사로 파견됐다. 네 번째 고향은 처가인 전라도 전주였다. 그는 전주를 ‘우리 고을’이라고 부르고 큰 관심을 드러냈다. 외조부인 권근의 본관지 경상도 안동도 고향처럼 여겼고, 농장을 마련한 경기도 양주와 광주 역시 자신의 주요 기반지로 생각했다.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정리하자면 그는 서울·대구·전주·임진 등 여러 개의 ‘고향’을 두고 각 지역에 관련된 현안이나 이권에 개입했다. 하지만 서거정이 특별했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엔 그뿐만 아니라 김종직을 비롯해 많은 인물이 그러했다. 당시엔 고향의 선택폭이 넓었다. 출생지뿐 아니라 아버지·아내·외조부 등의 고향을 두루 저울질하다가 자신에게 가장 좋은 사회경제적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을 최종 고향으로 택했다.

서울에서 줄곧 활동하던 정치인이 선거를 앞두고 지방으로 내려가 ‘고향’을 내세우며 지지를 호소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인 것 같다.

유성운 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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