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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의 사람사진] 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38년 전 사진 꺼내든 서연준

권혁재 입력 2022. 05. 18. 00:22 수정 2022. 05. 18.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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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의 사람사진 / 서연준 작가

성직자가 홀로 무릎 꿇고 묵상하는 사진에
눈길이 한참 머물렀다.
오늘 18일부터 열리는
김수환 추기경 사진전 포스터였다.

김수환 추기경 사진전 포스터. 서연준 작가는 홀로 무릎을 꿇고 묵상에 잠긴 김수환 추기경의 뒷모습에 반하여 사진을 찍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고 했다. 사진 서연준 작가 제공


포스터를 보낸 이는 서연준 사진작가다.
서 작가를 만나 포스터 사진에 얽힌 사연을 청했다.
A : “미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돌아간 후 추기경께서 다시 나오셨어요. 제대 앞에 무릎을 꿇더니 홀로 묵상을 하시더군요. 그 뒷모습에 홀딱 빠져버렸죠. ‘시간 날 때마다 힘닿는 데까지 찍어드리겠노라’ 홀로 다짐했습니다.”
그 다짐을 지키느라
그는 1984년부터 1988년까지 추기경을 찍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 중
그가 손꼽는 인상적인 장면들은 이러하다.

“당시 나라를 걱정하는 구국 미사가 있었는데요.
1986년 대권을 꿈꾸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함께 참여한 미사,
1987년 중국에서 송환된 김선영(요셉) 신부 유해 안치 장례 미사,
1988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미사는 아직도 맘에 맺혀 있습니다.”

86년 3월 9일, 당시 대권을 꿈꾸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명동성당 구국 미사에 참여했다. 사진 왼쪽 앞줄에 둘은 한사람 건너 각각 자리해 있다. 사진 서연준 작가 제공


1987년 故 김선영(요셉) 신부 유해 안치 장례미사. 만주에서 교포 사목을 하다 중공 공산화 후 체포돼 25년의 옥고 끝에 선종한 김 신부의 유해를 모신 장례미사를 김수환 추기경이 집전했다. 사진엔 상복을 입은 유족의 모습도 보인다. 서연준 작가는 당시 눈물을 흘리며 사진을 찍었다고 고백했다. 사진 서연준 작가 제공


1988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미사 장면. 서 작가는 이러한 장면 하나하나가 우리나라 가톨릭의 역사일 것이라고 했다. 사진 서연준 작가 제공


무려 38여년이 지나서야 이 사진들을 공개하는 이유가 뭘까.

A : “당시 제가 고작 스물네살이었어요. 충무로 상업 사진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트로 일했죠. 충무로와 명동이 가까우니 자주 드나들었어요. 그때 인연이 비롯된 겁니다. 당시 월급이 6만원인데 필름 한 통이 2000~3000원이었어요. 만만치 않은 여건 임에도 추기경께 반해 온 마음을 내어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후 집 이사 다섯번, 스튜디오 이사 여섯번을 하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죠. 추기경님 탄생 100주년이라는 생각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진을 뒤졌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마치 특별하게 보관한 것처럼 필름이 멀쩡했어요. 그 필름들에서 추기경을 다시 만나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행복을 다른 이들과 나눠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1987년4월, 성주간 신학교에서 서연준 작가가 찍은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이다. 사진 속 추기경은 활짝 웃고 있다. 서 작가가 수년간 찍은 사진 중에 몇 안 되는 웃는 얼굴의 추기경이라고 고백했다. 서 작가는 당시 추기경이 암울했던 시대와 국민을 걱정하던 때였기에 표정은 언제나 진중했다고 회상했다. 사진 서연준 작가 제공


38여년 만에 공개되는 추기경의 모습은
명동성당 ‘갤러리 1898’에서 5월 23일까지 만날 수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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