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변동 한반도는 미꾸리 천국..'자산어보' 맥 이어 가야죠"

조홍섭 2022. 5. 1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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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조홍섭이 만난 '애니멀피플'
우리나라 '민물고기 대부' 김익수 전북대 명예교수 인터뷰
민물고기 연구 40년간 18종 발표..'물고기 박사' 15명 배출
4대강 사업 바닥 사는 고유종에 치명타, 원상 복원 서둘러야
김익수 전북대 명예교수가 16일 오후 서울 마포 한겨레신문사에서 최근 발간된 자신의 책 ‘우리 물고기의 생물 다양성 탐구’에 나온 미꾸릿과 얼의 옆구리 무늬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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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물고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당연히 오랜 세월 이를 관찰하고 먹거리로 삼아 온 민중이다. 기록으로는 세종 때인 1424년 물고기 21종의 이름, 형태, 습성, 약 성분 등을 조사한 ‘경상도 지리지’를 시작으로, 1801년엔 물고기 101종에 관한 훨씬 더 자세한 정보를 담은 정약전의 ‘자산어보’가 나왔다. 그러나 이런 뛰어난 전통지식은 근대과학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단절됐다.

서양과 일본인이 나중에 우리 토종 물고기를 대부분 새로 ‘발견’해 자신의 이름을 담은 학명을 정했다. 김익수 전북대 명예교수(80)는 한반도의 고유종 민물고기를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한 우리나라 ‘민물고기 연구자의 대부’이다. 지난 40여년 동안 신종으로 발표한 한반도 민물고기는 18종에 이른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학자가 새로 발견해 발표한 민물고기 신종이 30종 정도인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에 그의 이름을 남겼다. 특히 그가 발견한 신종 가운데 10종은 미꾸릿과 어류이다. 최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 ‘우리 물고기의 생물 다양성 탐구’란 책을 낸 그의 발견 여정을 더듬어 한반도 민물고기의 가치와 보전의 필요성에 관해 들었다.

최기철 교수와의 인연

한국인이 처음 신종으로 기록한 고유종 민물고기인 참종개 모습. 사진 위 김병직, 국립생물자원관 아래 김익수 교수 제공.

―1975년 한국인으로서 처음 신종으로 보고한 민물고기가 참종개였죠. 어떤 물고기인가요?

“흔히 바닥에 펄이 깔린 하천에 사는 미꾸리와 미꾸라지만 떠올리는데 이들 말고도 바닥에 모래와 자갈이 깔린 맑은 개울 등 다양한 환경에 기름종개가 살아요. 참종개는 바닥에 자갈이 깔린 맑은 하천에 사는 구름 모양의 멋진 줄무늬를 지닌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민물고기입니다. 일본 강점기에 우치다라는 일본 연구자가 한반도에는 한 가지 기름종개만 산다고 한 얘기를 그때까지 굳게 믿었는데 조사해 보니 새로운 종이었던 거죠.”

―어릴 때부터 물고기에 관심이 많았나 봐요. 어떻게 민물고기를 연구하게 됐죠?

“미꾸리는 알았지만 물고기를 연구할 생각은 없었어요. 교사가 되고 싶어 사범대에 진학했고요. 졸업 후 취업이 어려워 1972년 서울대 사범대 최기철 교수 조교로 일했어요. 나이 서른에 늦깎이로 민물고기를 잡으며 관심을 갖게 된 거죠. 그때 기름종개를 처음 만났는데 옆구리에 난 얼룩덜룩한 무늬(반문)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데 호기심을 느꼈어요.”

―1974년 최기철 교수와 함께 전북 내장산의 담수어류를 조사했을 때 물줄기마다 기름종개의 반문이 다른 점에 주목했고 이것이 이후 연구에 물꼬를 트는 구실을 했다고요.

“내장산에서 흘러나가는 물줄기가 세 갈래인데 동진강은 서해로, 영산강은 남서해안으로, 섬진강은 남해로 유입합니다. 서로 만날 수 없는 세 하천의 기름종개 반문이 다 달랐어요. 최 교수께서는 ‘변이까지는 보지 마라. 너무 복잡하다’고 말렸지만 무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는 무늬만 다른 같은 기름종개로 알았지만 나중에 동진강의 참종개와 섬진강의 왕종개는 김 교수가, 영산강의 남방종개는 날반트 박사가 별개의 종임을 밝혀 신종으로 발표하셨죠.

“그렇습니다. 기름종개는 제게 행운을 불러왔어요. 이 연구를 바탕으로 1975년 전북대에 전임강사로 임용됐고 일본과 미국에서 공동연구를 하게 됐죠. 무엇보다 루마니아의 세계적인 미꾸릿과 어류 연구자인 테오도르 날반트 박사를 일본인 연구자 미즈노 교수의 소개로 알게 된 것이 행운이었죠. 제자들에게 늘 말합니다. 좋은 대학보다 좋은 선생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죠.”

김익수 교수는 “좋은 대학보다 좋은 스승이 중요하다”며 만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국은 미꾸리의 천국”

―하천마다 다른 무늬를 띤 기름종개가 별개의 종인지 날반트 박사에게 묻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고요.

“날반트 박사에게 무늬가 다른 기름종개 표본과 사진을 보내려 했는데 우체국에서 공산국가에 편지를 보낼 수 없다는 거예요. 몇 달 기다리다 비적성국이면 학술교류는 가능하다고 해서 겨우 보냈어요. 석 달 뒤 친필로 답장이 왔는데 ‘신종 가능성이 있다’는 거였어요. 이를 바탕으로 이듬해 참종개를 ‘한국육수학회지’에 신종으로 보고했죠. 학명은 코비티스 코리엔시스, 곧 한국의 미꾸릿과 어류라는 뜻이었죠. 이 물고기는 서해안으로 흐르는 한강부터 금강, 만경강, 동진강과 삼척 오십천에 분포해요. 날반트 박사는 1993년 참종개를 비롯해 새로 발견된 왕종개, 미호종개, 부안종개, 북방종개를 합쳐 새로운 속(Genus)으로 학계에 발표했어요. 새로 참종개 속을 만든 거죠. 속의 영어 이름은 제 이름을 따 익수키미아(Iksookimia)가 됐어요.”

―미꾸릿과에서 10가지 신종을 발견한 셈인데, 좁은 한반도에서 아주 다양한 종이 사네요.

“우리나라를 방문해 함께 채집도 한 날반트 박사가 ‘한국은 미꾸리의 천국’이라고 했어요. 높은 다양성은 한반도가 지각변동을 받아 산맥이 솟고 빙기와 간빙기가 차례로 찾아오면서 하천이 격리돼 종 분화가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미꾸릿과 어류는 중요한 민물고기로군요.

“우리나라에서 미꾸리 하면 더러운 곳에 사는 미끄러운 물고기라는 편견이 있는데요. 자연사를 연구하는 데는 보물과 같은 존재죠. 작고 부레가 없어 헤엄을 잘 못 치기 때문에 바닥 환경에 적응해 살아갑니다. 같은 강이라도 상류와 하류에 사는 종이 다르고 바닥이 무언가에 따라서도 다르죠. 곤충이나 새, 양서류는 장벽이 있어도 넘어가 퍼지지만 미꾸리는 쉽게 고립돼 다른 종으로 진화합니다. 개구리는 산을 넘어도 물고기는 넘지 못합니다.”

―한반도가 한 종이 고립돼 다양하게 분화하는 진화를 보여주는 드문 곳이군요.

“그런 점에서 한반도는 민물고기의 갈라파고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길게는 2000만년 짧게는 수백만년에 걸쳐 종이 분화해 우리나라 고유 민물고기로 진화한 거죠. 잡종화를 통해 신종이 탄생하는 과정도 갈라파고스의 다윈핀치나 한반도의 종개류가 비슷해 학계에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민물고기 종 수를 230여종으로 봅니다. 기수 어종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종 수가 다르지만요. 그 가운데 한반도에만 사는 고유종이 60종이에요. 굉장히 고유종 비율이 높죠. 민물고기는 우리나라의 자연사를 보여주는 생물입니다.”

―미꾸릿과 어류 이외에 발견한 신종으로는 어떤 종이 있지요?

“참갈겨니, 칼납자루, 임실납자루, 큰줄납자루 등 민물고기와 황해볼락, 점줄망둑 같은 바닷물고기를 포함해 8종을 홀로 또는 공동연구자와 함께 발견했습니다.”

우리나라 미꾸릿과 어류의 종이 분화해 나간 경로와 연대 추정도. MYA는 100만년을 가리킨다. 김익수 교수 제공.

황소개구리 문제 첫 제기

―제자를 많이 배출하셨죠?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정년 퇴임한 강언종 박사와 이완옥 박사, 전 전주교육대 이용주 교수, 상어 전문가인 최윤 군산대 교수, 전북대 박종영 교수, 국립생물자원과 김병직 박사 등 박사급 어류학자가 15명 나왔습니다.”

―환경부의 멸종위기 야생생물 목록을 보면 1급 보호종 가운데 미꾸릿과 어류로 미호종개, 얼룩새코미꾸리, 좀수수치 등 3종이 들어있고 부안종개는 2급 보호종으로 돼 있습니다. 멸종위기에 놓인 물고기 가운데 왜 미꾸릿과 어류가 많지요?

“좁은 서식지에만 사는 종이 많은 데다 바닥에 살기 때문에 쉽사리 서식지가 망가지죠. 바닥을 모조리 긁어낸 4대강 사업이 대표적 예입니다. 빨리 원상을 회복해야 하는데 새 정부 와서 전혀 관심이 없어 큰일이에요. 수해복구한다고 하천을 송두리째 망가뜨리고 놀이시설과 관광지로 이용하려고 하천 개발을 많이 합니다. 종 다양성을 위해서는 서식지를 자연의 모습 가깝게 회복하는 게 우선입니다.”

―우리나라 자연하천 가운데 앞장서 전주천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지요?

“1975년부터 전주천 어류를 조사했어요. 당시 18종이 살았는데 20년 뒤에 보니까 콘크리트로 직강화하고 오수가 흘러들어 5종밖에 없더라고요. 전주 의제21 의장을 맡아 2000년부터 강을 구불구불하게 하고 여울과 소가 나타나게 복원했더니 20여 종의 물고기가 돌아왔어요. 2005년엔 전주천 하류인 백제교 부근에서도 산간계류에 사는 쉬리를 볼 수 있게 됐지요. 하천 복원에는 지자체 단체장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대표적 외래종인 황소개구리 문제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제기하셨죠?

“늘 강가에서 족대 들고 물고기를 채집했는데 1990년대 초 황소개구리와 그 올챙이가 잡히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조사해 보니 농촌 소득 올리려고 양식을 시도했는데 먹이 확보 등이 뜻대로 안 되니까 양식업자가 하천에 풀어준 거였어요. 위장 내부를 조사해 보니 다른 개구리는 물론이고 작은 뱀까지 먹는 포식자 노릇을 해 문제를 제기했죠. ‘한겨레’에서 이 문제를 가장 먼저 보도했는데 환경문제를 널리 알리는 데 언론이 큰 구실을 한다는 걸 실감했죠.”

글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정리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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