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윤 대통령-한동훈 장관-검찰' 검찰 친정체제 구축
[경향신문]
‘윤석열 사단’ 검사들이 18일 단행된 검찰 고위직 인사에서 주요 보직을 모조리 꿰찼다. ‘윤석열 대통령-한동훈 법무부 장관-검찰 고위직’으로 내려가는 검찰 친정체제가 조기에 구축된 것이다. 예상보다 규모가 큰 이번 인사는 한 장관이 취임한 지 불과 하루 만에 전광석화처럼 단행됐다. 윤 대통령 집권 초반기에 검찰발 수사의 시간표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커졌다. ‘죽은 권력’을 겨냥한 수사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석열 사단’의 독주
이번 인사를 규정하는 건 ‘윤석열 사단’ 검사들의 법무·검찰 전면 복귀이다. ‘윤석열 사단’은 2017년 8월 문재인 정부의 첫 검찰 인사 때 처음으로 윤곽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에 부임해 검찰 내 최고 실세가 되자 옛 대검 중수부에서 손발을 맞춘 검사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국정농단 특검팀 소속 검사들이 일제히 약진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간부는 이두봉 인천지검장(당시 1·4차장, 25기), 박찬호 광주지검장(2차장, 26기), 한동훈 법무부 장관(3차장, 27기), 이노공 법무부 차관(4차장, 26기), 신자용 서울고검 송무부장(특수1부장, 28기), 송경호 수원고검 검사(특수2부장, 29기), 양석조 대전고검 인권보호관(특수3부장, 29기), 김창진 창원지검 진주지청장(특수4부장, 31기), 홍승욱 서울고검 검사(형사1부장, 28기) 등이었다. 이노공 차관, 홍승욱 검사를 제외한 전원이 특수통이다.
이번 검사장 승진 인사도 당시 명단과 유사하다. 송경호 검사장은 검찰 수사력의 핵심인 서울중앙지검장에, 양석조 검사장은 국회 사건과 증권범죄 사건을 다루는 서울남부지검장에 보임됐다. 성남FC 사건 등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관련된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수원지검장은 홍승욱 검사장이 맡는다. 신자용 검사장과 김창진 지청장은 각각 법무부 검찰국장·검찰과장을 맡아 검찰 인사판을 짜게 됐다.
이들 중 다수는 당시 중앙지검에서 적폐청산 수사를 벌였지만, 2019년 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를 수사한 이후 한직으로 좌천됐다. 조국 수사 지휘라인은 고형곤 반부패수사2부장, 송경호 3차장,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다. 고형곤 현 포항지청장은 이번 인사에서 중앙지검의 특수수사를 지휘하는 4차장으로 전보됐다.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심우정 서울동부지검장이 유임된 것도 눈에 띈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는 이미 상당 부분 진행돼 백운규 전 장관의 조사만 남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심 지검장이 수사를 마무리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사단’인 이두봉·박찬호 검사장은 이날 인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두 사람은 여환섭 대전고검장과 함께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된다. ‘친윤’ 색채가 옅고 현직 검사 중 최고의 특수통으로 평가받는 여 고검장보다는 이두봉, 박찬호 검사장 중 한 명이 검찰총장에 낙점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 검사장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증거조작이 드러나자 피해자인 유우성씨를 보복 기소한 장본인이다. 대법원도 유씨에 대한 기소를 ‘검찰의 공소권 남용’으로 판단했지만 간첩조작 책임이 있는 이시원 변호사를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임명한 데서 보듯 윤 대통령은 개의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 검사장은 대전지검장일 때 문재인 정부의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수사를 지휘했다.
■“특수통의 세상이 열린 것”
문재인 정부에서 중용된 검사들은 이번 인사에서 한직으로 밀려났다. ‘검언유착(채널A)’ 의혹 사건 관련 한동훈 장관에 대한 처분을 미뤘던 이성윤 서울고검장,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밀려났다.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징계 취소 소송에서 ‘징계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던 이정현·심재철 검사장도 법무연수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전 정부와 가까웠던 것으로 평가된 이종근·신성식 검사장도 각각 대구고검·광주고검 차장으로 전보됐다.
법무부는 구본선·권순범·조재연 등 고검장급 간부들의 사표를 수리한 것과 달리, 이성윤 고검장과 이정수 검사장의 사표는 수리하지 않았다. 검사 징계 관련 규정은 면직을 원하는 검사가 기소된 상태거나 내부 감찰이 진행 중일 때는 사표 수리를 금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 인사는 정기 인사 전 ‘급한 불’부터 끄는 소폭 인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법무부 감찰담당관과 대검 감찰과장들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는 점에서 전 정권 검사들에 대한 감찰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번 인사를 두고 총장이 인선되기도 전에 검찰 인사가 너무 빠른 속도로 이뤄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의무 사항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검찰인사위원회 심의 등 절차를 건너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사필귀정”이라는 평가와 함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는 반응이 나온다. 특수통, 그 중에서도 윤석열 사단이 득세한 문재인 정부 초기 인사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형사·공판·공안 검사들은 특수통 검사들의 요직 장악을 인사 전횡이라고 비판했다.
한 부장검사는 “첫 인사니 정상화 차원에서 다 쳐내는 것도 이해는 하지만 역시나 그때 그 결과”라고 했다. 또 다른 부장검사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첫 인사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지금 검찰총장도 없는데 대통령이랑 장관이랑 짝짜꿍해서 다 하신 것 같다”며 “특수통의 세상이 열린 것”이라고 했다.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이런 인사 기조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특수통이 아닌 검사들의 박탈감은 커질 것”이라고 했다.
이효상·허진무·이보라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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