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만에 사과받은 5.18 당시 경찰 유족 "땅만 보고 살았다"

김종훈 입력 2022. 5. 19. 15:18 수정 2022. 5. 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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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고속버스를 운전하다 경찰에 돌진해 경찰관 4명을 숨지게 한 당사자 배아무개씨가 사건 발생 42년 만에 유족들에게 사죄했다.

 정 경사의 배우자 박덕님씨 역시 "경찰관들이 학생들 다치게 하고 시민들 다치게 했다는 시선 때문에 한평생 죄인 아닌 죄인이 돼 땅만 쳐다보고 살았다"면서 "젊어서 죽은 것도 너무 억울한데 누명 쓰고 평생을 살았다. 명예를 회복 안 해주니 지금이라도 마음의 상처를 꿰매 줬으면 한다"라고 한 많은 삶을 토로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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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5.18 시위대 버스기사, 19일 현충원 피해 경찰 무덤 앞에 무릎 꿇어

[김종훈, 유성호 기자]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고속버스를 운전하다 경찰에 돌진해 경찰관 4명을 숨지게 한 당사자가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고 정충길 순직 경찰관 묘를 찾아 참회하며
ⓒ 유성호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고속버스를 운전하다 경찰에 돌진해 경찰관 4명을 숨지게 한 당사자(왼쪽 네번째)와 유가족,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위원회 부위원장이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순직 경찰관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 유성호
 

"제가 지금에 와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고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고속버스를 운전하다 경찰에 돌진해 경찰관 4명을 숨지게 한 당사자 배아무개씨가 사건 발생 42년 만에 유족들에게 사죄했다. 

19일 배씨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함평경찰서 소속 고 정충길 경사와 이세홍 경장, 박기웅 경장, 강정욱 경장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더 이상 무슨 말을 더 하겠냐"며 "모든 걸 잊고 고이 잠드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배씨 뒤에 서있던 순직 경찰 유족들은 오열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에 따르면 당시 고속버스 운전기사였던 배씨는 1980년 5월 20일 야간에 시위대의 도청 진입을 차단하기 위해 저지선을 세우고 대기하던 경찰들을 향해 돌진, 당시 함평경찰서 소속 경찰 4명을 숨지게 했다. 당시 그가 몰던 버스에는 최루탄가스가 밀려 들어와 눈을 뜰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사건으로 배씨는 군사재판에 넘겨졌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인정돼 1980년 소요살인죄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이후 무기형으로 감형됐다가 특별사면을 거쳐 석방됐다. 5.18특별법 제정 이후인 1998년 재심을 거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사건 발생 42년 만에 유가족에게 공식으로 용서를 구했다. 

유족들 "42년, 가해자가 돼 아픔조차 호소할 수 없었다"  
 
▲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위대 버스기사, 순직 경찰 무덤 앞에서 참회 ⓒ 유성호

유족 대표인 고 정충길 경사의 아들 정원영씨는 "사실은 정말로 한 번은 뵙고 싶어 요청 드린 건데 막상 만난다고 하니, 만나기까지는 이성적으로 이해가 갔지만 감정적으로는 정말 어려웠다"라고 운을 뗐다.

정씨는 그 이유에 대해 "지난 42년 동안 한국 현대사의 아픔 속에서 억울한 5월의 가해자가 돼 아픔조차 호소할 수 없었다"며 "아버님들의 죽음은 역사가 밝혀냈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정작 죽음으로 내몰았던 책임자들은 외면했지만 이제야 그 책임을 지겠다는 당사자를 오늘 만나 사과받게 됐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씨는 "오늘의 사과가 전부여선 안 된다"며 "오늘을 시작으로 진정 사과해야 할 당사자들의 사과가 시작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아버지들(순직 경찰관들)의 죽음 이후 어떤 배상과 보상, 위로도 없었다. 오히려 공무원, 경찰이었다고 당시 신군부와 다를 게 뭐냐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소외받고 도외시됐다. 이제라도 이러한 사실을 5월 단체들에게 말해줘야 한다. 우리가 동일할 순 없을지라도 결코 다르지 않은 죽음임을 받아들이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 당신(배씨)이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고속버스를 운전하다 경찰에 돌진해 경찰관 4명을 숨지게 한 당사자가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경찰충혼탑에서 순직 경찰관 유가족을 만나 참회하고 있다.
ⓒ 유성호
 
정 경사의 배우자 박덕님씨 역시 "경찰관들이 학생들 다치게 하고 시민들 다치게 했다는 시선 때문에 한평생 죄인 아닌 죄인이 돼 땅만 쳐다보고 살았다"면서 "젊어서 죽은 것도 너무 억울한데 누명 쓰고 평생을 살았다. 명예를 회복 안 해주니 지금이라도 마음의 상처를 꿰매 줬으면 한다"라고 한 많은 삶을 토로하듯 말했다. 박씨는 이어 "선생님(배씨)이라고 그러고 싶어서 했겠느냐"며 "다 풀어버리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라"고 덧붙였다.

곁에 있던 고 이세홍 경장의 아들 이학봉씨도 "늦었지만 지금 이렇게 얼굴 보고 사과할 수 있는 자리 마련해 준 위원장과 배 선생께도 고맙게 생각한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에 대해 안종철 진상조사위 부위원장은 "이번 만남의 시간을 위해 쉽지 않은 발걸음을 해주신 유가족과 사건 당사자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유가족의 심경을 충분히 헤아려 순직한 네 분과 부상한 피해 경찰관들 모두의 명예를 회복하고 유가족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도록 조사위가 그 중심에서 경찰 가족과 함께하겠다"라고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고속버스를 운전하다 경찰에 돌진해 경찰관 4명을 숨지게 한 당사자가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경찰충혼탑에서 순직 경찰관 유가족을 만나 참회하자, 고 정충길 씨 아들 정원영씨가 안아주고 있다.
ⓒ 유성호
 

한편 지난해 1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개정되면서 5.18 당시 투입됐던 군경의 사망·상해 등 피해도 진상조사 대상이 됐다. 이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화해와 용서의 자리가 마련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진상조사위는 "군경 피해 기록 관련 문헌조사 , 직권사건 조사, 신청사건 조사, 군경의 트라우마 사례 조사 등 4개 조사과제를 중심으로 군경 피해사실에 대한 실체적 진상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고속버스를 운전하다 경찰에 돌진해 경찰관 4명을 숨지게 한 당사자(왼쪽 두번째)와 유가족,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위원회 부위원장이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경찰충혼탑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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