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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강국인줄 알았는데 허당..러시아 핵심무기 구매취소 사태 [이철재의 밀담]

이철재 입력 2022. 05. 22. 05:01 수정 2022. 05. 2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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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7월 9일 소련 모스크바 인근의 도모데도보 공항에서 10월 혁명 50주년을 기념하는 에어쇼가 열렸다. 당시 소련 공군의 최신 군용기들이 열병식처럼 줄지어 하늘을 날아갔다.

유폭으로 차체로부터 떨어져 날아간 러시아군 전차의 포탑. 러시아군 전차는 탄약고를 따로 분리 안해 포탄 연쇄폭발이 자주 일어나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깜짝상자(Jack-in-the-box)'란 별명이 붙여졌다. 트위터 Vinod 계정


막판에 등장한 전투기 4대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미그-25였다.

큰 주날개와 2개의 수직 꼬리날개를 가진 이 전투기는 매우 앞선 디자인이었다. 소련 공군은 미그-25가 강력한 레이더와 4발의 공대공 미사일을 달고 최고 속도 마하 3.2(시속 약 3200㎞) 이상과 최고 고도 27㎞를 날 수 있다고 자랑했다.

1973년 이스라엘 공군은 마하 3.25로 이스라엘 북부에서 시리아로 비행하는 항공기를 발견했다. 이스라엘 공군의 F-4 팬텀은 이 항공기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소련이 중동에 파견한 미그-25 정찰형이었다.

충격에 빠진 미국은 F-14 톰캣과 F-15 이글 등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서둘러 진행했다.

그런데….

1976년 9월 6일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하코다테(函館) 공항에 소련 공군의 미그-25 1대가 비상 착륙했다. 조종사인 빅토르 벨렌코 중위가 미국에 망명하려고 전투기를 몰고 왔다.

호박이 덩굴째 굴러온 격이었다. 미국은 미그-25를 철저하게 점검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미그-25는 속도만 빠를 뿐이지 그냥 그런 전투기였다. 마하 3 이상의 속도를 내는 시간을 길지 않았다. 엔진은 수명이 짧았다. 기동성은 형편없었다.

레이더엔 진공관이 들어갔다. 기체는 고속과 고열에 견디는 티타늄과 같은 특수합금으로 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80%가 강철합금이었고, 티타늄은 9% 정도였다. 11%는 휘어지기 쉬운 알루미늄 합금이었다.

‘천하무적 미그-25’의 신화가 처참히 깨진 것이다. 그리고 46년 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 이번에도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 얘기다. ‘이철재의 밀담’은 여러 번 이 전쟁을 다뤘다. 그런데 전쟁이 길어지면서 ‘허당 러시아군’의 사례가 고구마 줄기처럼 나오고 있다.

러시아가 뽐내고, 전 세계로 수출도 많이 한 3종류의 무기가 우크라이나에서 처참히 깨지고 있다. T-90 전차, Ka-52 앨리게이터 공격 헬기, 판치르-S1 야전 방공 체계 얘기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만 하더라도 러시아군은 이들 무기를 앞세워 우크라이나를 단숨에 제압할 줄 알았다.

마하 3이 넘는 속도를 가진 러시아의 미그-25 전투기. 위키피디아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오릭스에 따르면 21일 현재 러시아군은 20대의 T-90 전차, 13대의 Ka-52, 7대의 판치르-S1을 잃었다.


맥없이 당한 러시아 최신 전차 T-90

지난 4일 트위터에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지방에서 불에 탄 전차 사진이 올라왔다. T -90M 전차였다.

지난달 25일 우크라이나에서 포착된 러시아군 T-90M 전차. Rob Lee 트위터 계정


러시아는 T-14 아르마타란 최신 전차를 개발했다. 그러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실전배치가 미뤄지고 있다. 그래서 T-90이 현재 러시아군의 최신ㆍ최강 전차다.

T-90은 소련제 T-72로 무장한 이라크군이 1990년 걸프전에서 미군의 M-1에 학살당하다시피 하자 소련이 고심 끝에 만든 전차다. T-90은 반응형 장갑(ERA)인 렐릭트와 능동방어체계(APS)인 쇼트라로 방어력을 높였다.

T-90 개량형 가운데 가장 최신형이 T -90M이다. T -90M은 전장의 상황과 아군ㆍ적군의 위치를 보여주는 전장관리 정보체계(BMS)를 탑재했다. 2020년 제2 근위 차량화 소총병 사단(기계화 사단)에 100대 남짓만 배치할 정도로, 러시아군에겐 금싸라기와 같은 전력이다.

우크라이나군의 선전으로 전쟁이 잘 안 풀리자, 러시아군이 지난달 말 아끼고 아끼던 T-90을 긴급 투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전차는 우크라이나에서 이름을 떨친 미국제 대전차 미사일인 재블린이나 영국제 NLAW가 아닌 캐나다가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칼구스타프에 당했다. 칼구스타프는 스웨덴의 사브가 만든 무반동총이다.

칼구스타프가 파괴한 T -90M 사진 한장이 우크라이나군의 사기를 높였다는 평가다.

일각에선 T-90의 성능이 떨어져서라기보다는 러시아군이 제대로 운용하지 못한 탓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T-90은 서방의 동급 전차와 비교하면 방어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우크라이나군의 칼구스타프 무반동총이 파괴한 러시아군의 T-90 전차. Illia Ponomarenko 트위터 계정


러시아는 10개국에 T-90을 수출했고, 2개국이 러시아제 T-90을 도입할 계획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때문에 앞으로 수출 전망이 밝진 않다.


이집트로부터 버림받은 Ka-52

한때 Ka-52는 ‘러시아의 아파치’라 불렸다.

러시아군의 Ka-52 공격 헬기. 로터 2개를 엮은 동축반전식이며, 테일 로터가 없다. Rosboronexport


이 헬기는 3개의 블레이드를 단 로터 2개를 하나로 엮은 동축반전식이다. 다른 헬기와 달리 테일 로터가 없다. 테일 로터는 헬기에서 가장 취약한 곳이다.

최고 속도가 시속 315㎞다. 경쟁자인 미국의 AH-64 아파치(시속 293㎞)보다 빠르다. 또 Ka-52는 헬기 가운데 유일하게 사출좌석을 장착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선 체면만 구겼다. 호버링 중 Ka-52가 대전차 미사일에 맞아 떨어졌다. 대공 미사일도 아닌 대전차 미사일이다. 격추된 Ka-52의 잔해 속에서 약탈한 세탁기가 발견됐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에서 Ka-52는 과도한 진동 현상이 발견됐다. 헬기는 로터가 회전하는 항공기라 진동이 늘 문제다. 그런데 Ka-52는 진동 문제가 심각할 정도다. 진동은 헬기의 비행뿐만 아니라 전자장비와 시커, 무장의 수명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우크라이나에서 격추된 러시아군 Ka-52. 세탁기(붉은 네모)로 보이는 잔해가 보인다. 9gag.com


Ka-52의 또 다른 문제점은 이미 이집트가 발견했다. 러시아에서 46대의 Ka-52를 수입한 이집트는 엔진 출력의 저하가 발생하고, 항전장비와 야시경, 항법장비의 신뢰도가 낮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앞으론 Ka-52 대신 AH-64 아파치를 들여오기로 했다.


최고라는 자랑에 못 미친 전과, 판치르-S1

야전에서 전투기나 미사일과 같은 하늘의 위협으로부터 아군을 지키는 수단이 2가지다. 하나는 지대공 미사일이고, 또 하나는 대공포다. 판치르-S1은 2종류의 무기를 한 데 엮은 복합 체계다.

러시아의 저고도ㆍ단거리 복합 방공체계 판치르-S1. 30㎜ 기관포 2문과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12발로 무장했다. 위키피디아


개발사인 KBP는 판치르-S1이 전투기와 헬기는 물론 무인기, 순항미사일, 스마트 폭탄까지 잡을 수 있는 최고의 저고도 단거리 방공 체계라고 선전하고 있다. 러시아를 포함 13개 나라에서 판치르-S1를 운용하고 있다. 특히 무기를 고르는 데 까다로운 아랍에미리트(UAE)가 판치르-S1을 골랐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의 판치르-S1은 바이락타르 TB2와 같은 우크라이나군 무인기를 제대로 막지 못하고 있다. 판치르-S1의 레이더는 무인기를 탐지ㆍ추적하는 데 한계가 있다.

러시아가 최근 무인기를 잡을 수 있도록 판치르-S1의 레이더를 개량했지만, 실전에서 판치르-S1이 관련 업그레이드를 받은 지는 미지수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우크라이나에서 판치르-S1은 러시아군의 이동을 따라 다니다 전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바이락타르 TB2의 공습을 받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 바이락타르 TB2의 공습에 파괴된 러시아군 판치르-S1. 오릭스


판치르-S1은 리비아 내전과 시리아 내전에서 터키, 미국과 나토, 이스라엘의 공습에 번번이 당한 전력이 있다.


방산 시장에서 밀려나는 러시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졸전을 벌이면서 전 세계 무기 시장에서 러시아제의 브랜드 이미지와 관심도는 급락하고 있다.

세베르스키 도네츠강을 도하하다 우크라이나군 포격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러시아군. 파괴된 러시아군 기갑장비에 노란색 네모가 그려졌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졸전을 벌이는 이유는 러시아군 무기가 예상보다 안 좋은 점도 있지만, 이처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점 때문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군 국방부


러시아는 미국 다음의 무기 수출국이다. 러시아제 무기를 가장 많이 사들이는 나라는 인도다.

그러던 인도도 달라졌다. 러시아제 미그-29 전투기와 Ka-31 공중조기경보헬기 구매 계약을 취소했다. 전쟁으로 정신없는 러시아가 이들 계약을 제대로 지킬지 의심스럽고, 서방의 경제 제재 때문에 계약 관련 금액의 송금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게다가 러시아는 앞으로 무기를 만들기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됐다. 러시아제 무기의 정밀 부품은 한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로부터 수입한 것들이다. 상당수가 군사 전용이 아닌 사용 부품이다. 부품 수입이 막힌 러시아가 냉장고나 식기세척기 등 가전제품 반도체를 뜯어 무기 제조에 쓰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러시아 무기를 주로 사들이는 저개발 국가에서 앞으로 K-방산에 관심을 가질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최현호씨는 “러시아 무기의 공백을 중국제 무기가 메울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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