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의 퍼스펙티브] 윤석열 정부의 성공, 견제와 균형의 정상화에 달려

입력 2022. 5. 23. 00:32 수정 2022. 5. 23.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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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점정부 성공의 요건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분점정부(分占政府, divided govern ment)가 시작되었다. 흔히 여소야대라고 하지만, 이것은 여당이 적고 야당이 많은 국회 상황만을 가리키는 것이어서 행정부와 입법부의 상황을 함께 아우르는 표현으로는 권력을 나눠 가진 정부라는 뜻의 분점정부가 맞다. 반대로 문재인 정부처럼 여당이 다수를 차지한 정부를 단점정부(unified government)라고 부른다.

윤석열 정부는 분점정부여서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발목을 잡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많다. 언뜻 생각하기엔 맞는 말 같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미국의 경우 단점정부로 성공한 대통령으로는 에이브러햄 링컨(공화당)과 프랭클린 루스벨트(민주당)가 있고, 분점정부로 성공한 대통령으로는 로널드 레이건(공화당)과 아버지 부시(공화당), 빌 클린턴(민주당), 버락 오바마(민주당)가 있다. 분점정부로 실패한 대통령으로는 리처드 닉슨(공화당)이 있고, 단점정부로 실패한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공화당)가 있다. 대통령의 성패를 단정 지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정치학자들의 연구나 언론의 평가를 종합한 결과다. 단점이든 분점이든,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성공과 실패라는 결과는 골고루 섞여 있다.

「 행정부·국회 함께 장악한 단점정부의 실패 사례 적지 않고
단점·분점정부 모두 법안 입법과 의회 조사에 거의 차이 없어
견제·균형의 민주시스템 되살리는 데는 분점정부 더 효과적
진영·이념·파벌 벗어난 국정운영하면 여론 지지도 따라올 것

단점으로 시작해 분점정부로 바뀌기도

장덕진의 퍼스펙티브

단일 정당 정부(party government)의 관념이 오랫동안 지배해왔던 미국에서는 예전에는 분점정부를 비정상적이고 극복되어야 할 상태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했지만, 최근으로 올수록 점점 더 자주 분점정부를 경험하게 되었고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보자. 아버지 부시는 1988년 대선에서 54% 득표율을 올리면서 무려 40개 주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대선과 동시에 치러진 연방의회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은 하원 435석 중 260개를 가져갔고, 상원 33석 중 18개를 가져갔다.

게다가 정권 출범 시에는 단점정부로 시작하더라도 중간에 분점정부로 바뀌는 경향도 매우 강하다. 1969년 이후 미국에서 단점정부로 시작한 대통령 중에 중간선거 이후에도 단점정부로 유지된 경우는 지미 카터가 대통령이었던 1977~1980년이 유일하다. 그런데도 카터는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 바닥권을 맴도는 성과밖에 내지 못했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빌 클린턴이나 버락 오바마 재임 기간에는 분점정부의 한계로 예산안을 통과시켜주지 않아서 행정부가 멈춰서는 일도 있었다.

대통령의 성과는 그렇다 치고 의회의 성과는 어떤가. 단일 정당 정부론이 득세하던 시절에는 분점정부에서는 의회가 교착 상태에 빠져 걸핏하면 공전하게 되고 극한 대립으로 인해 결국 주요 법안들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입법 생산성도 낮아진다는 주장이 많았다. 하지만 1992년 예일대 정치학 교수인 데이비드 메이휴의 문제작 『갈라져서 통치한다(Divided We Govern)』가 출판된 이후 이 주장은 힘을 잃었다. 그는 1946~1990년에 이르는 45년 기간 동안 미국 의회에서 이루어진 입법 활동과 의회 조사를 분석했는데, 과거 상식과는 달리 단점정부에서나 분점정부에서나 주요 법안의 입법이나 중요한 의회 조사에 거의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분점정부의 의회 성과 꼭 나쁘지 않아

그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첫째, 의회 정치의 안정성을 가져오는 요소들이 있다. 재선을 노리거나 거물급으로 부상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은 성과를 내기를 원하고, 따라서 단점이든 분점이든 상관없이 해야 할 입법 활동은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당의 응집력이 약하기까지 하다면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된다. 정부가 당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영국 모델과 달리 정당이 일종의 ‘정책 파벌(policy faction)’에 불과한 미국에서는 이러한 원심력은 더욱 커진다.

둘째, 단점·분점 여부에 상관없이 입법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존재한다. 경제적·사회적 상황의 변화, 유권자들의 여론, 대통령 개인의 역량이나 스타일 같은 것들이다. 메이휴의 연구가 나온 이후 의회의 성과를 다른 방식으로 측정하면 단점정부와 분점정부의 차이가 관찰된다는 반론과 그래도 여전히 큰 차이 없다는 재반론들이 이어졌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는 분점정부의 의회 성과가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사를 돌이켜보자. 민주화 이후 노태우 정부는 분점으로 시작해 3당 합당을 통해 단점정부를 만들었고, 김영삼 정부는 단점을 유지했지만 IMF 사태를 초래했다. 김대중 정부는 분점으로 시작해 DJP 연합을 통해 단점을 만들어냈는데 16대 총선에서 다시 분점으로 돌아갔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DJP 공조를 통해 또 억지 단점을 만들어냈지만 6개월도 못 가 다시 분점으로 돌아갔다. 억지 단점을 만드는 과정에서 지금까지도 비판의 대상이 되는 소위 ‘의원 꿔주기’를 자행하기도 했다.

전임 단점정부의 민주적 원칙 훼손

노무현 정부는 분점에서 시작해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17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가진 단점 정부가 되었으나, 막상 열린우리당은 다음 대선 이전에 해산의 길을 갔다. 이명박 정부는 단점 정부였으나 이명박 전 대통령 본인이 현재 구속 상태인 데서 보듯이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단점에서 시작해 분점으로 바뀐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태로 초유의 탄핵을 당했다. 문재인 정부는 단점으로 시작해 더욱 강력한 단점으로 끝난 유일한 정부이지만 그 기간 위성 정당 창당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배신, 임대차 3법 등 부동산 정책 강행과 실패, 대통령 퇴임 직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위한 안건조정위원회 무력화와 살라미 전술 등 분점 정부라면 감히 하지 못했을 민주주의 후퇴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니 분점 정부로 시작하는 윤석열 정부의 앞날을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동시에 낙관적으로 볼 근거도 없다. 백지상태다.

그렇다면 분점정부로 시작하는 윤석열 정부의 앞날에는 어떤 변수들이 작용할까. 첫째, 민주적 시스템에 의한 통치를 확립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미국에서 단점정부가 분점정부보다 딱히 나은 성과를 보이지 못한 것에 대한 메이휴의 진단은 미국의 정당이 정책 파벌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의 정당은 이보다도 더 느슨한 지역-친소-운동 파벌이어서 어차피 단점정부라 하더라도 국정을 운영할 능력이 부족하다. 문재인 정부 내내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따라다녔던 것은 이 비합리적 파벌에 둘러싸여 민주적 원칙을 스스로 훼손했기 때문이다. 국민이 넌덜머리를 내는 86세대 운동권 정치 세력의 한계이기도 하다. 진영을 벗어나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적 시스템의 원리를 정상적으로 되살리는 데에는 분점정부가 더 효과적이고, 그러면 여론의 지지는 따라올 것이다.

새 정부의 앞날 지방선거에 달려

둘째,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탄핵 후폭풍으로 민주화 이후 최초의 과반 여당이 된 열린우리당은 4년도 못 가 스스로 자멸했다. 이유는 이념과 현실의 괴리였다. 4대 개혁 입법 실패로 한 차례 힘을 뺀 후 정권 후반기로 가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현실을 택했고 강경파는 이념을 택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강경파는 시종일관 이념을 택했고 대통령은 침묵했다. 친문 차기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전 대통령과 전 대선 후보를 지키겠다는 비합리적 강경파의 존재는 만약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패할 경우 원심력을 가속하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는 양당에 모두 초미의 중요성을 가진다. 두 달 전까지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후보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선 것에 대해 면책 특권을 노린 방탄용 출마라고 비판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지방선거에 패배할 경우 민주당은 열린우리당 시즌 2의 길을 갈 가능성이 있고, 그 경우 차기 대선은 기회 자체가 사라져버린다. 윤석열 정부 견제가 아니라 민주당 단속이 더 급한 상황이다. 거꾸로 국민의힘은 지방선거에서 대승할 경우 과반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맞서 17대 국회를 압도했던 한나라당 시즌2를 기대할 수도 있게 된다. 대선 득표율 0.73%포인트라는 미세한 차이는 민주당 지지층에는 대선이 아직 완결되지 않은 듯한 미련을 남겼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면 분점으로 출발하는 새 정부의 앞날이 조금 더 분명해질 것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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